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유14 민국(民國)시대 가장 권위있는 10명의 국학대사(國學大師) 글: 방유(方維) 민국시기는 중국문화사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대사(大師)들이 많이 배출되었을 뿐아니라, 개성도 충만했다. 그리하여 춘추전국과 위진남북조의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1. 장태염(章太炎) 1929년, 상해 는 을 발행했다. 에서 108명의 영웅호한을 정한 형식을 모방하여당시 문화계의 대사들의 서열을 매긴 바 있는데, 1위로 선정된 사람이 바로 장태염이었다. 청화대학 국학원이 성립될 때, 가장 먼저 확정된 교수 명단에는 단지 3명이 있었다: 장태염, 양계초(梁啓超), 왕국유(王國維). 그러나, 장태염은 고사하고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뒤의 두 사람은 그와 이름을 나란히 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일찌기 양계초에 대하여는 "만일 양계초 같은 무리라면, 역사에 한 글자라도 들어갈 수 .. 2023. 5. 30. 청화대학(淸華大學)은 왜 세계일류대학이 될 수 없는가? 글: 가가(賈葭)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가선생님 <무문서동(無問西東)>을 보셨습니까? 당신이 꼭 봐야 하는 겁니다. 내 기억에 영화를 상영하는 날 손충회(孫忠懷) 선생이 친구들 단체방에서 이 영화를 칭찬한 것이 떠올랐고, 주말에 보러 가겠다고 생각했다. 말.. 2020. 1. 10. 진인각(陳寅珏)의 학문(學問)과 풍골(風骨) 글: 원빈(袁斌) 얼마전에 지나간 10월 7일은 진인각이 세상을 떠난지 5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진인각이 누구인가? 지금의 젊은이들은 아마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현당대학술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이름을 모를 수가 없다. 그는 역사학자, 고전문학연구가, 언어학자, 시.. 2019. 11. 13. 왕국유(王國維) 자살의 수수께끼 글: 양혜왕(梁惠王) 1927년 6월(음력 오월 초사흘), 저명한 학자 왕국유는 이화원의 곤명호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나이 겨우 51살이었는데, 장년이라고 할 만한 나이였다. 그의 죽음은 중국학술계에 큰 손실이었다. 그래서 저명한 역사학자 고힐강이 쓴 기념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는 학.. 2015. 1. 19. 하왕조(夏王朝)의 전설은 진실일까? 글: 장경위(張敬偉) 하왕조는 도대체 존재했었는가 아닌가? 이것은 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이 지금까지도 논쟁을 계속하고 있는 문제이다. 다만 사실은 중학교 역사교과서에 명확하고 상세하게 이렇게 적고 있다는 것이다: 기원전2070년, 선양제의 마지막 수혜자이자 치수영웅인 대우(大禹).. 2014. 10. 7. 왕국유(王國維)의 "육불(六不)" 글: 사비상(史飛翔) 국학대사 왕국유는 학문을 하는데 아주 엄격했고, 조그만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일생동안 그와 관련한 많은 에피소드를 남긴다. 1909년, 왕국유는 경사도서관의 편집을 맡는다. 나중에 <국학총간>의 기초선언(起草宣言)을 쓰는데, "학술에는 새 것과 옛 것의 구분.. 2014. 4. 4.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