이승건13 이치(李治)는 황태자(皇太子) 자리를 그저 주워먹었는가? 글: 역사변연(歷史邊緣) 당태종 정권17년(643년)의 사월, 흘간승기(紇干承基)가 당태종 이세민에게 고발한다. 태자 이승건(李承乾)이 모반을 꾀한다고, 당태종 이세민은 대신을 소집하여, 조사한 후, 흘간승기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태자 이승건을 폐출시키고, 그를 서인으로 .. 2018. 7. 28. 후군집(侯君集): 당태종 이세민은 왜 최대공신을 죽였을까? 글: 육기(陸棄), 손옥량(孫玉良) 당태종 이세민은 중국역사상 가장 인자한 군주중 하나이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군주로는 광무제 유수, 송태조 조광윤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바로 공신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조진궁장(鳥.. 2018. 6. 21. 당태종의 태자 이승건(李承乾)은 왜 반란을 일으켰는가. 글: 정호청천(鼎湖聽泉) 당태종 이세민의 적장자로서 8살때 태자가 된 이승건은 당연히 역사의 행운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나중에 서둘러 부친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죽게 되었을까? 얘기하자면 길다. 이승건은 어렸을 때 매우 총명하고 철도 들고 결단력도 있었다. 진중하다고 할 .. 2017. 12. 29. [황자쟁위술] 이세탈인술(以勢奪人術) 천사재화패(天賜才華牌) 이세민편등 사서는 이세민이 형인 태자 이건성보다 훨씬 총명했다고 기록한다. 비록 이것이 사실에 완전히 부합하는지 여부는 알 수가 없지만, 사서나 야사에서 이 기조에 따른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런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다음에 소개하는 한가지 사례로 알 수 있다. .. 2015. 10. 11. [황자쟁위술] 무장탈위술(武裝奪位術) 내선득위패(內禪得位牌) 이세민편외 요순우의 선양이후, 역사는 가천하(家天下)의 시대로 접어든다. 그 이후, 한(漢), 위(魏), 진(晋), 남조의 송(宋), 제(齊), 양(梁), 진(陳) 그리고 북조의 주(周), 수(隋), 당(唐)에 이르기까지 모두 선양의 방식으로 왕조가 교체된다. 선양이 이렇게 매번 활용된 원인은 바로 구황제와 신황제의 .. 2015. 10. 11. [황자쟁위술] 이퇴위진술(以退爲進術) – 후발제인패(後發制人牌) 이런 말이 있다: “고개내민 새가 총을 맞고(槍打出頭鳥), 솟아나온 나무가 바람에 쓰러지고, (風摧秀林木), 튀어나온 서까래가 먼저 썩는다(露頭椽子先腐朽).”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가면 위험이나 곤란에 처하는 경우에 혼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원장이 휘주를 .. 2015. 7. 27.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