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방위관찰(方位觀察)
중국대륙에서 소식이 하나 전해져 왔다. 중공중앙기율검사위 부부장급 순시원 동홍이 조사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궤이한 현상은 동홍이 조사받은다는 소식은 선포되었지만, 동홍의 이력은 공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국대륙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검색엔진 바이두에서 '동홍'을 치면 '미안합니다. 당신이 방문하려는 웹페이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글만 나온다. 금방, '동홍이 조사받는다'는 소식도 마찬가지로 검색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동홍이라는 사람은 이제 중국대륙의 인터넷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되었다.
동홍은 1953년 랴오닝 하이청에서 태어났다. 1983년 중국인민대학을 졸업했고, '중앙고문위원회'에 배치된다. 그리고 중앙고문위원회 상무부주임 보이보의 비서가 된다. 그때, '중공중앙서기처 농촌정책연구실'에서 일하는 왕치산을 알게 된다. 왕치산이 승진하면서, 동홍은 '중앙고문위원회'를 떠나 왕치산을 따라 광둥, 하이난, 베이징시등의 성시로 가서, 왕치산의 비서가 된다. 2006년, 동홍은 중앙문헌연구실에서 부주임이 되고, 부부장급대우를 받는다. 7년이후인 2013년 왕치산이 중앙기율검사위서기가 된 다음 해, 동홍은 중앙기율검사위에 들어가고, 전문적인 부부장급 순시원이 된다.
동홍이 조사를 받는 것에 구체적인 죄명은 나오지 않았다. 이력도 없다. 현재 조사받는다는 소식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 모든 것은 아마도 그의 상사인 왕치산때문일 것이다.
전후로 보이보의 비서와 왕치산의 비서를 맡았던 동홍은 일반적인 부부장급간부가 가질 수 없는 장점이 있다. 그는 비서를 할 때 중공의 각 원로 및 집안들과 잘 알았다. 각 원로들의 가정을 마음대로 드나들며, 연락원의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조사원인이 공표되지 않은 동홍은 이런 연락원의 역할때문에 조사를 받는 것은 아닐까?
동홍이 조사받으므로, 왕치산과 시진핑의 관계가 결렬되었다는 소문도 무성하게 나온다.
중공의 시진핑정권은 2020년 가을이래 명확하게 비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2020년 9월 15일 시진핑과 EU지도자간에 거행된 영상회의에서 '인권문제'로 얼굴을 붉힌 후, 중공과 세계대국간에 겨우 존재하던 중국유럽관계도 파열되어 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중국은 세계에서 러시아 및 그 몇몇 '깡패국가'인 동생들과 아프리카의 소국을 제외하면 친구랄 수 있는 나라는 없게 된다.
그리고 중국대륙내부에서 원래는 2020년에 철저히 빈곤을 소멸시키고, '소강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경제목표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때, '힘든 날을 견딜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여 실제로는 공개적으로 '소강사회' 목표가 파탄났음을 드러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전략적 포위망을 좁혀오면서, 중국의 IT산업은 이미 전면적인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게다가 외자기업과 제조업이 대규모로 해외이전하고, 수출기업은 대거 도산한다. 중국대륙은 경제, 과기, 지연정치, 군사형세등 여러 방면에서 모두 위기에 처했다. 이는 필연적으로 중공상층부의 정치위기를 불러왔다. 위기의 순간, 중공의 각 원로들은 비록 공개적으로 발언하지는 않지만,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서로 연결하여, 상의하고 심지어 어떤 의미에서 정치적 연맹을 결성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필연적이다.
중공정권은 40년의 기간을 거친 후, 1976년 모택동이 사망한 이후처럼 다시 혼란국면에 들어섰다. 모택동이후의 혼란국면은 각방세력의 힘겨루기를 거쳐, 마지막에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국면을 타개한 것이 '등소평'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혼란국면에서 최종적으로 국면을 타개하는 인물은 누가 될 것인가?
중공의 각 원로의 실력, 연령, 능력, 박력 및 악독한 정도를 살펴보면, 현임 국가부주석 왕치산이 최고의 후보자가 될 것이다.
독재자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적은 공개된 적수가 아니다. 자신의 곁에서 자신의 권력을 빼앗고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인물이다.
예를 들어, 모택도의 경우, 모택동의 곁에서 가장 권력을 탈취하고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인물은 전기에 유소기, 후기에 임표였다. 그중 특히 임표는 모택동이 '가장 친밀한 전우'라고 칭했다. 그리고 임표를 '후계자'로 중공당장에 넣었다. 다만, 그가 1971년 여산회의에서 임표가 한마디 하자 모두 따르며 심지어 자신의 대관가(大管家, 비서실장)인 왕동흥도 임표의 말에 동의하는 것을 보고, 모택동은 진정한 두려움을 느낀다. 독재자의 두려움은 진압의 수단으로 나타난다. 여산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모택동은 중공정치국의 다섯 상위중 한명인 진백달을 체포한다. 비록 진백달이 모택동의 비서출신이지만, 1971년 여산회의전과 회의때 임표와 가까워졌다. 그후 임표의 몇몇 군대내 요직을 맡든 장군들에 대한 타격이 진행되고, 그들은 하나하나 반성문을 써야 했다. 모택동이 정치적 적수를 타격하는 수단과 과정을 잘 아는 임표는 결국 비행기를 타고 소련으로 도망치게 된다. 결국은 몽골의 사막에서 추락사하고 만다.
등소평도 모택동의 곁에서 실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임표처럼 직접 군대를 장악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모택도은 임종전에 등소평은 놓아준다. 단지 등소평의 모든 직무를 빼앗았을 뿐이다. 당적조차도 남겨두었다. 이는 등소평이 모택동이후에 혼란국면을 수습할 수 있는 기회를 남겨준 것이다.
왕치산은 제2의 임표가 될 것인가? 아니면 제2의 등소평이 될 것인가?
독재자에 협조해 반대파를 진압한 각도에서 보자면, 왕치산은 임표와 비슷한 점이 있다. 임표는 문혁때 모택동을 도와 유소기, 등소평, 팽진, 박일파(보이보)등 당정군의 지도자들을 타도했다. 왕치산은 2012-2017년 중앙기율검사위서기를 맡은 기간동안 시진핑을 도와 정치적 적수와 일당을 감옥에 보낸다. 다만, 필자의 생각에 왕치산이 제2의 임표가 될 기회는 크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왕치산은 군대를 장악하지도 못했고, 스스로 전용기를 움직일 권력도 없다. 그리고 시진핑의 부하들은 왕치산을 감시하고 있는데, 분명 옛날 모택동이 임표를 감시할 때보다 백배, 천배는 엄밀할 것이다. 왕치산에게 출국도망칠 기회는 없다.
왕치산은 도망칠 기회가 없다. 그러면 시진핑도 잠시 그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왕치산의 국가부주석은 그저 허직(虛職)이다. 아무런 실질적 권력이 없다. 하물며, 이 허직도 겨우 2년밖에 남지 않았다. 2023년 3월이 되면 임기가 만료되는 것이다. 시진핑은 왕치산을 엄밀한 감시하에 다시 2년반 있게 한 다음 2024년 제14기전인대에서 그에게 체면을 살려주며 은퇴시키면 되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시진핑의 집권서클이 2023년까지 버틸 수 있느냐이다. 혹은 겨우 2023년까지 버티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진정 실력있고, 능력있고, 인맥이 있는 사람이 나서서 혼란국면을 수습해야 한다. 그중 최선의 인물은 왕치산이 될 수밖에 없다.
그때가 되면, 왕치산이 명실상부한 제2의 등소평이 될 것이다.
이 모든 추단은 중공이 현재 중국대륙에서 유일하게 통치력을 보유한 정당이라는 전제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비록 중고은 부패가 극심하긴 하지만 중공의 엄혹한 진압하에, 중국대륙에는 이미 조직적인 반대역량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국대륙에서 성숙한 새로운 정치역량을 건립하여 중공의 통치지위를 대체하려면, 아마도 상당한 장기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극히 엄혹한 내우외환의 환경하에서, 중공내부의 특수한 권력투쟁은 이제 진정으로 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본극은 이제 막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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