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25 청나라에는 왜 왜구(倭寇)가 없었을까? 글: 지역사(知歷史) 원나라 중후기부터 왜환(倭患)"은 3세기여동안 지속되었다. 특히 명나라 가정(嘉靖)연간에 40년동안 지속되고, 전화가 동남연해에 미친 '가정대왜란(嘉靖大倭亂)'이 가장 심했다. 그러나 아편전쟁이전의 청나라때 '왜환'은 조용했다. 비록 1990년대 홍콩, 대만에서 만든 .. 2020. 3. 25. 융유(隆裕): 중국역사상 가장 공헌이 큰 황후 글: 청림지청(靑林知靑) 이전에 나는 융유황후를 좋아하지 않았다. 여러분들도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얼굴도 못생겼고, 말랐으며 등이 굽었다. 그리고 남편 광서제보다 3살이 많았다. 황후라는 명분은 있으나, 한번도 광서제의 은총을 받은 적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 2019. 1. 23. 이순(李珣): 페르시아인으로 만당(晩唐)의 저명한 시인이 되다 글: 도역사(淘歷史) 당나라는 경제가 번영했고, 주변의 나라들과도 사이가 좋았다. 수시로 토번, 서역등의 상인이 당나라로 와서 경제무역활동을 진행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어서 고국으로 돌아가고, 어떤 사람은 계속 남아서 돈을 벌며 정착했다. 만당시인 이순의 가족도 바로 이렇게.. 2019. 1. 16. 이자성은 북경의 실패후 왜 남경으로 가지 않았는가? 글:천애간점(天涯看點) 1644년, 이자성은 산해관에서 패배한 후 북경에서 퇴각한다. 1년도 되지 않아, 이자성의 근거지인 섬서는 청군에 의해 남북에서 협공을 받는다. 이자성은 할 수 없이 대순군을 이끌고 대본영 서안에서 퇴각한다. 처음에 이자성의 생각은 하남을 거쳐 남경으로 가는 .. 2019. 1. 7. 무을사천(武乙射天): 은상(殷商)말기의 수수께끼같은 사건 글: 황수(黃帥) <사기> 본기편의 전3장을 읽어보면, 사마천이 오제와 하상시기의 역사에 대하여 상당히 간략하게 적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통치자에 대한 기록은 겨우 이름만 있고, 어떤 경우는 개략적인 재위기간만 있다. 더 많은 경우는 그저 한마디만 하고 지나간다. 누가 '.. 2018. 10. 24. 이백(李白)의 혼인생활 글: 이응만(李凝萬) 한 사람의 혼인에 대한 태도를 보면 그의 사상, 추구 심지어 성격특징까지 알아낼 수 있다. 이백의 혼인상황은 도대체 어떠했을까? 몇번이나 결혼했을까? 그의 처는 누구일까? 부부관계는 어떠했을까? 자식은 몇이나 낳았을까? 아이들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이것은 이.. 2018. 8. 6.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