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40 북송(北宋)이 개봉(开封)을 도읍으로 정한 것이 실수였을까? 글: 고과노인(孤寡老人)북송의 국도는 개봉이다. 이곳은 북방으로는 강적이 버티고 있다. 황하(黄河)라는 천험(天险) 외에는 더 이상 수도를 방어하는데 험준한 지형이나 지물이 없다. 나중에 금나라 군대가 밀고 들어오자 추풍낙엽처럼 무너져서 북송이 멸망하게 된다. 그래서, 북송이 개봉을 도읍으로 삼고, 다른 곳으로 천도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계속 잘못이라고 인식되어왔다.송태조(宋太祖) 조광윤(赵匡胤)은 한번 장안(长安)이나 낙양(洛阳)으로 천도할 것을 제의한 바 있었다. 그러나 송태종(宋太宗) 조광의(赵光义)가 반대했고, 그후 몇달이 지나지 않아 조광조는 사망한다.기실, 천도가 곤란하다는 정치적 요소를 제외하고, 북송이 천도하지 않은 것은 그 나름대로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개봉은 연운십.. 2024. 5. 16. 석중귀(石重貴): 오대(五代) 후진(後晋)의 마지막황제 글: 종횡오천년(縱橫五千年) 북송 개보(開寶) 6년(973년) 삼월, 방주(房州)에서 정왕(鄭王) 시종훈(柴宗訓)이 병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시종훈은 후주(後周)의 마지막 황제이다. 그는 비록 오대시기의 마지막 황제이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오대시기 황제는 아니었다. 요원한 북방에 일찌기 군림천하한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974년에 병사했기 때문이다. 즉 그가 바로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오대의 황제였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이고, 20여년간이나 포로로 지내야 했을까? 난세에 황제에 오르다. 그는 바로 후진의 마지막 황제인 석중귀이다. 석중귀는 어려서 부친을 잃고, 숙부인 석경당(石敬瑭)에 의해 길러진다. 소년시기에 석중귀는 말이 적고 조심스럽게 행동했으며, 질박하고 순후했다. 그.. 2024. 2. 20. 명나라 멸망직전에 발생한 2건의 괴이한 사건 글: 흔몽경성(昕夢傾城) 철학적으로 이런 말이 있다: "새로운 사물이 반드시 오래된 사물을 대체한다" 이 진리는 고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처음부터 강성하기 그지없고, 발군이었던 왕조도 백년이 지난 후에는 결국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결국은 다른 왕조로 쉽게 교체되곤 한다. 명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국황제 주원장은 비록 글도 몰랐지만, 여전히 국가를 조리있게 다스렸다. 그러나 그의 자손들은 나라를 고스란히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주고 만다. 주원장이 만일 자신의 후손이 이럴 줄 알았더라면, 분명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어쩔 줄 몰랐을 것이다. 기실 우리가 역사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명나라가 멸망하기 전의 24시간동안, 조금 노력을 했더라면,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었을 것같다. 그러나, 두 가지 괴.. 2022. 8. 30. 자기국(自杞國): 신비한 소국, 몽골과 6년간이나 싸우다. 글: 식당(食堂) 1 건덕3년(965년) 정월 십구일, 송군(宋軍)의 총사령관 왕전빈(王全斌)은 군대를 이끌고 후촉(後蜀)을 멸망시킨다. 그후 후촉 남쪽의 지도를 개봉으로 보내어, 송태조(宋太祖) 조광윤(趙匡胤)에게 계속 남쪽으로 진격하여 대리국(大理國)까지 정복할지를 물어본다. 조광윤은 자신의 손에 익은 옥부(玉斧)로 지도에 대도하(大渡河)를 따라 선을 긋는다: 그리고 말한다: "이 밖은 우리땅이 아니다!" 그리하여 대리국과는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 조광윤이 대리국을 건드리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다. 첫째, 남조(南詔)의 오만(烏蠻), 백만(白蠻)은 흉악했다. 당나라때 남조와 싸우다가 국력이 고갈되어 망한 바 있다. 그리고 송나라가 후촉을 멸망시킨 후에도 사천에서 반란이 크게 일어나 근 2년의 시간을 .. 2022. 5. 26. 송휘종(宋徽宗)은 금나라에 잡혀간 후 어디에서 살았을까? 글: 역사대작전(歷史大作戰) 중국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정강지변(靖康之變)"을 알고 있다. 금나라가 송휘종, 송흠종(宋欽宗)을 끌고가서 가두었던 사건이다. 그렇다면, 송휘종은 어디로 끌려가서 살았던 것일까? 송휘종이 만일 황제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아주 우수한 예술가가 되었을 것이다. 금기서화에 모두 능했다. 특히 서예가 뛰어나 수금체(瘦金體)를 남겼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그러나, 그는 황제로서는 좋은 황제가 아니었다. 그의 일생은 둘로 나눌 수 있다. 전반기에는 아주 성실했고, 수완도 있었다. 예를 들어, 양산박의 농민반란을 처리하면서 정치적 지혜를 발휘한다. 그는 초안(招安) 정책을 써서, 송강등이 조정을 위해 일하도록 함으로써 농민반란군을 와해시킨다. 다만, 송휘종의 .. 2022. 5. 12. "원군(怨軍)"과 "수군(瘦軍)": 요(遼)나라가 멸망하기전에 만든 기이한 두 부대 글: 엽서도(獵書徒) 요나라의 마지막 황제 천조제(天祚帝) 야율연희(耶律延禧)는 망국지군이기 때문에, 자연히 전통적인 사학자들이 망국지군에게 준비해놓은 일련의 평가를 받는다. 그리하여 천조제는 후세의 사서에서 반드시 잔폭불인(殘暴不仁), 혼용무능(昏庸無能)한 이미지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이미 검증할 수없게 되었다. 그러나, 천조제가 요나라가 여진의 금나라에게 멸망하기 전에 조직한 두 개의 기이한 군대를 보면, 그 황제는 최소한 천마행공(天馬行空)의 상상력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첫번째 기이한 부대는 "원군"이라 한다. 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요나라는 요동인을 병사로 모집하였는데, 여진에 원한을 갚게 하겠다는 의미로 원군(怨軍)이라고 이름짓는다. 곽약사가 총사령관이.. 2020. 10. 26. 이전 1 2 3 4 ···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