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력제45 명나라때의 비구니 글: 장계합(張繼合) 중국역사에 조금 밝은 사람이라면 분명히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장당난한(贓唐爛漢)" 확실히 행복한 생활을 추구하는 측면에서 이 두 왕조는 통이 컸다. 왕왕 외래인구도 받아들여서 같이 자신의 생활을 만들어갔다. 송나라때는 조광윤의 시야가 좁았고 문인기질을.. 2019. 1. 2. 태감 위충현(魏忠賢)의 개인숭배운동 글: 위득승(魏得勝) 가난한 집안 출신인 위충현은 스스로 거세를 한 후 관계를 통해 궁으로 들어가 영광스럽게도 도분공(掏糞工)이 될 수 있었다. 십여년후, 그는 바닥을 벗어나 한 재인(才人)의 음식관리업무를 맡는다. 1620년, 위충현이 입궁한지 딱 30년이 되었고, 나이는 이미 52세였다. .. 2018. 10. 27. 명왕조 4대총비 (3) 정귀비(鄭貴妃): 글: 접련화(蝶戀花) 정귀비는 만귀비와 마찬가지로 총애를 믿고 발호한 총비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만력제는 9살때 등극했고, 나이어린 만력제를 잘 기르기 위하여 생모인 이태후(李太后)는 건청궁(乾淸宮)으로 거처를 옮겨 아들 만력제와 같은 침대에서 잠을 .. 2018. 10. 1. 명망청흥(明亡淸興)(2): 인생약지여초견(人生若只如初見) 이런 견해가 있다. 명나라의 멸망은 가정제에게서 시작된다. 더 많은 사람들은 그의 손자인 만력제야말로 죄괴화수(罪魁禍首)라고 본다. 바로 그가 수십년에 걸친 소극적인 태업과 부작위때문에 비로소 이 일찌기 번성했던 제국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2018. 8. 15. 이궁안(移宮案): 동림당이 선제공격으로 승리를 거두다 글: 정만군(程萬軍) 1620년 9월 26일, 태창제(泰昌帝) 주상락(朱常洛)이 돌연 사망한다. 대명의 후임황제문제는 다시 문제가 된다. 이때의 대명왕조에는 황태자(皇太子)가 없었고, 황태손(皇太孫)이 있었다. 그는 바로 주상락의 장남인 주유교(朱由校)이다. 그는 할아버지 만력제(萬歷帝)가 .. 2018. 3. 5. 장거정(張居正)과 이태후(李太后)는 무슨 관계였을까? 글: 군령여산(軍令如山) 민간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장거정과 이태후에 관한 것인데, 장거정이 과거에 합격하여 진사가 된 후, 과거합격자중 꼴찌의 이름이 애자수(艾自修)인 것을 보고는 이런 대련을 만들어 조롱했다고 한다: "애자수(艾自修, 자수물수(自修勿修), 백면서생배호방(白面.. 2018. 3. 1. 이전 1 2 3 4 5 6 ···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