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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49

아방궁의 역사진상(6): 후화원을 먼저 지을 수는 없다 글: 진경원(陳景元) 진시황35녕에 아방궁을 건설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관련된 관련 사료는 당연히 이육방선생과 그 고고팀이 아주 신뢰성있는 자료에 의하여 철저히 부정되었다. 다만, 이육방이 만일 다른 학자들이 제기한 '진혜문왕때 아방궁이 건축되기 시작했다"는 관점도 마찬가지로.. 2018. 2. 23.
진시황의 3개의 무가지보(無價之寶) 글: 독력견문(讀歷見聞) 중국역사상 무수한 기진이보가 나타났다. 대다수는 현재 행방불명이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진시황은 육국을 병합하여 천하의 보물을 모조리 얻는다. 그 안에는 3건의 희세절품이 있었다. 그중 1개는 600년후에 실종되고, 그중 1개는 1500년후에 행방이 .. 2018. 2. 8.
형가(荊軻)의 진시황 암살이 실패한 진정한 원인은...? 글: 자금산(子金山) 두 사람은 청동기둥을 돌면서 쫓고 쫓겼다. 진왕은 여러번 위험한 지경에 처한다. 한 어의(御醫)가 수중의 약주머니를 형가에게 던지고, 형가가 시간을 끄는 사이에, 진왕은 마침내 장검을 뽑아들 수 있었다. 서사의 기록에 따르면 위급한 시기에 여러 신하들 중에서 .. 2018. 2. 1.
진시황이 죽기전에 나타난 3대이상징조(三大異兆) 글: 촉인삼척안(蜀人三隻眼) 중국역사상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은 전설적인 색채가 짙다. 6국을 소멸시키고 중국역사상 최초의 대통일을 완성한다. 필생동안 고도의 권력집중을 추구했던 진시황에게는 더 걱정할 일이 없었다. 대통일후, 나이가 거의 반백이 된 진시황은 어떻게 하여야 장.. 2016. 7. 17.
진멸한(秦滅韓): 진나라 천하통일의 시작 글: 왕욱기(王昱祺) 역사상 한 가지 오해가 있다. 진시황의 천하통일이 탄탄하기 그지없는 기초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마치 진시황이 왕전에게 수십만의 병력을 딸려서 보내기만 하면 실타래가 풀리듯이 순조롭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상 진시황의 위대한 점은 육.. 2016. 5. 5.
[황자쟁위술] 광결붕당술(廣結朋黨術) 교장외위패(交將外圍牌) 병법에 이런 말이 있다: “장수는 밖에 나가 있으면, 군왕의 명도 받들지 않을 수 있다(將在外而君命有所不受).” 이는 봉건시대에 지방에 주둔하며 병사를 거느리는 장수의 권한은 공공연히 황제의 명에 항거할 수 있을 정도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당나라때가 최전성기인데, 그때의 지.. 2015. 8. 25.
[황자쟁위술] 부저추신술(釜底推薪術) – 알적장각패(挖敵墻脚牌) 옛말에 “지엽(枝葉)을 흔들려면 뿌리를 흔들어야 하고, 지엽을 튼튼히 하려면 뿌리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기반을 튼튼히 다져야 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경쟁자를 무너뜨리려면 그의 기반을 무너뜨리면 된다. 즉, 건물을 무너뜨리려면 벽 아래를 파.. 2015. 8. 4.
[황자쟁위술] 투량환주술(偸梁換柱術) – 교조모위패(矯詔謀位牌) <사기.진시황본기>에 보면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신하들에게 제도를 정하게 명하고, 승상 위관, 어사대부 풍겁, 정위 이사는 백관들과 협의한 후, “….황제의 명은 제(制)로, 황제의 영은 조(詔)로 한다.”는 원칙을 정한다. 그 후 황제의 영은 “조서(詔書)”라 부르고, 특히 그 .. 2015. 7. 27.
중국의 "천황(天皇)" 글: 지백수흑(知白守黑) 당금세계에서 국가원수는 대통령, 주석, 국왕으로 칭한다. 단지 일본에서만 '천황(天皇)'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천황이라는 글자를 보면 자연스럽게 일본을 떠올린다. 기실, 천황이라는 단어는 일본에 특유한 것이 아니라, 중국역사에도 천황들이 있었다. 이들 .. 2015. 3. 4.
수후지주(隨侯之珠) 행방의 수수께끼 글: 불감왕언(不敢枉言) "수후지주"는 춘추전국시대 수(隨)나라의 보물이다. 그것은 "화씨지벽(和氏之璧)"과 함께 나란히 춘추시대의 양대기보(兩大奇寶)이다. 이 두 개의 기보는 춘추전국시대에 여러번 언급된다. 예를 들면, "변화보박(卞和報璞)", "완벽귀조(完璧歸趙)" 등 역사이야기는 .. 2015.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