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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헌5

유백온(劉伯溫): 장량, 제갈량에 비견되는 그는 왜 비참한 최후를 맞았을까? 글: 흑색군(黑色君) 민간전통이야기에서 유백온은 장량(張良), 제갈량(諸葛亮)과 나란히 이름을 떨치는 지자(智者)이다. 주원장(朱元璋)이 명나라를 창립하는 과정에 큰 역할을 한다. 그후 공성신퇴(功成身退)하여 귀은전원(歸隱田園)한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시기를 받아 주원장 혹은 호유용(胡惟庸)에게 독살당한다. 역사상 유백온은 정말 그렇게 신기하였을까? 왜 귀은한 후에 선종하기 힘들었을까? 유백온은 주원장의 눈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유백온은 언제 관직에 나왔을까? 주원장의 부모가 아직 건재하고, 주원장 본인이 아직 지주를 위해 소를 키우고 있을 때, 유백온은 이미 지방관리를 지낸지 오래되었다. 그 자리에서 4,5년간 있은 후, 현(縣)에서는 더 이상 승진할 기회가 없다고 보고, 또한 동료들과의 관계도.. 2023. 7. 8.
명초 홍무(洪武) 4대사건: 주원장은 왜 그렇게 많은 공신을 죽여야 했을까? 글: 문재봉(文裁縫) 이런 말이 있다. 천하를 얻는 것은 쉽다. 그러나 천하를 다스리기는 어렵다. 주원장은 맨손으로 시작하여 천신만고 끝에 금수강산을 얻었다. 이런 가업은 당연히 자손대대로 이어져 무궁하기를 바란다. 군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불안정요소를 제거하여야 한다. 그리고.. 2020. 1. 17.
주원장과 유백온의 관계는 왜 점점 멀어졌는가? 글: 두문자(杜文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주원장이 황제로 오르기를 전후하여, 유백온은 주원장을 위하여 운주유악(運籌帷幄), 결승천리(決勝千里)하였을 뿐아니라, 그를 도와 입강진기(立綱陳紀)하도록 도와주어, 대명제국의 개국에 큰 공헌을 세웠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아주 좋았다... 2018. 12. 28.
주원장의 모사 유기(劉基)는 왜 관작을 사양하고 은퇴했을까? 글: 노후(老猴) 모사(謀士)는 자기의 지혜로 제왕을 위하여 계책을 내고, 공을 세우는 자이다. 주공의 곁에 머무는 무명영웅이다. 그들의 현저한 특징은 봉헌(奉獻), 공을 내세우지 않고, 관직에 연연하지 않으며,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일을 처리한다. 주나라때로부터 명나라에 이르기까.. 2018. 4. 7.
주원장(朱元璋)은 왜 유기(劉基)를 죽였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유기(劉基, 劉伯溫)은 절동(浙東, 절강성동부) 청전(靑田)의 명문거족이다. 원나라 지순연간에 진사가 되고, 일찌기 고안승(高安丞), 강절유학부제거(江浙儒學副提擧)등의 관직을 지냈다. 방국진(方國珍)이 거병한 후, 행성은 유기를 원수부도사(元帥府都事)로 추.. 2018.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