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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기64

6.4 천안문사태때 진압명령을 내린 핵심인물은......? 글: 일진천설(一眞濺雪) 1986년말, 베이징, 상하이, 허페이...등지의 대학생들은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학생들은 탐관오리의 부패를 처벌하고, 정치체제개혁을 진행하고, 민주, 자유를 실현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당과 국가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등소평과 그 주위의 완고한 원로들은 등소평의 추종자들인 리펑, 천시통같은 자들과 함께 학생들의 행위는 국외반중세력의 책동에 의한 반당, 반사회주의적인 행동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당시 당중앙주석을 맡고 있던 후야오방등 당내의 개혁파들은 학생들의 행위를 애국행위로 보았다. 그들의 많은 요구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생들을 정확하게 인도하고, 설명하고 소통하여 갈등을 해소시키는 것으로 사태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보았으며, 학생들에 대한 무력진압에 반대했다.. 2021. 10. 27.
왕치산은 제2의 임표가 될 것인가, 아니면 제2의 등소평이 될 것인가? 글: 방위관찰(方位觀察) 중국대륙에서 소식이 하나 전해져 왔다. 중공중앙기율검사위 부부장급 순시원 동홍이 조사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궤이한 현상은 동홍이 조사받은다는 소식은 선포되었지만, 동홍의 이력은 공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국대륙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검색엔진 바이두에서 '동홍'을 치면 '미안합니다. 당신이 방문하려는 웹페이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글만 나온다. 금방, '동홍이 조사받는다'는 소식도 마찬가지로 검색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동홍이라는 사람은 이제 중국대륙의 인터넷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되었다. 동홍은 1953년 랴오닝 하이청에서 태어났다. 1983년 중국인민대학을 졸업했고, '중앙고문위원회'에 배치된다. 그리고 중앙고문위원회 상무부주임 보이보의 비서가 된다. 그때, '.. 2020. 10. 11.
홍얼다이(紅二代) 류허(劉鶴)의 집안내력은....? 글: 봉황인문역사(鳳凰人文歷史) 1967년 9월 14일, 쓰촨 청두의 조반파, 홍위병은 50만명을 조직하여, 지금의 텐푸광장(天府廣場)에서 문혁중 쓰촨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비투회(批鬪會)를 개최한다. 이번의 비투대상은 쓰촨의 지도자들이다. '반혁명수정주의분자 리징췐(李井泉) 및 한줌의 동료들"이다. 흑패(黑牌)를 목에 걸고, 좌분기식(坐噴氣式, 목에 흑패를 걸고 몸을 90도로 굽히는 동작을 하게 하는 것)외에 비투당하는 사람은 청두시의 주요 길거리로 끌려다녔다. 서남국 서기 겸 조직부장이었던 류즈얜(劉植巖)도 비투당한 10명 중 한 명이었다. 3개월후, 그는 갇혀있던 청두 진장(錦江)호텔 9층에서 투신자살한다. 나이 49세때였다. 류즈얜의 아들이 바로 부총리 류허이다. 1. 광서14년 사월 이십사일, .. 2020. 9. 17.
유소기 딸 유정정의 회고: "가족중 4명이 참사당하고, 6명이 감옥에 갔다." 글: 진노예(陳魯豫) (아래의 글은 진노예가 유소기의 딸 유정정을 인터뷰한 후 에 쓴 내용이다. 유정정은 왕광미의 셋째 자식으로 1951년 베이징에서 출생했으며, 1954년 그녀는 부모를 따라 중남해로 들어가 살았다.) 노예: 가족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정정: 부친, 모친, 외할머니, 우리 자식들 6명이 있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집에 살았다. 아빠에게는 모두 9명의 자식이 있다. 1966년 8월 5일, 모택동은 중남해 대원내에 대자보를 붙였다. 제목은 이다. 유소기와 왕광미에게 악몽이 시작되었다. 먼저 중공8기11중전회에서 유소기는 국가의 서열2위에서 서열8위로 내려앉는다. 이어서 중남해의 '조반파'가 자주 유소기의 집으로 들어와 재산을 몰수하고, 비투하고, 모욕하고, 유소기부부를 둘러싸고 공격했다... 2020. 9. 16.
마르크스주의역사학자 전백찬(翦伯贊)은 문혁때 왜 자살했을까? 글: 왕우군(王友群) 1968년 12월 19일 심야, 북풍은 사납게 불고, 차가움은 뼈를 찔렀다. 일찌기 중공에서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역사학자"라고 불렸던 전백찬은 처 대숙완(戴淑婉)과 옷을 정갈하게 갈아입고 나란히 자신들의 침대에 누워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여 자살했다. 다음 날, 사람들은 전백찬이 윗옷 오른쪽 주머니에서 종이조각을 발견한다. 그 위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나는 실로 말할 수 없다. 이런 막다른 길로 가게 되었다. 내가 이 막다른 길로 간 것을 두사부(杜師傅)는 전혀 모른다." 두사부는 전백찬 부부의 감시감독을 책임지고 있던 은퇴노동자이다. 그리고 전백찬의 윗옷 왼쪽 주머니에서는 또 다른 종이조각이 발견되는데, 거기에는 "모주석만세. 모주석만세. 모주석만세"라고 쓰여져 있었다. 전백.. 2020. 8. 25.
럼즈창(任志强): 발가벗고도 황제노릇하려고 고집하는 삐에로(전문) 글: 런즈창(任志强) 삼월 6, 2020 2월 18일 '기억과 반성'을 썼다. 원래 거기서 그만두려고 했다. 특히 다시 2월 19일의 상처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4년전의 2월 19일, 나는 '앙시성당(央視姓黨, CCTV의 성은 '당'이다)'라는 웨이보사진을 포워드하면서 "모든 메차가 성을 가지고, 인민의 이익을 .. 2020. 3.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