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미상
먼저, 우리는 삼국연의의 반도에 대하여 정의를 내려보자. 본문에서 주군이 아직 죽지 않았고, 그리고 그를 후대했는데도 그는 배신하고 적에게 가서 주군에게 크게 해를 끼친 사람을 진정한 반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정의를 기준으로, 삼국연의의 10대 반도를 정리해보자. 바로 이들이다.
1. 여포(呂布)
의문의 여지없이 여포는 삼국연의의 최대 반도이다. 여포는 원리 정원(丁原)의 의자(義子)이자, 정원 수하의 아끼는 장수였다. 그런데 그는 적토마 1필 때문에 정원을 죽인다. 이런 행위는 완전히 반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동탁에 투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동탁에게 딴 마음을 품는다. 그것도 한 여인 때문에. 원래 동탁을 따르면 여포에게는 앞날이 밝았다. 어쨌든 동탁은 조정을 지배하고 있었고, 명의상으로도 비교적 권위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여인을 위하여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포기하고, 직접 동탁을 죽여버린다. 실로 실망스러운 일이다. 정말 나쁘고 멍청하다.
동탁을 죽인 후, 여포는 바록 짧은 기간동안 권력을 누린다. 그러나 왕윤은 그를 신임하지 않았다. 서량군의 잔여세력을 소탕할 때 여포는 아예 발언권이 없었다. 결국 왕윤이 멍청하게 일을 처리하는 바람에 서량군이 반란을 일으키고, 장안이 함락된다. 여포는 어쩔 수 없이 중원으로 도망치게 된다. 다시 되돌아보면 여포의 배신행위가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만일 동탁을 착실하게 따랐다면, 앞날은 광명이었을 것이다.
여포는 두 명의 의부를 죽인 나쁜 행적이 있기 때문에, 그는 중원각지에서 모두 환영받지 못했다. 결국 조조에 의해 설 자리를 잃고 할 수 없이 유비에 의탁한다. 유비는 인의로운 사람이어서 여포를 거두어 준다. 그러나 여포는 다시 유비를 기습하고 서주를 점령한다. 정말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여포는 정말 신의가 없다. 이때부터, 기실 여포의 최후는 이미 결정된 셈이다. 이런 사람은 천성적인 반도이다. 그저 이익만 보이면 누구든 배반한다. 그래서 그를 거두어 쓸 수가 없다. 정원, 동탁, 유비는 바로 가장 좋은 예이다. 그래서 백문루에서 여포의 최후는 기실 죽을 수밖에 없었다. 유비가 낙정하석을 하든 말든 조조는 그를 죽여버렸을 것이다.
2. 허유(許攸)
많은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본문에서 왜 허유를 반도의 랭킹 2위에 올려놓았는지. 이치대로라면 그는 그저 재주를 믿고 오만했던 자가 아닌가. 기실 만일 우리가 허유의 사적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바로 발견할 수 있다. 허유는 확실한 거물 반도이다.
허유는 재능이 있다. 그래서 원소가 그를 아주 중시했고, 항상 곁에 두고서 자신을 위해 계책을 내도록 했다. 그러나 허유라는 자는 예상외로 원소를 배반했고, 결국 원소는 관도지전에서 패배하게 된다. 원씨일가는 이때부터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관도지전이 전형적인 '이소승다(以少勝多, 소수의 군대로 다수의 군대를 이기다)'의 사례라고 말한다. 조조의 군사지휘능력이 빛났다는 것이다. 기실 그건 오해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조는 원소와의 대진에서 약세를 보인다. 병력을 비교해도 조조는 원소만 못하다. 원소의 군대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가 없었다. 국력을 비교하더라도 원소수하의 4개주가 있는데, 모두 부유한 땅이다. 조조의 사전지지(四戰之地)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당시의 조조는 이미 양식이 부족했다. 더 소모하다가는 조조군은 결국 말라죽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원소쪽은 후방의 물자조달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원소는 조조의 상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조조를 말려죽일 생각이었다. 그후에 군대를 밀고 들어가서 접수하면 되는 것이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의외의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조조는 이 전투에서 반드시 패배하고, 원소는 반드시 승리한다. 그런데 결국 의외의 일이 벌어진다. 바로 원소가 승리를 거머쥐려는 찰나 허유가 원소를 배반한 것이다. 원소의 가장 중요한 군사정보 즉 양식을 쌓아놓은 장소를 조조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리고 조조에게 직접 군대를 몰고 오소(烏巢)의 양식창고를 습격하도록 건의한다. 그리하여 원소군의 군량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결국 군심이 이반하여 철저히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원문: (허)유가 아뢰기를 원소의 군량무기는 모두 오소에 쌓여 있습니다. 지금 순우경에게 지키게 하고 있는데, 순우경은 술을 좋아하고 아무런 방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공께서 정예병사를 뽑아 원소의 장수 장기(蔣奇)가 병사를 이끌고 그곳에 가서 양식을 호위하려고 한다고 속여서, 기회를 보아 양식과 무기를 불태워버리십시오. 그러면 원소의 군대는 3일도 되지 않아 자중지란에 빠질 것입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허유를 중하게 대접하고, 군영에 남긴다.
사실상 허유가 원소를 배반한 것은 원소가 그의 건의한대로 허도를 기습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허유가 기주에 있을 때, 만간의 재물을 함부로 거두고, 자식과 조카들이 세금을 더 많이 거두도록 놔두었기 때문"이다. 그와 그의 가족의 부정부패가 발각되어 가족이 체포도었다. 그는 원소가 그의 책임을 나중에 추궁하는 것이 겁났다. 그래서 원소를 배반한 것이다. 허유의 행태를 보면, 그는 재물을 탐하는데다가 이기적인 반도이다. 여포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는 자이다.
3. 사마의(司馬懿)
사마의를 반도라고 하는 것으 그가 조씨가문을 배반했기 때문이다. 비록 조씨가문이 사마의를 많이 방비했고, 조조는 심지어 사마의는 응시낭고(鷹視狼顧)의 상이라고 말했지만, 조비, 조예는 모두 사마의를 중용했다. 임종전에, 사마의를 탁고대신으로 삼으며, 사마의에게 조씨집안을 잘 보좌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조씨일가는 사마의에게 아주 잘 대해주었다. 그러나 사마의는? 그는 오히려 조위의 대권을 빼앗고, 조씨의 고아과모를 핍박했다. 실로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의 음모행위로 역대왕조에서 모두 사마가족을 아주 좋게 보지 않게 된다.
조비가 한나라를 빼앗은 것은 한왕조가 이미 붕괴되어었기 때문이다. 천하는 모두 조조가 평정했다. 그러나 사마가문이 위나라를 빼앗은 것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천하는 사마가문이 평정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당시의 위나라는 국력이 전성기였고, 사마가문은 온전히 음모로 그 자리를 차지했다. 자신의 진정한 능력으로 차지한 것이 아니라. 바꾸어 말하면, 당시 조위가 망하고 붕괴되어, 사마의가 다시 조위를 통일시키고 그후에 찬탈했다면 기실 모두 인정했을 것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것은 진정한 실력이다. 음모의 권모술수가 아니라. 특히 사마의처럼 주군을 팔아먹는 반도행위는 인정해주지 않는다.
4. 가후(賈詡)
가후 이 자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괜찮게 하는 편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반도 신분을 벗어날 수는 없다. 가후는 한신(漢臣)이다. 다만 그는 서량군(西凉軍)에-게 장안으로 진격하도록 건의했고, 그리하여 동한은 다시는 재기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나중에 가후는 장수(張繡)의 부하가 된다. 완성전투에서 가후는 장수를 도와 조조의 아들, 조카와 심복장수까지 죽음에 몰아넣는다. 그리하여 장수와 조조는 생사대적이 된다. 그런데 관도지전 전에, 가후는 원소의 요청을 거절하고, 오히려 장수로 하여금 조조에게 투항할 것을 권유한다. 그리하여 성공적으로 장수를 밟고 위로 올라가게 된다.
사람들은 그저 가후의 성공과 평안한 말년만 보고, 그가 일찌기 주군 장수를 얼마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는지는 보지 않는다. 장수가 처음에 조조에 투항했을 때 예우는 꽤 괜찮았다. 조조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의 통큰 모습, 원한을 따지지 않는 대범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나 결국 장수일가의 최후는 아주 비참했다. 자신도 흐리멍텅하게 죽었을 뿐아니라, 아들도 처형당해서 그의 일맥은 끊어지게 된다.
5. 장송(張松)
유장(劉璋)은 기실 장송에게 잘 대해주었다. 장송을 익주별가로 임명한다. 그러나 장송은 유장이 어리석고 약해서 좋은 주군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장송이 필요로 했던 것은 그를 데리고 천하를 정벌할 수 있는 주군이었다. 그래서 그는 직접 유장을 배신하고 팔아먹는다. 유장은 장송을 조조에게 사신으로 보내어, 신하로 복속하겠다고 표시한다. 그러나 장송은 기실 조조에 투신할 생각이 있었고, 조조를 도와 익주를 차지하고 유장을 죽이는 것을 돕겠다고 한다. 그러나 조조는 장송을 좋게 보지 않았다. 결국 장송은 다시 유비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유비와 손을 잡고 익주를 도모하게 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장송이라는 내부의 협력자가 없었더라면, 장송이 가져다준 익주지도가 없었더라면, 유비는 익주를 쉽게 차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장송이 유비에게 투항하면서 여러 사람을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장송은 유장 수하의 대반도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6. 맹달(孟達)
장송이 유비에게 투항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온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맹달이다. 맹달은 유방에게 투항한 후, 다시 여러번 반도행위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맹달은 먼저 유장을 배반하고, 유비에 의탁한다; 다만 유비는 맹달을 중용하지 않았고, 맹달에게 상용(上庸)을 지키게 보냈다. 관우가 맥성에서 패주하자 유봉(劉封), 맹달에게 가서 도와주라고 했으나, 그들 둘은 원치 않았다. 결국 관우는 패배하고 피살당한다.
맹달은 관우가 죽은 것을 보자, 유비가 반드시 그 책임을 뒤집어씌울 사람을 찾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유비는 계속 자신을 좋게 보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조위에 투항해서 조위의 예우를 받을 생각을 한다. 만일 맹달의 일이 여기서 끝났더라면, 그는 10대반도랭킹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확실히 그는 어쩔 수 없이 막다른 골목에 몰려서 조위에 투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갈량의 북벌때, 그는 다시 한번 조위를 배반하고 촉한에 투항한다. 이제 알 것이다. 맹달은 현상에 만족하지 못하는 자이다. 세번이나 주군을 배반하다니, 그것만으로도 여포에 비견할 만하다.
7. 미방(糜芳)
미방은 유비의 처남이어서 신임과 중용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직접 유비를 배반한다.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양번지전때 관우가 병력을 이끌고 출전하며, 미방에게 강릉성을 잘 지키라고 한다. 그러나 동오가 쳐들어오자, 미방은 아예 저항하지 않고, 직접 투항해 버린다. 그리하여 관우는 원군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관우수하병사들은 집이 강릉성에 있었다. 미방이 배반하자, 이들은 모두 동오의 수중에 인질이 된다. 누가 감히 가서 싸우겠는가? 그래서 형주병은 군심이 흩어지고, 많은 병사들이 도망치게 된다. 관우는 어쩔 수 없이 익주로 철수하였고, 결국 맥성으로 패주한다.
미방은 유비의 처남이며, 촉한의 창업원로중 하나이다. 촉한에서의 지위도 아주 높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왜 이런 반도가 되었단 말인가. 동오에서 촉한만큼 좋은 대우를 해줄 것같은가?
8. 초주(譙周)
초주는 전형적인 반도라 할 수 있다. 유비가 오자 그는 유장에게 투항을 권유한다. 등애가 오자, 그는 유선에게 투항을 권유한다. 이 자는 정말 투항을 권유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등애가 촉한으로 쳐들어 온 후, 촉한의 조정은 기실 대다수가 투항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들은 위나라와 그렇게 오랫동안 싸워왔고, 깊은 원한이 있는데, 모두가 생각하는 것은 도망가서 계속 저항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어디로 도망치는게 좋을지를 토론하고 있을 때, 초주가 나타난다. 그는 유선에게 투항을 적극 권유한다. 그리고 결국 사람들을 설득한다. 그리하여 강대한 촉한이 대량의 군대를 가진 촉한이 이렇게 멸망해버린 것이다. 실로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9. 장합(張郃)
관도지전때 만일 허유가 최대의 반도라면, 장합은 제2의 반도이다. 허유는 원소의 양식보관장소를 팔아먹어 원소에게 대량의 양식을 손해보게 만들었다. 그러나 원소의 후방에는 물자가 충분했다. 조조군대의 진격만 막을 수 있다면, 원소군의 군심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양식이 다시 운송되는 것을 기다리면 원소가 우세를 유지하고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관건적인 순간에 장합이 투항해버린다. 이는 원소군에 큰 타격을 준다. 원소의 수하대장은 원래 안량과 문추였다. 그들 둘이 죽은 후, 장합이 군내에서 가장 유명한 맹장이었다. 그런데 장합이 직접 투항한 것이다. 나머지 원소군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이는 유비, 관우, 장비가 출정했는데, 관우, 장비가 투항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더 싸우겠는가.
그래서 장합의 투항행위는 원소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원소는 철저히 군심을 안정시킬 기회를 놓쳤다. 장합은 이를 갈만한 반도이다.
10. 종회(鍾會)
등애가 유선의 항복을 받아낸 후, 종회가 대군을 이끌고 촉한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음모궤계를 써서 등애를 붙잡고, 촉지의 위군을 장악한다. 이처럼 강대한 군사력을 손에 쥐자 종회는 야심이 팽창한다. 자신의 상사인 사마소(司馬昭)를 배신하고 스스로 왕이 되고 나아가 사마소를 공격하고자 한다. 그런데 촉지의 위군이 그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결국 종회는 혼란속에서 사망하고, 음모는 실패로 끝난다.
사실상 종회의 행동은 사마집안을 모방한 것이다. 옛날 사마가족은 음모로 조위의 대권을 탈취하였다. 그것이 여러 사람들에게 전례로 남은 것이다. 그래서 종회도 마찬가지로 행동한 것이다. 그래서 사마소를 배반하고, 사마소를 공격하여 위나라의 대권을 빼앗으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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