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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356

시진핑의 브레인들이 시진핑을 뒤로 해치고 있는가? 글; 왕혁(王赫) 10월 12일, 중공은 를 내놓았다. 이는 다시 한번 사람들의 상식을 뒤집어 버렸다. 왜냐하면, 이 조례는 9월 28일 중공중앙정치국회의에서 심의 비준된 것이기 때문이다. 중공 자신도 이렇게 말한다: 중앙위원회는 당의 최고영도기구이다(당의 전국대표대회가 폐회한 기간동안, 다만 당의 전국대표대회는 5년에 한번씩 개최된다). 중앙정치국은 중앙위원회에서 선거로 선출한다. 현재 중앙정치국이 중앙위원회의 규정을 만들다니, 이는 상하가 뒤집힌 꼴이 아닌가? 더욱 웃기는 것은 "본 조례는 중앙판공청이 해석을 책임진다"는 조항이다. 중앙판공청은 또 무엇인가? 그저 실무기관일 뿐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시진핑 당국의 방식은 이런 것이나 같다: '엄마'가 '자식'을 낳는다. 그런데, '자식'이 '엄.. 2020. 10. 15.
싼샤댐 건설자가 알려주지 않은 사실은...... 글: 양자립(楊子立) 금년, 충칭에서 사상유례없는 물난리가 나고, 장강유역이 홍수피해를 입으면서, 사람들은 다시 한번 싼샤공정의 가치에 대하여 의문을 표시하게 된다. 실제로 중국정부게 조직한 싼샤공정의 타당성검토보고서에서 열거한 '홍수방지, 발전, 통항, 부빈(扶貧)등'의 이점중 발전이 실현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실현되지 못했다. 그리고 타당성검토보고서에서 해결가능하다고 말했던 진흙모래퇴적, 생태보호, 환경안전, 댐지구이민, 투자과대등의 문제는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오늘날, 중국정부의 선전부서에서 여전히 싼샤댐은 유용하다는 논조를 취하는 외에, 과학계의 보편적인 태도는 부정적이다. 다만, 1980년대 중국과 외국의 관계가 우호적일 때, 캐나다, 미국의 많은 설계, 연구, 건축.. 2020. 10. 14.
해군부사령관 도용(陶勇) '투정자살(投井自殺)'의 수수께끼 글: 왕우군(王友群) 중공 원수 진의(陳毅)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머리를 자른다고 해도, 나는 도용이 자살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중공 대장 속유(粟裕)는 이런 말을 했다. 그의 일생에서 가장 유감스러운 일은 살아 있을 때 도용이 살해당한 진상을 밝혀내지 못한 것이라고. 진의와 속유는 모두 도용의 옛 상사들이다. 도용 "투정자살" 1967년 1월 21일, 당시 남경군구 부사령원, 해군 부사령원, 동해함대 사령원으로 있던 중장 도용은 '투정자살'한다. 장소는 상해시 동해함대 제4초대소 후화원의 우물 안이다. 그날 오전 도용은 상해경비구사령원 요정국(廖政國)과 함께 타도당한 전 상해시위제1서기 진비현(陳丕顯)을 구해내는 일을 얘기했다. 정오에 도용은 요정국과 함께 식사를 하고, 마오타이주도 .. 2020. 10. 14.
중국, 인도와의 또 하나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다 글: 양위(楊威) 10월 9일, 미국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중공이 중인변경에 6만명의 병력을 배치했다고 말한다. 이런 소식은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 중인국경충돌의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다만, 중공고위층은 더 이상 내외곤경를 버티지 못해, 잠시 격화시키지 않으려 할 뿐이고, 중공의 당매체도 더 이상 유사한 내용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 마치 중인국경충돌은 이미 지나간 일인 것처럼. 중공의 중인국경에서의 계산 5개월전, 중공은 우한폐렴을 은폐한 것으로 국제적인 성토를 당한다. 중공고위층은 사면출격의 책략을 취하였다. 5월 10일, 중인국경에서 돌연 충돌이 발생한다. 중공고위층은 당시 모택동이 1962년 인도와의 전쟁을 개시하여 시선을 옮기고, 이를 통해 당내의 지위를 공고히 했던 것을 기도했다고 믿.. 2020. 10. 12.
왕치산은 제2의 임표가 될 것인가, 아니면 제2의 등소평이 될 것인가? 글: 방위관찰(方位觀察) 중국대륙에서 소식이 하나 전해져 왔다. 중공중앙기율검사위 부부장급 순시원 동홍이 조사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궤이한 현상은 동홍이 조사받은다는 소식은 선포되었지만, 동홍의 이력은 공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국대륙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검색엔진 바이두에서 '동홍'을 치면 '미안합니다. 당신이 방문하려는 웹페이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글만 나온다. 금방, '동홍이 조사받는다'는 소식도 마찬가지로 검색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동홍이라는 사람은 이제 중국대륙의 인터넷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되었다. 동홍은 1953년 랴오닝 하이청에서 태어났다. 1983년 중국인민대학을 졸업했고, '중앙고문위원회'에 배치된다. 그리고 중앙고문위원회 상무부주임 보이보의 비서가 된다. 그때, '.. 2020. 10. 11.
주소주(周小舟)와 왕조국(王兆國) 글: 장효웅(張效雄) 관료사회의 승진과 좌천, 환해침부(宦海沉浮)는 어떤 때는 중대한 역사의 전환점에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저 작은 일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때는 부득이해서이다. 왜냐하면 '형세는 사람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스스로 자초한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성격이 그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주소주와 왕조국의 이야기는 바로 이런 점을 잘 설명해준다. 1959년 여산회의에서, 팽덕회는 모택동에게 "의견서"를 써서 제출한다. 그러다가 '반당집단'의 수령으로 타도당한다. 그 전에, 팽덕회는 호남으로 가서 조사연구할 때, 당시 호남성위 제1서기이던 주소주가 배동했다. 여러 문제에 대해 두 사람은 많은 부분을 공감한다. 모택동은 '팽대장군'과 결렬한 후, 주소주를 자기 편으로 회유하고.. 2020.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