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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영종27

중국역사상의 태상황(太上皇) (3) 글: 장명양(張明揚) 당나라때 태상황으로서는 되돌아보기도 싫은 '완전은퇴'시대를 겪은 후, 태상황들의 운명은 송나라때부터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게 된다. 송, 명, 청 3왕조에 걸쳐 모두 6명의 태상황이 배출돈다. 당나라때 유행한 '핍궁(逼宮)'과 비교하면, 이들 태상황들은 자원하여 태상황으로 물러난 경우가 많았으며, 현무문사변이나 마외지변같은 궁중투쟁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나라가 망하게 된 송휘종(宋徽宗)과 정신이상이 온 송광종(宋光宗)을 제외하면, 이 시기의 태상황들의 은퇴생활은 아주 여유있었다. 황제의 눈치를 보지 않았을 뿐아니라, 연금생활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권력도 대부분 황제보다 컸다. 정치생활에서 왕왕 전형적인 "퇴이불휴(退而不休)"였다. 명영종(明英宗) 주기진(朱祁鎭)의 태상황생활은 그다.. 2023. 5. 1.
토목보지변(土木堡之變)의 원흉인 왕진(王振)은 충신인가, 간신인가? 글: 역사상적괴점(歷史上的拐點) "토목보지변"은 명나라 수십년간 축적한 국력을 하루아침에 모조리 날려버린 사건이다. 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문신, 무장, 병사들이 부지기수였다. 이 전쟁은 명나라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그후 명나라는 다시 대규모로 병력을 일으켜 몽골을 공격하지 못한다. 알아야 할 것은 이때는 명나라가 수십만대군을 일으켜 몽골을 친지 겨우 25년이 지난 때였다. 그리고 이 비극을 일으킨 것은 바로 왕진이었다. 천순(天順)원년, 명영종(明英宗)은 왕진의 관직을 회복시켜주고, 영예롭게 장례를 치러주고(의관총), 왕진을 위해 사당을 지어 기념한다. 지금도 그 사당은 남아 있는데, 바로 베이징의 지화사(智化寺)이다. "왕진에게 제사를 지내고 장례를 지내도록 하고, 사당을 세워주었다(賜王振祭葬, 立.. 2023. 1. 9.
건문제(建文帝) 주윤문(朱允炆)은 자손을 남겼을까? 글: 원재예(袁載譽) 1398년, 주윤문이 황제에 등극하여, 주씨 명왕조의 두번쨰 황제가 되었다. 다만, 황제의 자리가 안정되기도 전에 그의 숙부인 주체(朱棣)가 1399년 반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지금의 북경을 기점으로 당시의 수도인 남경으로 진격해 들어왔다. 주체의 군대는 파죽지세였고, 주윤문의 군대는 계속 패퇴한다. 1402년, 남경성이 함락되고, 황궁에서는 불이 나고, 주윤문은 행방이 묘연해진다. 얼마 후, 주체는 남경 봉천전(奉天殿)에서 황제에 오른다. 역사에서 "정난지변(靖難之變)"이라고 부르는 사건이다. 전체 정난지변때 대부분의 역사애호가들은 주체의 반란이 4년의 시간을 들여서 건문제를 끌어내리는데 성공한 것에 탄식하는 외에 더 많은 사람들은 주윤문이 도대체 죽었는지 아닌지에 대하여 궁금해 .. 2021. 12. 1.
<해방군보>: 황제와 태상황이 싸울 때는 관망하라? 상령명절불타지(常令名節不墮地) 학계영(郝啓榮) 왕흔(王欣) 명나라때의 명신 우겸(于謙)의 는 이렇게 쓰여 있다: 호화일거난재득(豪華一去難再得) 장기소침토일구(壯氣銷沉土一丘) 단령명절불타지(但令名節不墮地) 신외구구안용구(身外區區安用求) 대체적인 뜻은 부귀는 한번 잃으면 다시 얻기 힘들고, 사람은 뜻을 잃어버리게 되면 살아있어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오직 명절(명성과 절개)을 지켜야하며, 나머지 모든 것은 따질 필요가 없다. 상령명절불타지.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실적인 의미가 있다. 명절은 태산보다 무겁다. 이욕(利慾)은 홍모(鴻毛)보다 가볍다. 우겸은 관직에 여러 해동안 있으면서, 시종 청렴했으며, 명절을 지켰다. 그가 죽은 후에도 집안에 남은 재산이 없었다. "토목보의 변"이 발생한 후, 명영종이 .. 2021. 10. 15.
명나라시기 오이라트(瓦剌)는 언제 멸망하였는가? 글: 역사백가회(歷史百家匯) 토목보의 변(土木堡之變)은 오이라트(瓦剌)의 '가장 휘황했던 시기'이다. 그들은 가볍게 명영종(明英宗) 주기진(朱祁鎭)을 포로로 잡았을 뿐아니라, 명나라의 병방요지까지 맹렬하게 진격해 들어갔었다. 만일 우겸(于謙)이 없었더라면 명나라는 그때 멸망했을 것이다. 다만 오이라트의 운은 좋지 못했다. 명나라에 패배하면서 크게 타격을 입었을 뿐아니라, 내부에서 모순이 폭발하여, 스스로 무너진다. 이는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이라트의 역사는 당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민족은 아주 사납다. 하루종일 주변부락과 당나라의 변경을 돌아다녔다. 당나라는 그들의 항복을 받아내려 했으나, 오이라트는 죽어도 투항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당나라는 할 수 없이 그들과 싸워야 했고, 백여년.. 2021. 5. 1.
가정제(嘉靖帝): "제왕술(帝王術)"의 최고고수 글: 최애역사(最愛歷史) 정덕15년(1520년) 구월, 남하하여 영왕(寧王) 주신호(朱宸濠)를 생포한 황제인 명무종(明武宗) 주후조(朱厚照)가 병석에 눕는다. 원인은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도중에 혼자서 강위에서 배를 띄우고 물고기를 잡다가 부주의하여 물에 빠졌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북경 자금성 안에서만 살아왔던 황제는 수영을 할 줄도 몰랐고, 물에 빠져서 익사할 뻔한다. 이치대로라면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온갖 놀이를 다해 본 황제라면 무수한 일을 겪었을 것이고, 물에 한번 빠졌다고 하더라도 기껏해야 이틀 정도 기침이나 하고, 태의가 지어준 약이나 먹으면서 침상에 한 이틀 정도 누워있으면 정상으로 회복될 일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대부대가 경성으로 돌아온 후에도 명무종의 병은 낫지를 않.. 2021. 4. 23.
명선종의 황후 호선상(胡善祥)은 단지 아들이 없어서 폐위되었을까? 글: 사우춘(史遇春) 명선종(明宣宗) 주첨기(朱瞻基, 1398-1435), 명나라 제5대황제, 명인종(明仁宗)의 장남. 어렸을 때, 조부 주체(朱棣, 명성조)와 부친 주고치(朱高熾, 명인종)의 사랑과 인정을 바았다. 명성조 영락9년(1411), 14살때, 조부에 의해 황태손(皇太孫)으로 세워진다. 여러번 주체를 .. 2019. 1. 18.
호황후(胡皇后): 명나라때 유일하게 폐위된 황후 글: 소몽(蕭夢) 총애를 받지 못한 여인은 사는게 힘들다고 얘기한다. 후궁의 여인들은 총애를 받지 못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힘들게 사는 것보다 더욱 무서운 것도 있다. 폐위되는 것이다. 명선종(明宣宗) 주첨기(朱瞻基)가 즉위한 후, 황후는 조부인 영락제 주체가 골라준 황태손비(.. 2019. 1. 18.
홍수전은 어떻게 대권을 장악한 양수청을 제거할 수 있었을까? 글: 장생전(張生全) 태평천국 초기의 정치국면에서 비록 홍수전이 천왕(天王)이지만, 양수청이 절대적인 대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첫째, 양수청은 정권(政權)을 장악하고 있었다. 전체 동왕부가 정령(政令)의 중심이다. 양수청은 정책을 연구하고 명령을 내린다.. 2018. 12. 5.
탈문지변(奪門之變)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글: 청풍명월소요객(淸風明月逍遙客) 명대종(明代宗) 경태제(景泰帝) 주기옥(朱祁鈺)은 유일한 아들인 주견제(朱見濟)가 죽은 후, 하루빨리 아들은 낳기 위하여 여색을 계속하여 탐한다. 심지어 당시의 명기(名妓) 이석아(李惜兒)까지 궁중으로 불러들인다. 이 일은 명나라사람 황경방(黃.. 2018. 1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