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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겸11

동한(東漢)의 유씨성의 5대주목(州牧) 글: 심근배조(尋根拜祖) 유표(劉表), 유언(劉焉)/유장(劉璋), 유우(劉虞), 유요(劉繇)/유대(劉岱)는 동한말기 지방에 할거한 4대주목(四大州牧)이다. 유비(劉備)가 나중에 유표와 유언의 자리를 차지한다. 동한말기에 유씨성의 관리는 아주 많았는데, 그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한고조 유방(劉邦)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먼저 그들의 혈연관계를 소개한 후, 다시 정치관계를 이야기하기로 한다. 여러 유씨주목들간의 혈연관계 1. 유대, 유원: 유방의 서장자(庶長子) 제왕(齊王) 유비(劉肥)의 후손 유대와 유요는 친형제이고, 유대는 관직이 연주자사, 유요는 양주자사에 이른다. 나중에 '양주목(揚州牧)'을 받아 동한말기 4대종실주목중 한명이 된다. 혈연관계로 보면, 이들은 황실과의 관계가 가장 소원했.. 2023. 1. 31.
정사(正史)로 본 여포(呂布) 글: 역사춘추망(歷史春秋網) '삼성가노(三姓家奴)'는 여포에게 덧씌워진 최대의 오점이다. 여기에 반복무상(反復無常, 이랬다 저랬다 변덕스럽다), 배신기의(背信棄義, 신의를 지키지 않는다), 유리시시(唯利是視, 이익만 쳐다본다), 용이무모(勇而無謀, 용맹하나 지모가 없다), 애제장부(愛諸將婦, 다른 장수의 처를 좋아했다)등등. 거의 모든 나쁜 말들은 모두 그에게 붙여졌다. 그러나, 정사를 분석해보면, 이 모든 것은 '낙정하석(落井下石, 함정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진다)'의 혐의가 짙다. 여포의 일생을 되돌아보면, 그는 계속 여러 사람들에게 계속 이용당하다가, 결국 다른 사람에게 짓밟혀 죽었는데, 죽고 난 후에도 천년간 여러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되었다. 그는 삼국시대 장수들 중에서 가장 비운의 장수라 할 .. 2021. 10. 25.
유비는 왜 항상 다른 제후들과의 합작을 끝까지 유지하지 않았을까?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유비는 평원상(平原相)이 된 후, 자립의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실력과 당시 천하형세로 인하여, 제후들은 부득이 다른 제후와의 합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통해 갈등이 첨예한 적을 상대하고, 다른 제후들에게 병합되지 않을 수 있었다. 제후들이 유비와 합작한 경우는 적지 않다. 그러나 유비는 시종 다른 제후들과의 합작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유비가 평원상이 된 것은 공손찬때문이다. 공손찬이 원소와 싸우기 때문에, 유비와 청주자사 전해(田楷)는 제(齊)의 딸에 주둔했다. 조조는 서주를 공격했고, 서주자사 도겸이 도와달라고 한다. 전해와 유비는 함께 가서 그를 도와준다. 이때 유비에게는 1천여명의 병사가 있었다. 그리고 유주의 일부 소.. 2020. 10. 20.
제갈량이 조조를 미워하게 된 원인은....? 글: 문재봉(文裁縫) 193년, 제걀량의 나이 12살때이다. 이때 서주(徐州)의 햇볕은 나른했다. 외지의 각종 할거전쟁도 제갈량의 가족에게는 머나먼 일이었다. 다만, 총명한 제갈량은 이때 이미 적지 않은 책을 읽었고, 사회와 인생에 대하여 어느 정도 생각을 갖추고 있었다. 서주의 담담한 .. 2018. 5. 14.
여범(呂範): 삼국연의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숨은 명장 글: 여빈(呂斌) 여범은 젊었을 때 단지 여남군(汝南郡)의 현리(縣吏)에 불과했다. 그러나 풍채가 뛰어났다. 성안에 유(劉)씨성의 사람이 있었는데, 집안이 부유하고 딸이 아주 예뻤다. 여범이 그 집을 찾아가서 결혼하고 싶다고 하였는데, 유씨의 모친은 여범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혼사.. 2017. 10. 30.
여포가 간파한 중국역사의 비밀 글: 풍현일(馮玄一) <삼국연의>에서 여포의 명성은 그다지 좋지 않다. 비록 명성이 형편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삼성가노(三姓家奴)"라는 칭호만으로도 명예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뛰어난 무예는 여포로 하여금 삼국의 난세에 입족지지(立足之地)를 마련해준다. 여포는 무인이다. 문.. 2016. 8. 27.
유비가 삼분천하할 수 있었던 3가지 무기는? 글: 정정(丁丁) 삼국시대 유비가 최종적으로 삼족(三足)의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조조는 이미 북방을 통일하고 있었고, 손권은 강동에서 웅거하고 있을 때, 유비는 아직 기반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표의 문하로 기거하고 있으면서 칭웅할 땅을 갖지 못하고 .. 2016. 6. 28.
삼국시대 가장 용맹했던 5개의 정예부대 글: 복녕객(福寧客) 난세삼국에 각지의 세력은 아주 복잡했고, 군대도 아주 많았다. 이름을 날리고 후세에 이름이 전해지는 부대도 적지 않다. 오늘 얘기할 이 다섯 개의 정예부대는 대부분 유비와 관계가 있어서, 아마도 한켠으로 치우친 것같다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 그러나 생각.. 2015. 5. 3.
소년 제갈량은 조조의 손에 죽을 뻔했다 글: 유려평(劉黎平) 제갈량이 띠집(茅廬)을 떠나기 전에 조조와는 거의 만난적이 없는 것같다. 그러나, 소년시대에 제갈량의 목숨은 한때 조조의 손에 달려 있었다. 이는 한헌제 초평4년(193년)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 해, 조조의 부친 조숭(曹嵩)은 전란을 피해, 산동 낭야일대에 거.. 2015. 2. 10.
주인을 10번이나 바꾼 유비를 왜 대영웅이라 불리는가? 글: 유계흥(劉繼興), 유병광(劉秉光) 영웅은 출신은 묻지 않는 법이다. 역사상 많은 영웅호걸은 처음 시작할 때는 왕왕 모 군사집단 혹은 정치세력에 붙어있고, 대다수의 영웅들은 모두 주인을 바꾼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대영웅 중에서 주인을 가장 많이 바꾼 사람은 누구일까? .. 2013. 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