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사회/북대와 청화

청화대학(淸華大學)은 왜 세계일류대학이 될 수 없는가?

중은우시 2020. 1. 10. 21:29

글: 가가(賈葭)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가선생님 <무문서동(無問西東)>을 보셨습니까? 당신이 꼭 봐야 하는 겁니다. 내 기억에 영화를 상영하는 날 손충회(孫忠懷) 선생이 친구들 단체방에서 이 영화를 칭찬한 것이 떠올랐고, 주말에 보러 가겠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이상하긴 한데, 부지불식간에 무슨 이유인지 관계인지 나는 오늘 오후 선전대학으로 가서 애프터눈 티를 마셨다. 문을 나오기 전에 들러서 <청화학당에서 청화대학까지>라는 책자를 집어 들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나는 하마터면 손에 든 책을 놀라서 떨어뜨릴 뻔했다.


이전에는 스포일을 겁내서 영화평을 전혀 읽지 않았다. 지금 간략한 평을 적게 된 것은 바로 나의 이 영화에 대한 이해이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도통(道統)'에 관한 영화이다. 4대 청화인의 이야기를 통하여 지식인의 책임, 도덕과 의의를 얘기했다. 당연히 나는 이런 아이디어는 좋다고 생각하고, 현재 이런 주제로 이야기하려면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무엇이 중국지식인의 도통인가? 전통적으로 증자(曾子)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불가이불홍의(士不可以不弘毅), 임중이도원(任重而道遠), 인이위기임(仁以爲己任), 불역중호(不亦重乎), 사이후이(死而後已), 불역원호(不亦遠乎)"


다만, 나는 청화대학으로 이 4개의 이야기를 연결시킨 것으로 관중들이 '도통'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데 충분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영화는 당연히 간단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 간단하면 임의로 처리해버리면 본뜻을 해칠 수 있다. 고른 네 가지 이야기는 '도통'과 거리가 모두 비교적 멀다. 청화대학교 역사를 보면 더 좋은 소재로 청화대학의 "자강불식후덕재물(自强不息厚德載物)"의 정신을 체현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왕국유(王國維)가 곤명호(昆明湖)에 투신하여 자살한 것이라든지, 진인각(陳寅恪)이 그를 위하여 기념비명을 쓴 것이라든지, 그런 것들은 일종의 왕조교체, 가국이란(家國離亂)을 뛰어넘는 경지이다.


이런 경지가 무엇인가? 진인각이 아주 분명하게 말했다: "유차독립지정시(惟此獨立之精神), 자유지사상(自由之思想), 역천만사(歷千萬祀), 여천양이동구(與天壤而同久), 공삼광이영광(共三光而永光)" 진인각은 중국전통의 '사(士)'의 도통을 현대서방지식인의 학통에 연결시켜서 해석했다. 즉 독립되고 자유롭게 진리를 추구하여야 하고, 진리는 전인류의 것이어야 하며, 고금중서를 가리지 않아야 한다. 청화대학 교가에 나오는 "입덕입언(立德立言), 무문서동(無問西東)"은 바로 이런 뜻이다.


나는 감독이 무엇을 찍지 않았다고 비평할 수는 없다. 다만 그가 찍은 이 몇 가지 이야기, 경지와 지취(旨趣)는 청화대학이 마땅히 가져야할 고도를 크게 낮추어 버렸다. 나는 나의 이해를 갖고 간단히 분석해 보겠다. 시간적으로 보면, 첫번째 이야기는 매교장의 학생에 대한 가르침이다. 두번째 이야기는 서남연대와 십만청년십만군이다. 세번째 이야기는 소아를 버리고 국가를 위하여 공을 세우는 것이다. 네번째 이야기는 사회를 위해 복을 쌓는 입덕이다.


결론적으로 4개의 이야기는 입덕입언입공(立德立言立功)이다. 이는 숙손표(叔孫豹)의 '삼불후(三不朽)'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떻게 해야 의미를 가지는가? 이 '삼립'이야말로 인생의 의미이다. 사람의 궁극적인 추궁이 무엇이냐에 대한 해답이다. 이를 통해 유방백세(流芳百世), 천재유명(千載留名)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는 중국문화본위주의의 시각이다. 일종의 간단하고, 대충 청화에 대하여 이해한 것이고, 인생에 대해 이해한 것이다. 진지하게 청화의 사상자원을 흡수하지 못한 것이다.


무엇이 사상자원인가? 현대적인 전환의 자원이다. 청화대학의 양계초, 왕국유, 진인각 같은 원로학자들은 일생동안 기실 그저 한 가지 명제를 사고하고 완성했다: 중국의 현대화전환. 중국은 2천년의 황제제국가에서 현대세계의 공화국가로 어떻게 변신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안에는 여러 차급(次級)의 소명제들이 있다. 양계초가 사고한 것은 정치전환이고, 왕국유가 사고한 것은 학술전환이며, 진인각이 기념비명에서 나타낸 것은 지식인의 사명전환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백년의 중국대학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명제는 현대성이다. 대학 자체는 현대성의 산물이다. 청화대학의 최초의 포지션은 미국유학예비학교였고, 외무부가 관리했다. 북경대학의 대문은 서쪽을 향하고 있다. 왜 중국대학의 교사를 살펴보면 청말로 거슬러 올라가는가? 한나라때의 태학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가? 왜냐하면 대학은 서방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청말때 구미의 풍우를 맞아 개조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 감독과 각본은 현대대학과 대학정신에 대한 이해가 확실히 너무 협소하고 천박하다. 그저 입언입공입덕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광고말처럼 하자면, 대학에 가서 우리에게 선행을 행하라고 가르치는가? 혹은 마음을 바로 하라고 가르치는가? 그렇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내가 이 십년동안 청화대학을 10번 이상 가봤다. 그러나 청화인들중 왕국유선생기념비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거기에 쓰여 있는 진인각의 진리에 대한 이해는 마찬가지로 대학의 의의에 대한 해석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근대이래의 대학의 학통과 도통은 두 가지 단계가 있다. 하나는 지식인의 중국현대전환에 대한 우려와 탐색이고, 다른 하나는 전환중에 어떻게 중국문제를 넘어 전세계, 전인류의 진리에 대하여 공헌하느냐이다. 그러나, 극본과 감독은 모두 이 두 가지 주제에 닿지 못했다. 그들은 청화대학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일 청화대학이 그저 홍(紅)이면서 전(專)인 애국주의와 입공주의를 자신의 전통이라 여긴다면, 그리하여 위의 두 가지 문제에 대하여 의식하지 못한다면, 청화대학은 영원히 세계일류대학이 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