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해심진(史海尋珍) 서진(西晋)이 세워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황족들간에 대규모 내전이 발생한다. 역사에서는 "팔왕의 난(八王之亂)"이라고 부른다. 거듭되는 혼전속에 동한말기이래 원래 심각하게 손상입은 국력이 더욱 소모된다. 북방이 머물던 유목민족은 그 기회를 틈타 남하하여 중원을 차지하고자 한다. 사마예는 세가대족(世家大族)의 보호하에, 남방의 건업(建鄴, 지금의 남경)으로 내려가 동진(東晋)을 세운다. 다만, 사마예의 즉위에 대하여는 말들이 많았다. 그중 중요한 하나의 원인은 바로 그가 사마씨(司馬氏)의 후손이 아니고, 우씨(牛氏)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이 소문은 "우계마후(牛繼馬後)"로 불린다. 그렇다면, "우계마후"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나서 전파된 것일까? 우리는 먼저 시간을 삼국시대 후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