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제갈량)

제갈량과 위연의 북벌방안 비교

by 중은우시 2007. 11. 30.

글: 손옥량(孫玉良)

 

유비가 죽은 후, 제갈량은 선제가 남긴 유훈에 따라, 일찌가 6번이나 북벌을 시도하여 중원을 통일하고자 했다. 당시 어떻게 병사를 진격시키느냐에 대하여 두 가지 다른 의견이 있었다. 하나는 제갈량의 계책으로 농우(右)의 평탄한 길을 따라 기산(祁山)으로 나가서, 진공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위연(魏延)의 계책으로 자오곡(子午谷)을 통하여 장안을 습격하는 것으로 기습돌격방식이었다. 그렇다면, 누구의 주장이 더욱 뛰어났는가? 이에 대하여 "사후제갈량' 식으로 한번 논의해 보고자 한다.

 

만일 성패를 가지고 영웅을 논한다면 우리는 제갈량의 방안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갈량은 육출기산(六出祁山)하였는데도 큰 공을 세우지 못했다. 제1차는 제갈량이 마속을 잘못써서 가정을 잃고, 아무런 공로도 세우지 못하고 돌아왔다. 제2차는 양초(糧草)가 부족한데다 상대방이 견고히 방어만 하여, 할 수 없이 퇴각했다. 제3차는 쌍방이 여러 날을 대치하고, 제갈량이 비록 위나라 군을 여러번 이겼지만, 위나라군대의 원기를 상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마침 대장 장포(張苞)가 병으로 죽었는데, 제갈공명은 이를 듣고 마음이 아파서 피를 토하였고, 병상에 누워 일어나질 못했고, 혼미상태로 접어들었으며, 일을 처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부득이 퇴각했다. 제4차는 제갈공명이 연전연승하고 있을 때, 성도에서 유언비어가 돌아서, 제갈량이 큰 공을 세워 나라를 찬탈하려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원래 사마의의 반간계였는데, 이에 속은 유선이 제갈공명에게 군대를 돌리라고 조서를 내리게 된다. 제5차는 제갈공명이 막 진공하려고 할 때, 양초를 맡은 관리인 이엄은 군량을 제대로 조달하지 못했는데, 제갈량이 죄를 물을 것이 두려워 오나라가 쳐들어오려한다고 거짓보고를 올렸다. 제갈량은 후방의 안전을 걱정하여 퇴각하게 된다. 제6차는 제갈량이 여러번 공격해도 무너뜨리지 못하고, 사마의는 죽어라 지키기만 하고 나오지를 않앗따. 그리하여 제갈량은 화도 나고, 급하기도 하고, 피로하기도 하고 병도 들어서 식사도 못하고 잠도 못잤다 결국 "출사미첩신선사(出師未捷身先死, 병사를 일으켜 나갔는데 대첩을 거두기도 전에 몸이 먼저 죽었다)"의 결과를 낳았다. 제갈량은 비록 용병의 전술대가이기는 했지만, 매번 모두 작은 승리는 거두었지만 전략적인 잘못이 있었다. 사마의는 용병과 방어의 명수였고, 제갈량의 계획에 대하여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다. 특히 제갈량이 제6차로 기산을 나설 때는 거의 사마의의 의중대로 움직였다. 사마의는 그의 수하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공명이 만일 무공으로 나와서 산을 끼고 동으로 오면 우리는 모두 위험하다; 만일 위남으로 나와서 서로 오장원에 미친다면 아무 일이 없을 것이다" 사람을 보내서 오장원에 주둔한다는 말을 듣고는 사마의는 즉시 명을 내린다: '굳게 지키고 나가지 말라. 적들은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변고가 생길 것이다' 바둑두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마의는 다섯 수 앞을 내다봤다. 그리하여 싸우지 않고 이겼다. 사람을 잘 못쓰고 심리가 취약한 제갈량이 죽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위연의 대책이 뛰어났던가? 그는 제갈량의 제1차 북벌시에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그의 건의는: "하후무는 고량자제이고 유약하며 계책이 없다. 나 위연에 정예병사 5천을 내주면, 길을 찾아 포중으로 나가서 진령을 타고 동으로 가서, 자오곡의 북쪽으로 가면 10일이 지나지 않아 장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하후무는 내가 가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성을 버리고 횡문저각으로 도망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동쪽으로 올 것이니, 승상이 대거 병마를 몰아서 사곡에서 진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움직이면 함양의 서쪽은 일거에 차지할 수 있다" 위연의 계책은 뛰어나고 시행가능한가?  제갈량이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가 어떨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이 건의는 마침 제갈량보다 한단계 높은 전략의 대가인 사마의의 의견과 같은 점이 있다. 일찌기 제갈량이 제1차로 북벌할 때, 사마의는 그의 선봉장인 장합에게 "제갈량은 평생을 조심스럽게 살아서 과감히 일을 벌이지는 못할 것이다. 만일 내가 병사를 움직인다면 먼저 자오곡을 통하여 장안을 취하는 것이 훨씬 빠를 것이다. 그는 지혜가 없는 것이 아니라 만의 하나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절대 리스크를 안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군사를 몰고 사곡으로 나와서 미성을 취하려고 할 것이다" 용병의 도리는 기습이 우선이다. 위연은 촉에서 여러해동안 싸웠고, 무예로 봐서도 관우, 장비의 아래가 아니었고, 병법으로 봐서도 그의 견해는 사마의의 수준에 도달했다. 촉의 후기인재중 문무를 모두 갖춘 드문 인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갈량은 그를 쓰지 않았다.

 

그렇다면, 제갈량은 왜 위연의 계책을 쓰지 않았는가? 사마의가 분석한 제갈량은 "평생을 조심스럽게 살아서 과감히 일을 벌이지는 못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위연이 이렇게 건의했을 때, 제갈량은 즉석에서 반박했다: "이것은 완벽한 계책이 아니다. 너는 중원에 인물이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누군가 얘기한다면, 산에 병사를 숨겨두고 허리를 자르면, 단지 5천명만 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 우리군의 예기가 문제될 수 있다. 그러니 절대 채택할 수 없다" 제갈량은 이 계책이 완벽하지 않다고 했다. 싸움은 항상 리스크가 있는 법인데, 어디에 완벽한 계책이 있겠는가? 그의 자잘한 것에 신경쓰는 소심한 성격이 잘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제갈량이 생각도 못했던 것은 이때 그가 만일 이런 기습전략을 썼다면, 위나라에서는 아무도 이에 대적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당시의 적수는 사마의가 아니라 무능한 하후무였고, 이 계책을 알아차린 유일한 인물인 사마의는 일찌감치 이간계에 걸려 위나라의 군주인 조예에 의하여 파직된 상태였다. 그러므로, 당시 위연의 계책대로라면 일찌감치 장안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제갈량이 위연의 계책을 채택하지 아니한 두번째 요인은 그 자신이 위연에 대하여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마의도 몰랐던 것이다. 위연이 막 유비에 의탁했을 때, 제갈량은 그를 죽여버리려고 했다. 이유는 그의 머리에 반골(反骨)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이유가 되는가? 진회가 악비를 모함할 때의 이유인 "막수유(莫須有, 반드시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위연은 일생동안 비록 수없이 전공을 세웠지만, 제갈량이 죽을 때까지, 제갈량은 그에 대한 견해를 바꾸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마대(馬垈)로 하여금 그가 대비하지 않는 틈을 타서 죽이게 한다. 위연은 억울하게 죽었다. 그에게는 모반하려는 마음이 없었다. 그저 제갈량이 중용해주지 않는데 불만이 있었을 뿐이다. 제갈량은 죽을 때 유언을 남겼다: "큰 일은 양의와 의논하라; 병법에 관해서는 강유에게 넘겨주었다" 문무를 겸비한 위연에게는 아무런 역할도 주지 않았다. 위연이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승상이 비록 죽었지만, 나는 지금도 있다. 양의는 장사에 지나지 않는데 어찌 큰 일을 감당한단 말인가 그는 그저 관을 끌고 사천에 들어와서 묻는데 적덜하다. 나는 친히 대군을 이끌고 사마의를 공격하면 성공할 수 있을텐데, 승상은 어찌 국가대사를 망치려는 것인가?" "승상이 당시 내 의견에 따랐다면 장안은 일찌감치 취했을 것이다." 위연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위나라에 투항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제갈량이 자기의 계책을 쓰지 않음에 대한 것을 마음 속에 품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제갈량이 생전에 안배한 인물에 대하여 불만이 있었을 뿐이다. 위연은 전투에서 용기가 있고 계책이 있을 뿐아니라, 그는 한신과 마찬가지로, 뒤에서 다른 사람을 모함하는데 뛰어난 정치가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마대의 칼아래 억울하게 죽는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모반의 죄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 > 역사인물 (제갈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갈량의 유언  (0) 2008.07.21
제갈량의 속마음  (0) 2008.03.25
제갈량의 융중대(隆中對)  (0) 2007.03.11
제갈량의 네트워크  (0) 2007.02.16
삼고초려의 진실은?  (0) 2006.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