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마의60

"이사쟁공(二士爭功)": 위나라가 촉과 오를 멸망시킨 후 왜 두 공신의 다툼이 일어났을까? 글: 역사대학당(歷史大學堂) 삼국시대 말기에 사마소(司馬昭)가 주도한 조위(曹魏)가 촉한(蜀漢)을 멸망시키는 전쟁이 성공한 후, 종회(鍾會)와 등애(鄧艾) 두 공신간에 서로를 공격하는 '이사쟁공'의 비극이 일어난다. 이 이야기는 후세에 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고, 오늘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그뿐아니라, 사마소의 아들인 진무제(晋武帝) 사마염(司馬炎)이 주도한 서진(西晋)이 동오(東吳)를 멸망시키는 전쟁에 성공한 후, 다시 한번 두 공신 왕혼(王渾), 왕준(王濬)간에 서로 반목하여 원수가 되어 다시 '이사쟁공'의 일막이 벌어진다. 유사한 상황이 유사한 과정을 거쳐서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왜 사마씨가 주도하는 촉과 오를 멸망시키는 전쟁이 성공한 후, 항상 공신.. 2022. 7. 26.
제갈량 vs 이엄 (3): 촉국 인재고갈의 원인이었을까? 글: 의사리(衣賜履) 230년, 이엄은 제갈량에 의해 한중으로 옮겨가고, 중도호의 신분으로 승상부를 관리한다. 231년, 봄에 제갈량은 다시 기산을 나선다(제4차북벌). 이엄은 양초의 운송을 책임진다. 이번 북벌은 제갈량과 사마의가 처음으로 맞붙은 전투였다. 구체적인 전황은 여기에서 다시 언급하지 않겠다. 여름,가을이 교체하는 시기에 하늘에서 큰 비가 내리고, 양식운송이 되지 않았다. 이엄은 참군 마충, 독군 성번을 보내 제갈량에게 철군하도록 말을 전한다. 제갈량은 그리하여 철군한다. [의사리] 이엄이 제갈량에게 철군을 통지하였다는 내용의 원문은 이러하다: "평견참군호충(平遣參軍狐忠) 독군성번유지(督軍成藩喩指), 호량내환(呼亮來還)" 여기의 유지(喩指)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이엄이 후주 유선의 뜻이라고 .. 2022. 3. 9.
제갈량 vs 이엄 (1): 이엄축출사건의 수수께끼 글: 의사리(衣賜履) [의사리]: 제갈량의 제4차북벌은 의 기재에 따르면, 위나라병사 3천여명을 참살하고, 거기장군(車騎將軍) 장합(張郃)을 사살하였다. 그러나 군량조달이 제대로 되지 않아, 철군하게 된다. 비록 휘황한 승리를 거두었지만, 한중(漢中)으로 돌아온 후, 제갈량이 한 첫번째 조치는 논공행상이 아니었다. 심지어 논공행상을 전혀 하지 않았고, 당초 그와 함께 유비에게 백제성에서 탁고(託孤)를 받았던 2인자 이엄(李嚴)을 관직에서 축출하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아주 이상하다. 이엄이 축출된 이유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그리하여 역사가들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를 몰랐다. 예를 들어, 전여경(田餘慶) 선생은 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엄의 거동은 어쨌든 지나치게 괴류(乖謬)하여 상정(常情)에 부합하.. 2022. 3. 7.
사마의(司馬懿)의 스승은 누구일까? 글: 위문한사(魏門寒士) 삼국시대의 사마의는 아마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삼국시대에 사마씨가족은 최대의 승리자이니까. 이는 사마의가 지닌 능력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이렇게 보면 사마의는 분명 명사(名師)의 가르침을 받았을 것같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제갈량, 방통의 두 천재는 모두 사마휘(司馬徽)의 제자이다. 사마휘는 사마의와 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사마의는 사마휘를 스승으로 모시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사마의의 스승은 누구일까? 기실 사마의의 두 아들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마의의 가장 유명한 두 아들은 바로 사마사(司馬師)와 사마소(司馬昭) 둘일 것이다. 두 사람은 적출이면서 아주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두 사람의 이름을 합치면 "사소(師昭)"이다. 그렇다고 사마의의 .. 2022. 1. 19.
<삼국연의>의 주군을 배신한 10대 반도 작자: 미상 먼저, 우리는 삼국연의의 반도에 대하여 정의를 내려보자. 본문에서 주군이 아직 죽지 않았고, 그리고 그를 후대했는데도 그는 배신하고 적에게 가서 주군에게 크게 해를 끼친 사람을 진정한 반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정의를 기준으로, 삼국연의의 10대 반도를 정리해보자. 바로 이들이다. 1. 여포(呂布) 의문의 여지없이 여포는 삼국연의의 최대 반도이다. 여포는 원리 정원(丁原)의 의자(義子)이자, 정원 수하의 아끼는 장수였다. 그런데 그는 적토마 1필 때문에 정원을 죽인다. 이런 행위는 완전히 반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동탁에 투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동탁에게 딴 마음을 품는다. 그것도 한 여인 때문에. 원래 동탁을 따르면 여포에게는 앞날이 밝았다. 어쨌든 동탁은 조정을.. 2021. 12. 24.
조위(曹魏)의 효기장군(驍騎將軍) 3명은 누구일까? 글: 정회역사(情懷歷史) 효기장군은 고대의 무장 관직이다. 한무제때 이광(李廣)이 효기장군에 봉해진 바 있다. 이에 대하여, 사마천은 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한(漢)은 마읍성(馬邑城)으로 선우(單于)를 유인했다. 대군을 마읍의 옆 골짜기에 매복시켰고, 이광이 효기장군으로 호군장령을 이끌었다. 그때 선우가 눈치를 채고 가버린다. 한나라군대는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한다. 그후 4년이 지나, 이광은 위위(衛尉)로 장군이 되어, 안문관(雁門關)을 나가 흉노를 친다." 삼국시대에 이르러, 비록 촉한과 동오에는 모두 효기장군이라는 관직을 설치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위의 역사에는 3명의 효기장군이 있다. 그리고 이 3명은 모두 조위의 종실(宗室)이다. 그렇다면, 조위의 세 명의 효기장군은 도대체 누구일까. 첫번.. 2021.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