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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7

건륭제는 왜 재덕을 겸비한 황십일자(皇十一子) 영성(永瑆)에게 황위를 물려주지 않았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강희제 말년의 구자탈적(九子奪嫡)과 비교하면, 건륭제 말년의 후계자선택은 범위가 넓지 않았다. 그가 너무 오래 살아서, 대다수의 황자는 이미 사망했다. 17명의 황자들 중에서 겨우 4명만 남았다. 바로 황팔자(皇八子) 영선(永璇), 황십일자 영성, 황십오자 영염(永琰) 그리고 황십칠자 영린(永璘)이다. 이 네 명의 황자들 중에서, 황팔자 영선은 다리에 장애가 있었고, 황십칠자 영린은 나이가 너무 어렸다. 그래서 두 사람은 후계자에서 제외된다. 결국 남는 것은 영성과 영염의 두 황자이다. 재능으로 따지면 영성은 서화(書畵)에 모두 뛰어났다. 옹방강(翁方綱), 유용(劉鏞), 철보(鐵保)와 함께 건륭조 4대서예가로 꼽힐 정도이다. 명실상부한 대재자(大才子)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재.. 2021. 2. 7.
유통훈(劉統勛): 청나라의 보기 드문 청백리 글: 청림지청(靑林知靑) 그의 아들 유라과(劉羅鍋, 劉鏞)과 비교하면 유통훈의 명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나, 건륭제 시절을 묘사하려면, 소설이건 드라마이건 그를 빠트릴 수는 없다. 필자가 보기에 그의 일생의 공적은 아들 유라과보다 훨씬 크다. 청왕조때 12명의 황제가 있었는데, 모두 8명의 문신들만이 최고영예의 시호인 "문정(文正)"을 받았다. 거기에 유통훈이 들어 있다. 당연히 이 8명 중에서는 대부분 자격미달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탕빈(湯斌)과 두수전(杜受田)같은 사람을 몇 사람이나 알고 있는가? 가장 명실상부한 사람은 유통훈 외에 오직 증국번(曾國藩)이 있을 뿐이다. 심지어 종묘에 배향된 장정옥(張廷玉)이나 '표호장(裱糊匠)' 이홍장(李鴻章)조차도 '문정'의 영예는 받지 못했다. 유통훈.. 2021. 1. 18.
가경(嘉慶)연간, 좋은 인재가 많았는데 왜 점점 쇠퇴했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청나라는 아마 건륭제만이 자칭 천조상방(天朝上邦)이라 자처할 자격이 있을 것이다. 모두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만, 강건성세(康乾盛世)이후 청나라는 아주 명확하게 쇠퇴현상을 보인다. 역사의 철칙을 보면, 한편으로 그럴 시간이 된 것이기도 하다. 모든 왕조는 거의 수백년의 기간동안 존속한다. 가경제때가 아마 흥성하다가 쇠퇴하는 기로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건륭연간에 건륭제는 여러번 강남을 순유하고, 여기에 관료들의 부정부패현상이 엄중해졌다. 옹정제때처럼 전심전력을 다하여 정무를 보지도 않았고, 쇄국정책을 쓴다. 번성하던 대청왕조는 이때부터 이미 쇠퇴의 화근이 심어진 것이다. 한(漢)나라의 경우를 보면, 한편으로 진나라에서 모든 힘을 쏟아서 건설한 각종 도로와 성곽으로 이미 아주 견.. 2020. 11. 8.
건륭제의 총신(寵臣) 화신(和珅)이 꺼렸던 3명의 대신은...? 글: 반호노주반지연(半壺老酒半支煙) "가난한 자는 부자와 싸울 수 없다(窮不與富鬪)" "부자는 관리와 싸울 수 없다(富不與官鬪)" 이 말에 청나라 건륭연간에는 다시 하나를 덧붙여야 한다: "한족은 만주족과 싸울 수 없다(漢不與滿鬪)" 소위 '관장투(官場鬪)' 혹은 '만한투(滿漢鬪)는 그저 평서나 상성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유용(劉鏞)에게 담(膽)을 몇 개 더 빌려주더라도 감히 화신과 싸울 수 없다. 그가 만일 화신을 본다면 바로 무릎꿇고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화신의 눈에 그가 꺼려야할 공작이하의 문무대신들은 오직 3명뿐이다. 거기에는 당연히 유용이나 기효람(紀曉嵐)은 포함되지 않는다. 사실상 정사의 기록을 보면, 화신은 근본적으로 유용과 기효람을 눈아래 두지 않았었다. 건륭제때 .. 2020. 7. 4.
청나라때 친왕(親王)은 모두 몇명인가? 글: 관첩(關捷) 필자가 <애신각라종보>와 <청사고.제왕전>을 살펴봤더니, 청나라때 애신각라 친왕은 모두 140명이다. 홍타이시의 규정에 따르면, 조부 타크스(塔克世) 이하의 직계자손으 '종실(宗室)'이라고 부른다. 태조 누르하치때부터 함풍제까지 황자(皇子)는 모두 113명이다. .. 2019. 1. 9.
건륭의 후손과 북경의 왕부 글: 장월(張月) 건륭제는 자녀가 아주 많았다. 제왕가에서 태어난 이들 황자와 공주들은 서로 다른 운명을 지녔다. 그리고 황실 구성원으로서 그들은 북경성 내에 많은 왕부(王府)를 건설한다. 수백년의 풍운과 변화를 거쳐 어떤 왕부는 지금까지도 보존되어 있다. 수백년의 지난 이야기.. 2018. 1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