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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력제7

미얀마는 왜 망명한 남명(南明) 영력제(永歷帝)를 받아주었다가 2년후 청나라에 넘겨주었을까? 글: 자귤(紫橘) 남명의 영력제가 멸망한 가장 관건은 바로 미얀마의 배신이었다. 주수지난(咒水之難)을 일으켜 영력제를 수행하던 신하들이 모조리 피살당하고, 영력제도 생포된다. 곧이어 오삼계(吳三桂)에게 넘겨져서 죽임을 당한다. 이정국(李定國)은 그 소식을 듣고 비분강개하여 같은 달에 병사하고 만다. 대명은 철저히 부흥의 기회를 잃었다. 그렇다면, 미얀마는 왜 영력제를 받아주었다가 다시 그를 팔아먹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청군이 미얀마로 다가오면서 영력제를 내놓으라고 핍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후 스스로 십전노인(十全老人)이라고 자부했던 건륭제마저도 미얀마를 공격하여 격패시키지 못했던 것을 보면 미얀마군은 환경적인 우세를 이용하면 청군을 이기지 못한다고 할 수 없었다. 영력제를 돌려보낸 것은 완전히 미얀.. 2022. 7. 18.
장헌충(張獻忠)의 양자 4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글: 초근일일(草根一一) 고대의 많은 제왕들은 양자를 거두기 좋아했다. 예를 들어, 이극용(李克用), 주원장(朱元璋)등이 그러했다. 명나라말기 농민정권인 대서정권(大西政權)의 장헌충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4명의 양자를 거두었는데, 나중에 이 4명이 운명은 모두 달랐다. 첫째, 진왕(秦王), 의왕(義王) 손가망(孫可望)(?-1660년), 섬서 연장현 사람. 1630년(명 숭정3년), 손가망은 장헌충을 따라 반란에 가담한다. 용맹하고 잘 싸워서 평동장군(平東將軍)이 되고, 이정국(李定國), 유문수(劉文秀), 애능기(艾能奇)와 함께 장헌충의 양자가 된다. 1646년(순치3년), 청군이 대거 사천으로 쳐들어온다. 장헌충은 봉명산(鳳鳴山)에서 전사하고, 나머지 부대는 손가망과 이정국이 물려받아, 운남, 귀주지.. 2021. 1. 28.
이성동(李成棟): "항명(降明) - 항청(降淸) - 재항명(再降明)", 두 황제를 죽이고, 가정삼도(嘉定三屠)를 일으킨 도살자 글: 만풍모우(晩風暮雨) 명나라말기, 한 무리의 충신양장(忠臣良將)이 배출된다: 예를 들어 사가법(史可法), 소관생(蘇觀生), 이정국(李定國), 정성공(鄭成功), 진방언(陳邦彦), 왕흥(王興)등이 있다. 동시에 한 무리의 난신적자(亂臣賊子)도 배출된다. 예를 들어, 이영방(李永芳), 퉁양성(佟養性), 오삼계(吳三桂), 전겸익(錢謙益), 공유덕(孔有德)등이 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 무리의 사람들은 이 양자의 중간에 있다. 그들은 '이익'을 쫓았다. 하는 행위는 모두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명나라에 공도 있고 과도 있어, 간단하게 충신, 간신으로 나누어 평가하기 어렵다. 그 중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성동이다. 1. 귀순명조(歸順明朝) 이성동은 자가 정정(廷楨)이고, 호는 호자(虎子)이.. 2020. 6. 3.
명나라말기의 황제들은 무능했지만 죽음을 겁내지 않았다. 글: 문재봉(文裁縫) 북경대학 교수인 양쿠이송(楊奎松)은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부의는 얼마나 죽기를 두려워했는가"라는 글을 쓴 바 있다. 확실히 부의(溥儀)는 무척이나 죽는 것을 겁냈다. 만주국시기 부의는 죽음을 겁내서 매번 일본 관동군의 고위참모 요시오카 야스나오(吉岡安直).. 2020. 3. 3.
백문선(白文選): 농민군과 남명의 명장, 그는 왜 청나라에 투항했는가? 글: 제운가(齊雲軻) 백문선은 남명(南明)역사상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대의를 깨닫고 대국을 고려하여, 남명의 통치를 지속시키고, 남명망명정부를 지키는데 걸출한 공헌을 했다. 그러나, 그는 왜 마지막에 청나라에 투항했을까? 역사상의 백문선은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1. 농.. 2019. 5. 21.
소무정권(紹武政權): 남명(南明)의 가장 단명했던 정권 글: 아초광인(我楚狂人) 남명의 가장 단명한 정권은 광주(廣州)의 소무정권이다. 후세의 평가가 가장 낮은 것도 역시 소무정권이다. 순치3년(1646) 십일월 초이틀, 남명의 대학사 소관생(蘇觀生)과 융무제(隆武帝)의 보신(輔臣) 하오추(何吾騶)등은 융무제의 동생인 당왕(唐王) 주율오(朱聿.. 2019.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