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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185

평민 유수(劉秀)는 황제에 오르면서 왜 "한(漢)"이라는 국호를 그대로 썼을까? 글: 심야요재(深夜聊齋) 한(漢)나라는 전후로 400년간 지속되는데, 둘로 나뉜다: 서한(西漢)과 동한(東漢). 나중의 북송(北宋), 남송(南宋)과는 달리, 서한과 동한의 사이는 끊어져 있다. 중간에 왕망(王莽)의 신(新)왕조가 있었다. 다만, 한동안 '신'왕조는 주류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왕망은 황위를 찬탈한 인물로 덕이 없다고 여겨져서, 왕조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왕조의 중후기 당시의 사회 각계층에도 한왕조를 재건하려는 움직임은 있었다. 비교적 두드러진 것은 유씨종실(劉氏) 종실의 인물들 중에서 황제를 칭하는 자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비록 그 중 대부분은 가짜이긴 하지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한무제의 증손자라고 하였고, 어떤 사람은 한성제의 아들이라고 하였.. 2020. 6. 11.
유비는 익주(益州)를 취한 후 한중(漢中)을 형주(荊州)보다 중시했다. 글: 지역사(知歷史) 유비는 214년 익주를 취한다. 그후 215년 제1차 형주위기가 발생한다. 즉 손권이 유비에게 형주를 돌려달라고 한 것이다. 당시 조조는 한중의 장로(張魯)에 군사행동을 취한다. 유비는 익주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려하여, 동오의 요구를 받아들여 형주를 재분배하고, .. 2020. 4. 2.
"승상(丞相)"과 "재상(宰相)"은 어떻게 다른가? 글: 독립학자(獨立學者) 중국고대역사상 '승상'은 중요한 관직이었다. 가히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삼국시대라는 역사적 시기를 보더라도 제갈량(諸葛亮), 조조(曹操)라는 두 승상은 각자 조정이 대권을 장악한 바 있다. 승상의 권력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 2019. 12. 30.
소하(蕭何): 진말 영웅각축의 최대의 승리자 글: 곽천민(郭天民) 기원전209년, 얌전하게 농사나 지으려 하지 않고, 오로지 '부귀'를 꿈꾸던 농삿꾼 진승(陳勝)이 마침내 마음 속의 불만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900여명의 수졸(戍卒)을 이끌고 반란의 깃발을 내걸었다. 이는 진나라통치의 철의 장막의 한 부분을 찢어버리는 것이었고, 동.. 2019. 9. 16.
왜 한무제는 <춘주공양전>을 숭상하고, 한선제는 <춘추곡량전>을 숭상했을까/ 글: 국학분사단(國學粉絲團) &lt;춘추(春秋)&gt;는 유가의 '오경(五經)'중 하나로 공자가 편찬한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그거은 그저 하나의 사서(史書)이다. 모두 그 내용을 많이 알지는 못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고대에 &lt;춘추&gt;의 지위와 역할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초월한다. 고대인들.. 2019. 9. 16.
진(秦)왕조의 마지막 왕 자영(子嬰)은 누구의 아들일까? 글: 일합쾌락인생(壹哈快樂人生) 천고일제 진시황은 중국역사상 최초로 통일왕조를 이룬 제왕이다. 그러나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시피, 진왕조는 3세만에 망한다. 기원전207년 유방의 대군이 함양성 아래로 쳐들어왔을 때, 진삼세(秦三世) 자영은 성 밖으로 나와서, 역.. 2019. 6.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