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근 11

베이징의 노자호(老字號) 육필거(六必居)의 현액(懸額)은 엄숭(嚴嵩)이 썼을까?

글: 용가독사(勇哥讀史) TV드라마 을 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 명나라때, 북경의 노자호 점포인 '육심거(六心居)'가 있었다. 이곳은 조(趙)씨성의 형제 6명이 창업한 것으로, "육인동심(六人同心)"이라는 뜻이다. 대신 엄숭(嚴嵩)은 육심거의 장채(醬菜)를 아주 좋아해서, 계절마다 새로운 장채가 나오면, 엄숭은 가정제(嘉靖帝)에게 한 단지씩 보내곤 했다. 가정제는 육심거의 장채를 맛본 후 아주 만족하여, 육심거의 '심(心)자에 획을 하나 추가했다. 그렇게 하여, "육필거(六必居)"가 되었다. 그리고 엄숭이 직접 현액을 써서 점포의 이름으로 삼았다. 엄숭이 육필거의 점포현액을 써주었다는 주장은 민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육필거박물관의 공식입장은 엄숭이 육필거의 점포 편액을 써준 것은 맞지만, 가정제가 육필..

명나라환관 유근(劉瑾)의 "교지(矯旨)", "교조(矯詔)"는 누구의 책임인가?

글: 장풍(蔣豊) <명사기사본말(明史紀事本末) 제43권 <유근용사>를 보면 두 단어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하나는 "교조"이고 다른 하나는 "교지"이다. 어느 정도로 빈번하게 나타나는가? 매 페이지마다 이런 단어가 나타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요즘 말로 하면 인기검색어정도라 ..

장연령(張延齡)사건으로 본 대예의(大禮儀)사건의 본질

글: 두홍도(杜洪濤) 대예의는 명사연구의 중요과제이다. 맹삼(孟森), 이순(李洵), 장현청(張顯淸)등 사학명가들은 모두 깊이있는 연구를 하고, 극히 신선한 견해들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맹삼이래 대예의의 연구자는 왕왕 양정화(楊廷和)의 정덕16년 공위위기(空位危機, 황제위가 비어..

[황자쟁위술] 양차동풍술(亮借東風術) 양자입승패(養子入承牌) 주신호편

피동적으로 입적되는 경우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황제에게 황위를 넘겨줄 아들이 없는 것을 보고 양자로 들어가려고 한 소인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혹은 배분도 무시하고, 혹은 권신, 훈척에게 뇌물을 바치기도 하며, 목적달성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명무종 주후조는 비록 ..

엄숭(嚴嵩)의 여러가지 얼굴: 서생에서 간신까지

글: 범군(范軍) 청순(淸純) 처음에 엄숭이라는 명인이 세상에 남긴 얼굴은 청신가인(淸新可人)이다. 마치 일개 서생과 같다. 강서 분의(分宜) 사람인 그는 5살때 글을 읽기 시작하고, 9살때 현학에서 공부했으며, 10살때 현시에서 성적이 이미 발군이었다. 19세이 향시에 합격하여 거인(擧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