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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41

아편전쟁때 청군의 황당무계한 전술들.... 글: 한언쇄어(閑言碎語) 역사상의 오늘 1840년 7월 5일은 영국전함이 주산(舟山) 정해(定海)를 포격하여 아편전쟁이 정식으로 개전된 날이다. 아편전쟁이전에 천조(天朝)로 자처하며 고보자봉(故步自封)하던 대청제국은 이미 시대에 낙후되어 있었다. 문화와 사상도 그러했고, 무기와 군사는 더욱 그러했다. 제1차아편전쟁의 전모를 살펴보면, 청정부의 여러가지 대응책을 지금 생각해보면 황당무계하다. 오늘은 그런 것들을 얘기해보기로 한다. 아편전쟁때 청군은 어떤 웃지못할 전술전략을 펼쳤을까? 여인의 마통(馬桶)과 과각포(裹脚布) 영국인들이 광주로 쳐들어 올 때, 전선의 장수는 여인의 마통(요강)과 과각포(전족발싸개)를 내건다. 그들이 보기에 "오예(汚穢, 더러운 물건)"로 서양인들의 "요법(妖法)" 즉 서양인들의 .. 2023. 7. 5.
미중관계의 기원과 영향 (1) 글: 모해건(茅海建) 1. 초기 미중민간관계 미중양국의 민간교류는 아주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는 광주(廣州)의 무역이다. 1784년 8월, 미국상선 Empress China호가 중국의 광주에 도착한다. 그 항해노선은 뉴욕을 출발지와 도착지로 하며 15개월의 기간이 소요되었다. 1790년부터,미국상선은 미주의 서북해안에서 광주로 항해하여, 당시 미중무역에 근본적인 변화를 발생히킨다. 미국은 이때 처음의 13개주에서 태평양까지 서부영토를 개척했고, 이는 미중무역을 크게 촉진시키게 된다. 중국은 미국에서 화기삼(花旗蔘), 모피, 단향목(檀香木), 납(鉛), 면화(棉花)와 직물등의 물품을 수입했고, 미국은 중국으로 부터 차, 비단, 자기등의 물품을 수입했다. 19세기에 이르러, 미국상인들도 터키아편을 밀수.. 2023. 5. 1.
"아편전쟁"의 진정한 원인은...? 글: 이대야(李大爺) 나는 "아편전쟁"이라는 말을 아주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생각에 그것은 중국인이 근대사를 이해하는데 오도하는 경향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중국의 국문을 열어제치고 서풍동점(西風東漸)을 가져온 획기적인 이 사건은 기실 본질적으로 무역분쟁으로 인해 일어난 문명간의 충돌이고, 아편과의 관계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아편"을 가지고 이 전쟁을 정의하는 것은 극히 부정확하다. 청나라는 명나라의 정책을 이어받아 폐관쇄국정책을 유지한다. 1684년에 이르러, 해금(海禁)을 개방하고, 정점통상(定點通商, 정해진 장소에서 통상을 진행하는 것)을 허용한다. 여기에서 봉행된 것은 불평등무역이었다. 중국의 차, 자기, 비단은 너희들이 얼마든지 사가도 좋다. 다만 너는 중국시장에 마음대로 들어와.. 2023. 4. 17.
"아편전쟁": 중국의 창세신화 글: 고천활해(高天闊海) 이 제목만 보면, 어떤 네티즌들은 '제목으로 어그로'를 끌려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다. 영국의 역사학자 Julia Lovell(1975-)의 The Opium War: Drugs, Dreams and the Making of China(아편전쟁: 마약, 꿈, 그리고 중국만들기)라는 책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아편전쟁은 중국의 '창세신화(founding myth)'중 하나라고. 아편전쟁은 중국인들에게 의미가 아주 크다. 중국의 불쌍한 역사교육 속에서, 정부는 이데올로기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아편전쟁을 이러저리 뜯어고쳤다. 그렇게 하여 민족원한(서방국가에 대한)을 선동하고, 중공통치를 유지하려는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 중공이 역사허무주의로 고쳐쓴 중국역사속에서 .. 2023. 3. 13.
"중의(中醫)"에게 남겨진 진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글: 노패악곤(老牌惡棍) 친구와 인생의 반려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삼관(三觀,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이 맞아야 한다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그런데, 어느 것을 가지고 이것을 판단할 것인지를 놓고 얘기하는데, 그는 먼저 '중의(中醫)'에 대한 입장을 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입장, 이데올로기같은 류의 것들은 우리같은 평범한 백성들의 생활에 그다지 큰 영향이 없다. 기껏해야 입다물고 얘기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다만, 장래 아이의 코를 틀어쥐고 중약을 달여서 먹인다고 생각해보면, 머리가 아플 것이다. 그때 서로 전쟁을 치르는 것보다는 미리 예방하는 편이 낫다." 그의 각도는 신선했지만, 이치에 맞는 말이기도 했다. 단지 "당신은 중의를 믿습니까?"를 사귀는 사람에 .. 2023. 3. 9.
팔국연합군이야말로 중국인민해방군이다 - 아편전쟁이 중국인민의 해방전쟁이다. 글: 우별자(右撇子) 중국의 우민교육은 황당 그 자체이다. 중공이 만들어낸 각종 정치용어를 보면, 코메디와 몰염치로 충만핟. "해방(解放)"이라는 말을 보기로 하자. 곳곳을 다니며 강탈하고는 모두 '해방'이라는 명목을 붙인다. 전중국을 해방했다는 것은 기실 전중국을 강탈하여 자기 소유로 했다는 말이다. 특히 '대만해방'이라는 것은 더욱 가소롭다. 대만인들을 아주 잘 살고 있는데, 한 무리의 '못사는 자'들이 하루종일 '대만해방'시키겠다고 떠들고 있다니, 자신은 발에 족쇄를 달고서, 다른 사람을 해방시켜주겠다고 떠들고 있다. 이것보다 더 우스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중국인의 일상언어를 보면, 우리는 자주 해방전에 어떠했고, 해방후에는 어떻고 하는 말들을 듣게 된다. 공산당이 국민당과 강산을 쟁탈한 전쟁을.. 2023. 1. 13.
중국의 당금 정치형세는 서태후시절보다 못하다. 글: 원빈(袁斌) 중공20대가 가까워 오면서, 일련의 중국 지방고위관료들이 속속 시진핑에 대한 충성을 표시하여, "충성붐"이 일어나고 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서 초보적으로 통계한 바에 따르면, 과거 2개월간 최소 9명의 중공성위서기가 당간행물에 글을 실어 시진핑에 대한 충성을 나타냈다. 6월 22일 허난성위서기 러우양셩(樓陽生)은 에 글을 실어, "사상의 기치를 높이 들고, 영수의 촉탁을 깊이 새기자", 시진핑사상을 학습, 관철하는 것은 "필수과목, 자습과목, 평생과목"이며, "양개유호(兩個維護)"를 실천하고, 시진핑의 지시를 정치관건으로 장악해야 한다고 했다. "충성이 절대적이지 않으면, 그건 바로 절대적인 불충이다(忠誠不絶對, 就是絶對不忠誠)"이라는 구호를 외쳤던 텐진시위서기 리홍중(李鴻.. 2022. 7. 1.
아편전쟁(阿片戰爭)때의 중국인 글: 노패악곤(老牌惡棍) 1840년 7월 5일, 자금성(紫禁城)은 다른 날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이 날, 상처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도광제(道光帝)는 조제가법(祖制家法)에 따라 기춘원(綺春園)으로 가서 황태후에게 문안을 드렸고, 그후 몇 건의 일상적인 공문을 처리했다. 이 근검절약하기로 유명한 황제는 이때 알지 못하고 있었다. 천리 밖의 절강(浙江) 정해(定海)에서 중국에 “천년동안 없었던 대변국(千年未有之大變局)”의 전쟁이 소리없이 개시되고 있었다는 것을. 이때의 청나라는 역대왕조와 마찬가지로, 그저 “천하”만 알았지, “세계”는 몰랐다. 도광제도 역대제왕들과 마찬가지로 화이(華夷)만 알았지, 중외(中外)는 몰랐던 것이다. 비록 부친과 조부인 가경제(嘉慶帝)와 건륭제(乾隆帝)떄, 전후로 매카트니와 .. 2022. 6. 10.
아편전쟁때 청군과 영국군의 진실한 사상자 숫자는...? 글: 문방장거(文房掌柜) 제1차 하문지전(厦門之戰): 1840년 7월 3일 청군 전사 9명, 부상 16명. 영국군 사상자 없음. 제1차 정해지전(定海之戰): 1840년 7월 5일 청군 전사 13명, 부상 13명, 영국군 사상자 없음 (청군참전병력 1540명, 정해총병 장조발(張朝發)은 부상을 입은 후 사망했고, 정해지현 요회상(姚懷祥)은 자결함. 대각사각지전(大角沙角之戰): 1841년 1월 7일, 영국군은 정면포격을 선택하고, 육군은 측면에서 포위공격하는 전술을 쓴다. 청군은 277명이 전사하고, 중상을 입고 사망한 자가 5명, 부상 462명이다. 영국군은 부상 38명이다. 청군의 부장(副將) 진련승(陳連昇), 좌령(佐領) 유륭(裕隆, 만주족)이 전사하다. 호문지전(虎門之戰): 청군총병력 11,000명,.. 2021. 1. 30.
아편전쟁에서의 인도인 글: 강홍군(姜洪軍) "만일 추운계절이 되면, 그들 영국어르신들은 아예 다른 것은 심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부하들이 집집마다 찾아가서 선금을 현금으로 지급하고, 계약을 체결하게 했다." 이 글은 인도작가 아미타프 고시(Amitav Ghosh)의 소설 (중문판은 인민문학출판사에서 출판했다)에 나온다. 그렇다면, 이들 '영국어르신'들이 가난한 인도농민에게 무엇을 심게 했단 말인가? 이 '물건'은 바로 근대 중국인에게 엄청난 고난을 가져다준 아편이다. 그리고 이 것을 마음대로 중국에 수출하게 하기 위하여, 영국인은 아편전쟁을 일으킨다. 이 전쟁을 둘러사고, 무수한 얘기들이 파생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전쟁의 불가결한 제3자 즉 인도를 빠트리곤 한다. 인도는 영국인이 중국에서의 군사모험을 실현하게 만드.. 2020.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