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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광제32

몰락한 외삼영(外三營) 글: 범정(范晶) 1922년, 목유개(穆儒丐)라는 만주족작가가 심양의 <성경시보>에 장편소설을 발표한다. <동명원앙(同命鴛鴦)> 이야기는 별로 복잡하지 않다. 주로 청말민초에 두 남자와 한 여자의 비극적 사랑이야기이다. 그러나, 책에서의 장면이 아주 감동적이다. 왜냐하면 이는 .. 2019. 1. 9.
자금성(紫禁城) 융종문(隆宗門)의 화살촉(箭頭) 글: 이대취(李大嘴) 북경고궁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간다. 만일 주마간산격으로 여행온 사람이라면 아마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융종문의 편액에는 화살촉이 하나 박혀 있다. 먼저, 우리는 융종문의 위치부터 살펴보자. 융종문은 고궁 건청문(乾淸門) 앞 광장의 서쪽에 동쪽의 경운문(景.. 2019. 1. 5.
도광제(道光帝)는 왜 60이 되도록 후계자를 정하지 못했을까? 글: 소몽(蕭夢) 도광제는 60세가 될 때까지 비밀입저(秘密立儲)를 하지 못했고, 선택을 망설였다. 그 이류를 알아보면 실로 가슴아프다. 1. 앞의 세 명의 황자가 전후로 죽었다. 도광제는 모두 9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 황장자(皇長子) 혁위(奕緯)는 가경13년에 태어났고, 11살때 패륵(貝.. 2018. 9. 14.
네덜란드 기자가 쓴 "서태후 장례식" 글: 추월랑(秋月朗) 1908년 11월 9일 대청제국의 자희황태후(慈禧皇太后), 즉 서태후의 장례식이 열린다. 네덜란드 기자인 헨리 보렐은 서태후의 영구가 북경성을 나서는 장면을 모두 목격하고, 일련의 귀중한 사진을 남기며, 이번 중국 최고등급 장례식의 화면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뿐 아.. 2017. 12. 21.
동치제: 허수아비로 산 가장 불쌍한 황제 글: 문재봉(文裁縫) 오늘 이야기할 주인공은 동치제이다. 청나라가 산해관을 넘어온 이후 제8대황제이다. 그는 나이 겨우 19살에 병사하였으니, 단명황제이다. 역사의 긴 강물에서는 아주 짧은 일순간이다. 비록 그러하지만, 동치제는 제왕의 존귀한 몸으로 주목을 받는다. 우리는 그의 인.. 2016. 11. 5.
[황자쟁위술] 이세탈인술(以勢奪人術) 천사재화패(天賜才華牌) 혁흔편 청나라 도광제 민녕(旻寧)이 누구를 후계자로 할지 고민할 때, 그의 9명 아들중에서 3명은 이미 요절했고, 3명은 나이가 너무 어리며, 1명은 후사가 없는 다른 형제에게 양자로 보내어, 후보로 남은 아들은 황사자 혁저(弈詝)와 황육자 혁흔(弈訢)의 두 명이었다. 혁저는 위의.. 2015. 10. 11.
[황자쟁위술] 부저추신술(釜底推薪術) 파괴기회패(破壞機會牌) 자고이래로 국가에 공헌이 있는지 여부는 황제가 황자를 평가하고 후계자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리하여 황태자 및 황자들은 모두 공헌을 세우는데 필사적이었다. 그들은 혹은 부친이 출정했을 때 후방에서 정국을 안정시키며 전방을 잘 지원하거나, 혹은 명을 받들어 .. 2015. 8. 25.
[황자쟁위술] 이세탈인술(以勢奪人術) 온치후방패(穩治後方牌) 도광제편 도광제(道光帝)의 이름은 민녕(旻寧, 즉위전의 이름은 綿寧이었으나 피휘의 편의를 위하여 개명함)으로 건륭47년(1782년)에 태어났다. 도광제는 청나라 황제중 유일하게 황후의 적장자로 제위에 오른 인물이다. 도광제는 가경제(嘉慶帝) 영염(永琰, 즉위후에는 피휘의 편의를 위하여 顒.. 2015. 8. 13.
[황자쟁위술] 양장피단술(揚長避短術) – 홍인시효패(弘仁示孝牌) 함풍제편 청나라에서 후임황제를 정하는 방식은 네가지가 있었다. 처음에는 귀족추대방식으로 청태종과 순치제가 이런 방식으로 황제가 되었다. 다음에는 유조계위방식으로 강희제, 옹정제, 동치제가 이 방식으로 황제가 되었다. 그 다음에는 비밀입저방식을 취하는데, 건륭제, 가경제, 도광제, .. 2015. 7. 27.
[황자쟁위술] 양장피단술(揚長避短術) – 홍인시효패(弘仁示孝牌) : 조비편 황위후보자가 효자인지여부는 “효치천하(孝治天下)”의 중국고대에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었다. 그리하여, 후보자들인 황자들 간에는 자신의 효성을 드러내어 점수를 따려는 활동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하여 황제에 오를 수 있었던 사람으로는 조조(曹操)의 아들 조비(曹丕), 수문제 양견.. 2015.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