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눌9 강청(江靑)이 남긴 20자의 유언 글: 섭영렬(葉英烈) 중국관영매체 신화사는 1991년 6월 4일 강청의 자살소식을 전달했다. 기실 강청의 자살시간은 1991년 5월 14일이다. 미국작가 로스 테릴은 3시 30분이라고 적었다. 한 간호사가 들어왔다가 그녀가 이미 욕조위에 목을 맨 것을 발견한다. 다른 의사와 간호사들도 황급히 달려왔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이 배우, 정치가, 문화여황이며 모택동의 처였던 '백골정(白骨精)'은 77세의 나이로 이렇게 세상을 떠났다. 저명한 진성감옥(秦城監獄)은 베이징 창핑현 동북의 친청향(秦城鄕)에 위치하고 있다. 감옥의 동원(東院)은 외부와 완전히 폐쇄되어 있었다. 강청이 거주한 곳은 독립주택으로 몇 개의 초소가 있었다. 그녀는 신문을 볼 수도 있고, 라디오를 들을 수도 있고, TV를 볼 수도 있었다. 그.. 2022. 1. 11. 모택동의 10명 자녀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글: 수자백년(水煮百年) 첫째, 백가반(百家飯)을 먹으며 자란 모안영(毛岸英) 모안영은 모택동과 양개혜(楊開慧) 사이의 장남이다. 1922년 10월 24일 장사(長沙) 청수당(淸水塘)에서 태어났다. 그 동탕(動蕩)의 세월 속에서 모안영은 어려서부터 부모를 따라 사방을 떠돌아 다닌다. 모택동은 .. 2019. 6. 6. 모안룡(毛岸龍) 생사의 수수께끼 글: 양국선(楊國選) 모안룡(마오안롱)은 모택동(毛澤東, 마오쩌둥)과 양개혜(楊開慧, 양카이후이) 사이에 태어난 세번째 아이이다. 모안영(毛岸英, 마오안잉)과 모안청(毛岸靑, 마오안칭)의 인생은 중국인들이 아주 잘 안다. 다만 모안룡의 생사는 아직도 권위있는 결론이 없고, 더더구나 .. 2014. 5. 30. 모택동은 왜 하자진(賀子珍)과 복혼하지 않았는가? 작자: 미상 하자진은 모택동과 헤어진 후, 평생 재혼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녀의 성격때문이다. 아마도 그녀는 연안을 떠난 그날부터 결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1949년 그녀의 여동생 하이(賀怡)가 북경으로 가서 모택동과 복혼하여 부인의 지위를 되찾는 것을 논의한 것에 대하여, 우리는 .. 2013. 10. 10. 모택동의 셋째아들 모안룡(毛岸龍) 생사의 수수께끼 글: 양국선(楊國選) 모안룡은 모택동과 양개혜(楊開慧) 사이에 낳은 셋째 아들이다. 모안영과 모안청의 인생은 중국사람들이 대부분 잘 안다. 다만 모안룡의 생사는 지금까지 권위있는 결론이 없다.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러나, 올해 모택동탄신120주년활동 가운에, 마침내 수십년간의.. 2013. 7. 12. 산화난만시 정의별양농: 모택동유소기양가후인취회측기(聚會側記) 글: 공동매(孔東梅) 2004년 여름, 어느 주일의 저녁, 나와 모친 이민(李敏)은 아주 의미있는 모임에 참석했다. 유소기(劉少奇)의 부인 왕광미(王光美) 할머니가 소집하여, 모택동, 유소기 두 집안의 후손들이 경성에서 함께 모여서 우정을 얘기하는 자리였다. 모임은 19시로 정했는데, 우리가.. 2012. 3. 27.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