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불릉17 중국역사상의 양부, 양자. 글: 도단방(陶短房) 언제부터인지 '양부'는 오락계, 특히 홍콩 대만이 오락계에서 '잠문화(潛文化)'였다. 그런데 지금은 본토에 상륙하였고, 소리소문없이 오락계뿐아니라 반오락계까지 만연되었다. '양자'가 되는 것은 오락권 혹은 반오락권의 인사이고, '양부'가 되는 것은 더욱 유명한 .. 2012. 3. 28. 균형의 타파와 재건 글: 왕립군(王立群) 세력간의 균형은 제국정권을 안정시키는 중요한 방식의 하나이다. 다만, 이런 균형은 가장 취약한 형태이기도 하며, 아주 쉽게 타파되기도 한다. 일단 균형이 타파되면, 제국정권의 안정성은 심각한 도전을 받는다. 균형이 타파되는 것은 어느 일파가 특정한 역사조건.. 2011. 4. 27. 골치아픈 권력승계 글: 후양방(侯楊方) 하남 영보(靈寶)에는 높은 대(臺)가 하나 있는데, 이름이 "귀래망사대(歸來望思臺)"이다. 이것은 한무제가 만든 것이다. 만년의 한무제는 이 대에 서서 눈물을 흘리면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생각하곤 했다. 한무제의 나이가 이립(而立, 30)에 그가 사랑하는 위자부와의 사이에 첫번.. 2009. 9. 11. 한선제(漢宣帝)는 왜 황후의 구족을 멸하였는가? 글: 허휘(許暉) 성명: 곽씨(霍夫人) 연령: 불상 연대: 서한(西漢) 신분: 가정주부 곽부인은 이 여인의 실제 성명이 아니다. 알려진 것은 이 여인의 이름이 "현(顯)"이라는 것뿐이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그녀가 한선제때의 권신(權臣) 곽광(霍光)의 부인이었으므로 ".. 2008. 2. 27. 한무제의 후계자 기원전94년, 한무제가 총애하는 구익부인(钩弋夫人)이 아들을 낳았다. 무제는 매우 예뻐했다. 비록 그는 이전에 이미 다섯 명의 자식이 있고, 황위계승자 즉 태자도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지만, 이 황제는 늙어서 자식을 얻었을 뿐아니라, 이 아이가 아끼는 후궁의 소생이며, 게다가 구익부.. 2007. 4. 2.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