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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초기)

마사영(馬士英)은 어떻게 권력을 잡았는가?

by 중은우시 2014. 4. 4.

글: 명계한담(明季閑譚)

 

마사영(1591-1646), 자는 요초(瑤草)이고 귀양(貴陽) 사람이다. 만력47년 2갑 제19명으로 진사가 된다.

동림당인들은 마사영, 완대성(阮大鋮)이 한패가 된 것은 서로 의기가 투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견해는 비록 사악한 것은 아니지만, 서생기가 있다. 비교적 합리적인 해석이라면 그들의 관계가 다른 누구보다 단단했던 것에 가장 먼저 작용한 것은 '동문'관계이다.

 

마사영은 만력47년에 진사가 된다. 기실 그는 만력44년에 이미 회시에 참가했다. 이 해에 마사영과 완대성은 북경성에서 몇 달을 같이 있었고, 회시에 함께 합격한다. 기괴한 점은 마사영이 전시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슨 이유때문인지는 불분명하다. 아마도 아무도 확실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이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마사영은 중국과거사상 첫번째의 유명한 "복독생(復讀生, 재수생)"이 되는 것이다. 

 

복독생이 된 것을 끄집어 내는 것은 마사영에게 약점을 들추려는 것이 아니다. 복독은 원래 나쁜 일이 아니다.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였지만 먼저 동문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익이 적지 않다. 몇년간 복독하게 되면 자연히 몇 배의 동문이 생긴다. 인맥관계가 다른 사람보다 몇배가 되는 것이다. 무슨 골치아픈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닐 때 너는 전화 몇번만 해서 몇몇 동문에게 자신의 일을 처리해달라고 부탁하면 끝이다.

 

그때는 비록 '복독'에 관한 관련규정은 없었지만, 그가 전기의 완대성과 '동문관계'가 된 것은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동문관계'가 있기 때문에, 나중에 함께 조직에서 처분을 받는 것이다. 마사영과 완대성이 다시 남경성에서 만났을 때, 그 장면은 아마도 두 운나쁜 간부가 길에서 만난 것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서로 마주보고 술을 준비해서 한두잔 마셨을 것이다.

 

그들이 '동문+형제'관계가 되도록 만들어준 것은 주연유(周延儒)에게 감사해야 한다.

 

주연유(1593-1643) 자는 옥승(玉繩), 호는 읍재(挹齋)이고, 의흥(宜興) 사람이다. 20살때 회원, 장원이 된다. 37살때는 수보(首輔)가 되고, 49살때는 두번째로 재상에 오른다. 두번 재상을 지낸 주연유는 일찌기 이전의 폐정을 혁파하고, 전란으로 고통을 겪는 백성의 밀린 세금을 면제해준다. 그리고 명망있는 신하들을 등용하여 조야에서 현명한 신하로 칭송이 높았다. 마지막에 국제형세가 풍운만변하여, 주연유는 부득이 허위소식으로 황제를 기쁘게 해주다가, 들통이 나는 바람에 자살을 하게 된다.

 

이로서 알 수 있듯이 주연유는 재주가 뛰어났고, 관직도 높았다. 그래서 굴곡도 많았다. 십여년만에 다시 자신의 재상자리를 차지하기도 했고, 결국은 자신의 목숨을 잃었다.

 

주연유가 마사영, 완대성과 실질적인 관계름 맺게 된 것은 그가 두번째 재상을 지내던 민감한 시기였다.

 

최고위직으로 있으면, 돈을 쓸 데가 많다. 주연유가 쓴 돈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는 작가의 권력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수사권이 있는 부서라면 한번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아주 많았을 것이다. 아마도 주연유의 집안 돈을 다 써도 모자랐을 정도일 것이다. 결국은 사회에서 자금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완대성이 은자를 들고 와서 벤처캐피탈에 투자를 한다.

 

완씨집안은 부잣집이다. 비록 모두 빈농이나 하층,중층농민으로부터 착취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당시로서는 합법적 수입이었다. 완씨집안과 비교하면, 주연유는 심각한 위법이었다. 그는 남에게서 주금을 납입받고도 주식을 주지 않는다. 영수증조차 끊어주지 않았다. 단지 선물거래였고, 그것도 구두로 한 것이다.

 

주연유는 완대성에게 말한다. 간부업무는 나 한 사람이 결정하는 게 아니다. 너는 조직의 처분을 받고 있는 시간이 아직 길지 않아서, 억지로 내가 너를 추천하게 되면 여러 사람들이 너를 고발할 것이다. 조직에서도 비준해주지 않을 것이다. 이는 너에게나 나에게나 좋지 않은 일이다. 네가 조건이 맞는 친구를 먼저 추천해라. 내가 그를 돌봐주고, 그가 다시 너를 돌봐주면 되지 않겠느냐.

 

이것이 바로 관료사회의 고명하고 어두운 점이다. 돈을 받은 후 일처리를 해주지 않을 뿐아니라, 책임까지도 다른 곳에 떠넘긴다.

 

완대성의 돈은 전용계좌로 들어갔는데, 결과는 이런 모양이다. 심장을 도려내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이를 악물고, 마사영의 이름을 올린다. 

 

이 일의 진위는 지금으로서 알 수가 없다. 정사와 후세문인들은 모두 일치하여 완대성이 큰 돈은 썼다고 한다. 그리하여 주연유가 수보로 되게 만들었다고 한다. 다만, 완대성이 잘못을 저지른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발탁할 수가 없어서, 주연유는 그에게 마사영을 추천하도록 하고, 마사영이 다시 완대성을 발탁했다. 이것은 좀 억지스럽다. 왜냐하면 이 거래가 만일 돈을 벌려면, 반드시 길다란 연쇄사슬이 연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연유가 취임하지마자 즉시 명나라가 붕괴되고, 마사영은 기회를 틈타서 성공을 거두고; 마사영이 즉시 권신이 되어, 완대성을 발탁할 능력을 가져야 한다. 시간이 만일 늦어지면 완대성도 그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승진은 말할 것도 없다.

 

투자하여 관직을 구하는 것에 가설과 전제가 너무 많다. 그러나, 이것은 아마도 진실일 것이다. 왜냐하면, 주연유가 말한 선물거래가 진실로 이루어졌고, 많은 수익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마사영은 정말 숭정제때 동산재기했고, 관직도 갈수록 높아졌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완대성의 꿈을 이루어준다.

 

이 일을 나는 진지하게 연구해본 적이 있다. 그리고 정사와 야사의 두 가지 요소를 발견했다. 하나는 거짓말이고, 하나는 헛소리이다:

 

시작점: 완대성이 주연유에게 돈을 준다.

종결점: 주연유가 완대성을 위하여 관직을 구해준다.

 

중간에, 마사영이 양쪽의 일을 해준다. 이 마사영은 도대체 투자자인가 아니면 주식을 받은 자인가. 

 

큰 거래의 약점은 바로 마사영에게 있다. 사실상 마사영이 동산재기한 것은 주연유가 노력한 것때문이 아니다. 만일 주연유가 확실히 약속했다면, 그는 결국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그의 직업도덕은 정말 형편없다.

 

숭정제에게 마사영을 추천한 사람은 예부시랑 왕석운(王錫澐)이다. 당시, 수도의 형세가 상당히 불안정했고, 보정총병 유초가 반란을 일으킨다. 순무 왕한은 병력을 이끌고 토벌하러 갔다. 그 결과 반적이 진압되지 않고, 스스로 패전하고 목숨을 잃는다.

 

북경성에는 이런 말이 있다: "경유자(京油子), 위취자(衛嘴子), 보정부(保定府)의 구퇴자(狗腿子)"(북경의 뺀질이 천진의 주둥아리, 보정부의 개다리). 보정은 조정의 개다리기지이다. 지금은 개다리가 미쳤다. 적을 물지 않고 주인을 물려고 한다. 

 

위기의 순간에, 왕석운은 소방대원 마사영을 생각해낸다. 마사영은 일처리가 깔끔하고, 모략이 있다. 일을 맡고나서 첫 전투에서, 유초를 제거해버린다. 이런 연고로, 마사영은 병부우시랑, 여주총독, 봉양총독등의 군무를 맡는다.

 

그래서, 왕석운은 백락과 유사한 점이 있다. 마사영도 진짜 실력으로 살아남았다. 만일 감사만찬을 한다면 마사영이 제일 먼저 불러야 할 사람은 왕석운이다. 만일 주연유도 부른다면, 그것은 상사를 같이 모시는 것이지, 그가 주빈은 아니다.

 

마사영이 순조롭게 승진을 거듭한 점에 대하여는 그저 역으로 추정하는 것이고 결과를 보고 원인을 찾는 것일 뿐이다. 

 

주유검이 내외적으로 곤란한 위기의 순간에, 만일 사람들을 데리고 과감하게 남순하여, 전략적인 대이전을 실시했더라면, 설사 군대가 몇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간부는 적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그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직접 나무로 가서 목을 매지 않았더라면, 유도 남경 주변에서 관직으로 보나 군사실력으로 보나 마사영은 '10강'내에도 절대 들지 못했을 것이다.

 

마사영의 의외의 성공은 성공이 의외이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은 모두 도와주지 않았다. 주연유도 할 수 없었고, 완대성도 할 수 없었다. 마사영과 완대성을 욕하는 사람들도 할 수 없었다. 진실을 말해서 좋을 일이 없는데, 누가 진실을 말할 것인가.

 

<명사>에 마사영과 완대성은 같은 목록아래에 넣었다. 그들의 상사인 주연유와 같이 <간신록>이라는 목록에 들어간 것이다.

 

이런 처리방식은 상당히 우습다. 마사영은 경성이 함락된 후 1개월여동안, 신속히 항전본부를 구성한다. 홍광조는 끝까지 항전했고, 포로로 잡혀서도 굴하지 않았으며 명왕조를 위하여 목을 바쳤다. 그런데도 역사책에서는 그를 간신으로 분류한다. 알아야 할 것은 그것은 바로 만청의 사람들이 인력부족으로 사람을 구하고 있었고, 마사영이야말로 그들이 몽매에도 구하려고 하던 "이신(貳臣)"이기 때문이다.

 

남명사는 문파에 따라 견해차이가 크다. 저명한 사학자 주희조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남명사를 보면서, 동림, 복사의 인사가 쓴 글은 반드시 숨겨진 점을 추정해서 살펴야 한다. 가볍게 믿을 수가 없다. 역사를 읽는 사람이라면 공정한 견해를 취해야 하고, 득실을 따져야 한다. 헛되이 홍유석학이 감춘 것에 속아넘어가서는 안된다." 근대사람인 요대영은 일찌기 마사영을 위하여 <마각로세원록>을 써서 뛰어나게 <명사.간신전>과 <도화선>의 관계를 논술한다. 최종결론은 <명사>의 청사진은 바로 <도화선>이고, <도화선>은 바로 소설이다.

 

주연유를 되돌아보자. 이 돈만 받고 일은 해주지 않은 자는 확실히 마사엉, 완대성을 도와준 꼴이 되었다. 돈을 받고 일을 해주지 않아야 큰 간부가 될 수 있다.

 

부지불식간에 마사영, 완대성을 크게 도와준 사람은 사가법이다. 사가법의 역사적 지위는 급속히 올라갔고, 마사영과 마찬가지였다. 주유검이 목을 매었을 대, 그도 마찬가지로 천시지리를 갖추고 있었다. 남경병부상서였다. 그러나 마사영의 추세와는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