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대 6

마초(馬超)는 왜 촉에 귀순한 이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는가?

글: 노홍(盧虹) 그는 일찌기 여포(呂布)와 나란히 이름을 떨쳐, "한말쌍절(漢末雙絶)"이라 불리웠다. 그는 자신의 용맹으로 병력을 이끌고 조조의 군대에 맞서서 조조의 군영을 박살내고 하마터면 조조의 목숨까지 빼앗을 뻔했다. 삼국의 영웅인물을 얘기하자면 사람들은 모두 그 얼굴은 ..

유비는 왜 관우에게 작위를 주지 않았을까?

글: 생활문적(生活文摘) 고대의 제왕들은 인심을 얻고, 심복의 충성심을 얻어내고, 위엄을 보이고, 은총을 보여주기 위하여 왕왕 가관(加官), 진작(晋爵), 봉후(封侯)등등을 유효한 수단으로 자주 쓴다. <삼국지.촉지>를 뒤적여 보면 알 수 있다. 유비의 서촉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을 ..

제갈량과 위연의 북벌방안 비교

글: 손옥량(孫玉良) 유비가 죽은 후, 제갈량은 선제가 남긴 유훈에 따라, 일찌가 6번이나 북벌을 시도하여 중원을 통일하고자 했다. 당시 어떻게 병사를 진격시키느냐에 대하여 두 가지 다른 의견이 있었다. 하나는 제갈량의 계책으로 농우(隴右)의 평탄한 길을 따라 기산(祁山)으로 나가서, 진공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