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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의학

"중의(中醫)"에게 남겨진 진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by 중은우시 2023. 3. 9.

글: 노패악곤(老牌惡棍)

 

친구와 인생의 반려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삼관(三觀,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이 맞아야 한다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그런데, 어느 것을 가지고 이것을 판단할 것인지를 놓고 얘기하는데, 그는 먼저 '중의(中醫)'에 대한 입장을 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입장, 이데올로기같은 류의 것들은 우리같은 평범한 백성들의 생활에 그다지 큰 영향이 없다. 기껏해야 입다물고 얘기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다만, 장래 아이의 코를 틀어쥐고 중약을 달여서 먹인다고 생각해보면, 머리가 아플 것이다. 그때 서로 전쟁을 치르는 것보다는 미리 예방하는 편이 낫다."

 

그의 각도는 신선했지만, 이치에 맞는 말이기도 했다. 단지 "당신은 중의를 믿습니까?"를 사귀는 사람에 대한 첫번째 질문으로 하는 것은 실로 기괴하다고 할 수 있겠다. 최소한 현실적인 각도에서 보자면, "믿느냐 마느냐"는 아주 첨예하면서도 쉽게 갈등을 촉발시킬 수 있는 화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해도, 중의가 주류의학계에서 점점 역할이 희미해지는 것은 다툼없는 사실이다. 원인은 아주 분명하다: 현대의학이 해결한 분야에서 전통의학은 거의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분야가 점점 확대되면서, 앞으로 예견가능한 것은 중의의 생존공간이 점점 더 좁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팬데믹기간중의 여러가지 현상은 이를 증명한다. 신종코로나가 전세계에 횡행하고, 모든 사람이 속수무책이었을 때, 중의가 고개를 쳐들었던 첫번째 피크타임이었다. 무슨 청온(淸瘟), 무슨 청감(淸感), 무슨 배독탕(排毒湯)같은 것들이 예방작용을 할 수 있다고 나섰고, 심지어 당국은 이를 위하여 중의약전문팀까지 두었다.

 

그러나 백신이 나타나자, 중의들을 소리소문없이 들어간다. 그러다가 각종 변이가 나타나면서, 백신의 효과가 점점 하락하자, 중의약이 다시 등장한다. 이때는 여러 '국사(國士)'급의 거물들이 지지해주었다. 이 시기에 모 청온은 완판되었고, 이로 인하여 여러가지 해프닝도 일어났다.

 

지금 전국은 이미 방역조치가 해제되었다. 이는 신종코로나를 없애는 것이 현재 인류에게는 불가능하다고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이후에 이 황무지에는 또 중의들이 나타나서 활약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틈만 보이면 찔러넣는 재주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한가지는 모두가 목격했다: 신종코로나3년간, 현대의학의 지도하에 방역 및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 절대적인 주류였다. 비록 여러 집행단계에서 황당한 일도 많이 벌어졌지만, 현대의학이 발휘한 작용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거꾸로 계속 파란등이었던 중의는 완전히 무너졌다. 요 몇년간의 행태를 보면, 엉망인 진흙으로는 담장을 쌓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형용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중의가 없었더라도, 팬데믹의 결과는 전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더 좋았을 것이다.

 

그외에 이 모든 것은 신매체시대 덕분이다. 중의는 이번 대시험에서 확대경아래에 놓여 전체 네티즌들에게 보여지게 되었다. 이런 고강도의 전방위적인 감시하에서 아주 작은 것도 다 드러나기 마련이다. 사스시대에 얻었던 '중의신화'는 복제될 수 없었다.

 

당연히, 중의가 당금중국에서 비주류로 전락했다고 말한다면,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사회에서 여전히 적지 않은 수의 신도와 광활한 시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아직 쇠퇴하는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누구든지 주변에 중의를 신봉하는 사람을 몇몇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현대의학이 1930년대부터 점점 중국전통의학을 대체하여 의료체계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차지했지만, 전통의학의 군중기초는 여전히 아주 두텁고, 수요도 크다.

 

이는 과학교육과 보급의 강도나 폭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전통사회의 관성이 중요한 원인이다.

 

만일 중의신봉자들과 변론해본 적이 있거나, 유사한 변론을 들은 적이 있다면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수천년" "경험" "지혜" "노조종(老祖宗)"같은 단어가 상대방의 말에서 나타나는 빈도가 왕왕 아주 높다는 것을. 이는 중의를 '경험의학'이라는 정의를 얻도록 만든다.

 

순환반복하는 시스템중에서, 경험은 확실히 아주 중요하다. 심지어 안신입명의 기본이다. 비효통(費孝通)은 <향토중국>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향토사회는 안토중천(安土重遷)하여, 이곳에서 나고, 이곳에서 자라고, 이곳에서 죽는 사회이다. 인구의 유동이 아주 적을 뿐아니라, 사람들에게 자원을 제공하는 토지도 변동이 아주 적다. 이처럼 진한불분(秦漢不分, 왕조교체에도 불문하고)으로 대대로 이어지는 환경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경험을 믿을 뿐아니라, 마찬가지로 조상의 경험도 믿는다. 향토사회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이 부닥치는 것은 사계절의 순환이지, 시대의 변화는 아니다. 일년에 한번씩 돌고 도는 것이다. 앞사람이 생활문제를 해결하는데 사용했던 방법을 그대로 자신의 생활에도 복제하여 쓸 수가 있다. 전대에 생활에서 유용한 것이라고 증명된 것일수록, 더욱 보수적이 된다. 이렇게, 언필요순(言必堯舜)이 되고, 호고(好古, 옛것을 좋아하다)는 생활의 보장이 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향토사회'는 바로 전통사회를 가리킨다. 지난세기말까지의 중국이다. 이 흔적은 지금까지도 농후하다. 숭고(崇古 옛것을 숭상하다)의 사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존의 경험을 의심하지 않고 따르게 만든다. 사회변혁, 상전벽해도 이런 신앙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 반대로 오래된 말씀일수록 더욱 중요한 것으로 받들어진다. 이 모든 것은 모든 중국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배외(排外)심리도 사람들이 전통의학을 대할 때 이성을 유지하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현대중국을 얘기하려면 근대중국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그 점은 나도 동의한다. 최소한 지금의 어떤 심리상태를 이해하려면 근대의 굴욕사를 피해갈 수가 없다.

 

아편전쟁에서 철저히 패배하고나서, 중국인들은 견선리포(堅船利炮, 튼튼한 배와 날카로운 대포)의 거대한 위력 및 자연과학의 신기한 작용을 목도한다. 또한 강해지려면 서방을 배워야한다는 것도 잘 알았다. 그러나 이처럼 굴욕적으로 '부득이하게 따라하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민족주의가 일어나면서, 이런 역사의 굴욕감은 더더욱 중국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다. 이미 1세기여가 지났지만, 지금의 중국은 이미 서방화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시간의 긴 흐름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얘기하는 와중에 더욱 새로워지고 있다.

 

굴욕감은 자존심에 상처를 준다. 그리하여 다른 한편으로 이를 악물고 배외하려는 심리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중의'라는 명칭에서도 엿볼 수 있다.

 

현대적인 의미의 '중의'라는 단어는 옛날부터 존재하던 것이 아니다. 민국시기에 처음 나타났다. 심지어 그때도 그다지 유행하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은 "구의(舊醫)"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 양의(洋醫)는 "신의(新醫)"라고 불렀다. '중의'라는 단어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신중국이 성립한 이후의 일이다.

보편적인 학과의 앞에 나라명칭 혹은 민족명칭을 붙이는 것은 그 지역적 한계성을 드러내준다. 의학이 일단 지역성을 갖게 되면 배외는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화이지변(華夷之辯, 중화와 오랑캐를 나누어 중국과 외국을 대하는 것)하에서 중국은 자고이래로 배외해왔다. 단지 산업혁명이후 중국과 서방은 무기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를 보였지만, 이때의 서방의학은 산업혁명에서 아직 70년정도밖에 지나지 않아, 비록 전통의학과는 이미 상당한 거리를 벌였지만, 아직 선박이나 대포처럼 반드시 받아들이지 않으면 망할 정도의 지경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중의는 "생존자"가 되었다. 중국 서방화과정에서 몇안되는 완벽하게 남겨져 내려온 중화민족정통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의 과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세심하게 보살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자연도태가 이 분야에는 적용되지 않았고, 게다가 오랫동안 이 분야에서 일해온 종사자들이 많았으며, 시장이익과 민족신앙까지 더해져서, 나중에 현대의학이 중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울 때, 중의는 이미 울창한 삼림으로 존재했었다.

 

기실 중의, 서의의 문제에 관하여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전통의학과 현대의학의 범주를 벗어났다고도 할 수 있다. 과학교육과 보급만으로 단기간내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히 인식상의 차이만이 아니라, 수천년동악 축적된 역사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넓게 펼쳐진 그물망처럼 전체 사회를 감싸고 있어, 세대가 한세대 한세대 내려가고 교체되면서 서서히 그물망이 느슨해질 수있을 뿐인 것이다.

 

다만, 필자가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전통의학으로서 중의가 역사무대에서 퇴출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남겨진 진지가 이미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