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군11 임표집단 후손의 현황 글: 종견(鍾堅) 1971년 임표(林彪, 린바오)는 몽골사막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임표의 적계, 수행인원과 관련인원은 신속히 숙청된다. 대다수의 정치운명은 이로써 종지부를 찍는다. 그후 40년간, 부친대의 생사부침은 후손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쳤다. 임표의 적계혈맥, 그의 수행인원, 부하.. 2012. 3. 2. 이작붕(李作鵬): 사람은 가고, 수수께끼는 남고... 이작붕,오법헌,임표,황영승,구회작(왼쪽부터) 글: 한복동(韓福東) 2009년 원단후 이틀만에(1월 3일), 파란색 환자복을 입은 이작붕은 북경안정병원 18병구의 병상에서 영원히 두 눈을 감았다. 향년 95세이다. 이제 임표(林彪)의 소위 "사대금강(四大金剛)"인 황(黃永勝), 이(이작붕), 오(吳法憲), 구(邱會作).. 2009. 1. 17. 임표는 네번이나 후계자가 되는 것을 거절했다. 글: 노구불로(老九不老) 문혁동안, 모택동은 "포타사령부(砲打司令部, 사령부를 포격하라)"는 대자보(엄격히 말하면 '소자보'이다. 왜냐하면 이 글은 벽에 붙여지지 않았다)를 써서 일찌감치 공인되었던 후계자인 국가주석 유소기를 끌어내렸다. 그후, 모택동은 일관되게 자신을 따른 임표(林彪)를 후.. 2009. 1. 5. 임표는 왜 "정조증명서"를 제출했는가? 작자: 미상 임표의 부인인 섭군(葉群)의 인사자료에는 남편인 임표가 당조직에 제출한 "정조증명서(貞操證明書)"가 하나 들어 있는데 그 주요한 내용은 "섭군 동지가 나와 결혼할 때 여전히 처녀였음을 정중하게 성명한다"는 것이다. 이 증명서는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전형적인 반면교재로 활용되었.. 2008. 2. 12. 임표(林彪)와 그의 일생에서의 다섯 여인 (4. 손유세, 5. 섭군) 등영초(주은래부인), 손유세, 주은래 5. 손유세(孫維世) 임표의 일생중 가장 마음을 움직였던 여인은 손유세이다. 손유세의 부친은 손병문(孫炳文)으로 공산당원이었으며, 주은래의 뒤를 이어 황포군관학교의 정치부 주임 겸 총교관의 직무를 수행한다. 주은래, 주덕과 모두 좋은 친구 사이였다. 유렵.. 2006. 2. 20.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