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소평123 모택동의 눈으로 본 등소평 모택동은 생전에 그의 저작, 강연, 대화 또는 시를 쓰면서 많은 역사인물과 그의 부하들에 대하여 평가한 적이 있다. 모택동은 위대한 전략가이고, 그의 시야에 들어와 그의 직접적인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한 사람이 여러차례 그의 평가를 받고, 또한 주로 긍정적인 평가였다.. 2007. 2. 3. 등소평의 마지막 모습 1994년 춘절(구정)이후로 등소평은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국외의 매체는 적어도 100번은 그가 위중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는 북경에 있는 사합원내에서 비교적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1997년 2월, 병원은 등소평의 병이 위중하다고 보고했다. 의사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심장도 건.. 2007. 1. 18. 진석련(陳錫聯) : 모택동 말년의 4 총신(寵臣) 진석련 이 사람은 당내에서 계속 “쌍면호(雙面狐)”로 불리운다. 한 측면으로는 그가 전쟁시대때 보인 모습과 건국후기의 모습이고, 다른 측면으로는 이 때 이 사람에 대하여는 이렇고, 저 때 저 사람에 대하여는 저렇다는 점이다. 사람됨이 매우 매끄러웠고, 심지어 교활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 2006. 12. 18. 기등규(紀登奎) : 모택동 말년의 4 총신(寵臣) 기등규의 아들인 기파민(紀坡民)의 부친에 대한 회고의 글이 나온 이후, 사람들이 모두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렇게 역사를 찬개(纂改)하고 문혁과정에서 엄중한 잘못을 저지르고 극좌노선을 일관되게 집행한 인물을 분식하는 것은 드물게 보는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사람들을 놀라.. 2006. 12. 18. 왕동흥(汪東興) : 모택동 말년의 4 총신(寵臣) 왕동흥은 모택동의 곁에서 30년간 경위(警衛)로 지낸 유일한 인물이다. 기등규(紀登奎)는 모택동의 옛친구의 신분으로 외부에 알려져 있다. 오덕(吳德)은 동필무가 죽은 후에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실질적인 주재자가 되었고, 주덕이 죽은 후에는 중공전국인민대표대회당조 서기가 되어 인대를 3년간 장.. 2006. 12. 18. 중국은 철권통치자를 필요로 한다. 작자: 야도심하(夜渡心河) 중국은 현재 등소평과 같은 강력한 통치자를 필요로 한다. 경제에 있어서 필자는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고, 정치에 있어서는 민주와 자유를 신봉한다. 개혁개방 20여년이래, 정부는 점차 경제에 대한 통제를 완화하였고, 국민의 경제권리는 기본적으로 해방되었고, 시장경제.. 2006. 12. 18. 이전 1 ··· 17 18 19 20 2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