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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영6

남명(南明)의 강북사진(江北四鎭): 이겨도 져도 강북사진때문이다. 글: 문재봉(文裁縫) 사진의 유래 숭정17년(1644년) 오월 초구일, 용상에 앉은지 얼마 되지 않고, 여전히 감국(監國)의 신분이었던 주유숭(朱由崧)은 회의를 열고 군사상황을 검토하여 남명의 방어선을 건립한다. 비록 주유숭이 회의를 개최한 이유는 '군사상황검토와 방어선건립'이지만,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주유숭이 하려는 일은 그저 논공행상이고, 그를 옹립하는데 공로가 있는 4명의 장군에게 상을 하사하려는 것이라는 것을. 주유숭은 그들의 관직을 올려주고, 그들에게 한 곳씩을 지키게 하였다. 군신간에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이했다. 이 네 명의 장수들이 발탁되면서 그들은 각각 한 곳씩의 지방을 차지하여 한 지방의 패주가 된다. 이두 그들에게는 새로운 칭호가 붙는다. 바로 "사진(四鎭)"이다. 이 4진.. 2020. 7. 13.
명나라가 멸망한 후, 문신무장들이 대부분 청나라에 투항하고, 왜 남명이나 대순으로 귀순하지 않았을까? 글: 야독사서(夜讀史書) 1644년은 중국역사상 아주 특수한 해이다. 바로 이 해에, 276년간이나 존속해오던 대명왕조가 종말을 맞는다. 이와 동시에, 중국에는 다시 3개의 주요 세력이 나타나서 중원을 축록(逐鹿)하는 상황이 된다. 이 세 세력은 각각 대청(大淸)정권, 대순(大順)정권 그리고 .. 2019. 1. 12.
완대성(阮大鋮): '통재(通才)'와 '간신(奸臣)'을 겸한 소인(小人) 글: 청림지청(靑林知靑) 추사여방초(秋思如芳草) 춘래일일생(春來日日生) 이것은 어렸을 때 외웠던 몇 개의 시중 하나이다. 당시에 비해 손색이 없다고 여겨져서 아주 좋아했었다. 그러나 이 시의 작자를 얘기하려면 약간 쑥스러워진다. 그는 완대성이라는 사람인데, 역사상 유명한 간신.. 2018. 12. 28.
남명(南明)이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글: 한정우기(閑情偶記) <도화선(桃花扇)>에서 공삼임(孔尙任)은 마사영(馬士英)의 입을 빌어 아주 정확한 시세판단을 한 바 있다: "나라에 변고가 있어야, 우리같은 자들이 뜻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일찌기 여러 사적(史籍)을 살펴봤다. 역사에 대한 인식과 분석이 어떤 때는 희극가가.. 2018. 7. 14.
남명(南明) 홍광조(弘光朝) 붕괴의 수수께끼 글: 한정우기(閑情偶記) 홍광조가 신속히 멸망한 것에 대하여 역사책에서는 마사영, 완대성을 질책하는 말이 가득 쌓여 있다. 이 왕조의 멸망의 근원이 도대체 그들에게 있는 것일까? 명나라사회를 뒤덮고 있던 '해방'정서를 보자. 특히 이 사회의 중요층면의 사람들의. 그것을 보면, 아마.. 2014. 4. 4.
마사영(馬士英)은 어떻게 권력을 잡았는가? 글: 명계한담(明季閑譚) 마사영(1591-1646), 자는 요초(瑤草)이고 귀양(貴陽) 사람이다. 만력47년 2갑 제19명으로 진사가 된다. 동림당인들은 마사영, 완대성(阮大鋮)이 한패가 된 것은 서로 의기가 투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견해는 비록 사악한 것은 아니지만, 서생기가 있다. 비.. 2014.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