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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광33

송인종(宋仁宗)의 3대 번민: 인모(認母), 폐후(廢后), 입저(立儲) 글: 원희(元曦) 이런 말이 있다. 청관난단가무사(淸官難斷家務事). 청렴한 관리도 집안 일은 판단하기 어렵다. 천자도 마찬가지이다. 그에게도 골치아픈 집안 일이 있다. 송인종은 일생동안 세 가지 일로 골치가 아팠다. 무슨 세 가지 일인가? 인모(認母), 폐후(廢后), 입저(立儲)이다. 쉽게 말하면, 누가 엄마이고, 누가 마누라이며, 누가 아들이냐는 세 가지 일인 것이다. 보통사람들의 집안 일은 그 자신의 프라이버시이다. 주변 사람들이 간여하기 힘들다. 그러나, 천자는 다르다. 왜 다른가?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천자는 권력이 크므로,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실제는 정반대이다. 천자에게는 프라이버시가 없다. 그의 집안일도 모두 나랏일이 되어 버린다. 대신들도 말을 하고, 언관.. 2023. 3. 8.
한성제(漢成帝) 유오(劉驁)는 어떻게 죽었을까? 글: 진령신(陳令申) 한성제 유오는 한원제(漢元帝) 유석(劉奭)의 장남으로 서한의 제9대황제이다. 중국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색채의 황제중 하나이고, 가장 호색한 황제중 하나이며, 남총(男寵) 장방(張放)을 좋아했던 황제이기도 하다. 그와의 사이에는 "단수(斷袖, 한애제가 동공과 함께 자다가 먼저 깼는데, 소매가 동공에게 깔려 있어서, 소매를 빼면 장방이 깰까봐 소매를 잘랐다는 고사에서 나온 것으로 동성애를 의미한다)"의 성향이 있어 후세의 욕을 먹는다. 한성제는 26년간 재위했고, 정무는 돌보지 않았으며, 주색에 빠져 지냈고, 혼용무도(昏庸無道)했고, 외척을 관리로 등용했다. 그리하여, 서한왕조는 위기에 빠지고 갈수록 위험해진다. 동시에 서한왕조의 멸망에 화근을 심은 셈이 ㅣ된다. 그는 역사상 '황음호색.. 2022. 3. 19.
칠종칠금(七縱七擒)(II): 맹획은 남만의 오랑캐가 아니다. 글: 의사리(衣賜履) 건흥3년(225년)의 봄날, 제갈량은 병력을 세 갈래로 나누어 남하한다: 문하독(門下督), 파서군(巴西郡, 사천성 낭중시)사람인 마충(馬忠)이 장가군(牂牁郡, 귀주성 복천현)을 공격하고, 내항도독(庲降都督) 이회(李恢, 이때의 이회는 평이현에 주둔하고 있었고, 평이현은 장가군 소속이며 귀주성의 필절시이다)은 익주군을 공격하고, 제갈량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수로를 통해 월전군(越嶲郡, 사천성 서창시)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건위군태수이자 광한 사람인 왕사(王士)를 익주군태수로 임명한다. 오랑캐왕 고정(高定)은 모우현(旄牛縣, 사천성 한원현 동북), 정작현(定筰縣, 사천성 염원현), 비수현(卑水縣, 사천성 소각현)의 일선을 따라서 내려오며 많은 보루에 주둔시켰다. 제갈량은 고정의 인마가 .. 2021. 10. 25.
문언박(文彦博): 북송 4명의 황제 아래에서 50년간 재상을 지내다. 글: 주효휘(周曉輝) 고대 왕조에서 제후나 재상에 오르는 인물은 기본적으로 모두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불가의 인과응보설에 따르면, 모두 복이 있는 사람들이다. 북송때 이런 명신이 있다. 일생동안 송인종, 송영종, 송신종, 송철종의 네 황제를 모시는 동안 전후로 여러번 재상을 맡았고, 재상을 맡은 기간이 50년에 이르며, 평생 불법을 독실하게 믿어, 일찌기 10만명을 모아 함께 염불한 바 있다. 그 외에, 아주 장수하여 91세에 좌화한다. 병없이 편안히 죽는다. 그의 이름은 바로 문언박이다. 문언박(1006-1097), 자는 관부(寬夫), 산서 분주(汾州) 개휴(介休) 사람. 그의 조상은 성이 경(敬)이다. 나중에 후진의 고조 석경당(石敬瑭)의 이름을 피휘하여 '경'에서 문(文)으로 성을 고친다. 후진이.. 2021. 9. 17.
송나라때 '문정공(文正公)'의 시호를 받은 인물은? 글: 용가독사(勇哥讀史) 이런 말이 있다: "생진태부(生晋太傅), 사시문정(死諡文正)"(살아서 태부에 오르고, 죽어서 문정의 시호를 받는다). 고대의 무수한 문인들에게 있어서, 사후에 '문정'이라는 시호를 받는 것은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송나라는 문인을 존중한 시기였다. "만반개하품(萬般皆下品) 유유독서고(惟有獨書高)"(모든 것은 하품이고, 오로지 문관이 높다)을 부르짖던 왕조에서 몇명의 대신이 '문정'의 시호를 받았을까? 답안은 9명이다. 평균 34년에 한명씩 배출되었다. "문정"의 시호를 받은 9명의 대신은 사망한 시간을 기준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이방(李昉), 왕단(王旦), 왕증(王曾), 범중엄(范仲淹), 사마광(司馬光), 황중용(黃中庸), 채변(蔡卞), 정거중(鄭居中), 채심(蔡沈) 이.. 2020. 12. 18.
사마광(司馬光): 완벽한 일생의 유일한 오점 글: 문재봉(文裁縫) 북송의 명상(名相) 사마광을 얘기하자면, 많은 사람들은 그가 어렸을 때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항아리를 깬 것이라든지, 왕안석(王安石)의 변법에 반대한 것이라든지, 기년체사서인 을 편찬한 것등은 알고 있지만, 사마광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하여는 아마도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사마광이라는 사람은 어려서부터 어른스러웠다. 마치 동년이 없었던 것처럼. 사서기록에 따르면 그가 공부를 시작해서 글을 알면서부터 "성인과 같이 늠연했고, 를 들으면 대강의 의미를 이해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배고픔과 목마음 추위와 더위도 모를 정도였다." 19살에 진사갑과에 급제했고, 성격은 강정(剛正)했으며 사람됨은 집요(執拗)했고, 다른 사람들과 이치를 따지는 것을 좋아.. 2020. 8. 12.
조광윤의 죽음과 관련된 2명의 소인물 글: 백가잡평(百家雜評) 중국역사상의 풍운인물로서 조광윤의 일생은 전설로 충만하다. 그는 여러가지 수수께끼를 남겼는데, 그중 가장 큰 수수께끼는 바로 그의 죽음이다. 976년 십월 십구일 밤, 조광윤은 동생 조광의를 불러서 술을 마신다. 다음날 새벽에 조광윤이 돌연사하니 향년 50.. 2019. 1. 28.
고대의 시호(諡號)제도와 규칙 글: 배주품역사(杯酒品歷史) 중국에 이런 말이 있다: 개관정론(蓋棺定論)! 관두껑을 닫고나서 결론을 내린다. 그 의미는 한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 대한 시비공과는 그가 사망한 후에야 비로소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황제와 문무대신이 죽은 후에 조정은 그들에게 시호를 내린다. 1개의 글자로서 그의 일생을 개괄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호가 그냥 간단한 글자 1자는 아니다. 그 안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통상 황제의 시호와 묘호는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청나라의 강희(康熙)황제는 우리가 그를 성조인황제(聖祖仁皇帝)라고 부른다. '성조'는 묘호(廟號)이고, '인(仁)'은 시호(諡號)이다. 황제에게 묘호를 올릴 때는 불문율이 있다. 조(祖)는 공(功)이 있어야 하고, 종(宗)은 덕(德).. 2019. 1. 8.
아운(阿雲)사건: 한 살인미수사건이 부른 사법대논쟁 글: 오구(吳鉤) 오늘 얘기할 것은 형사사건이다: 한 민간여자가 남편을 모살한 죄로 기소당했다. 법률이 그녀의 운명에 대하여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사건의 내용은 그다지 복잡할 것이 없다. 범죄혐의자는 이름도 없는 보통 부녀이다. 그러나 사건의 판결을 둘러싸고, 여러 조정의 대신.. 2018. 12. 25.
조광윤 "황포가신(黃袍加身)"의 5가지 의문점 글: 귀산야화(貴山夜話)2017 배경설명 1. 조광윤은 후주(後周)의 황제인 주세종(周世宗) 시영(柴榮)의 수하 애장(愛將)이었다. 주세종 시영은 오대십국(五代十國)의 혼란시기에 가장 명망있고 업적을 이룬 일대군주이다. 민간의 평서, 화본에서는 시영과 조광윤이 일찌기 결의형제를 맺었다.. 2018.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