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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소종7

진실한 대당 장안(長安): 그다지 번화하지 않았다... 글: 해변적서새라(海邊的西塞羅) 아래의 도면은 당나라때의 장안성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도시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도시의 주택지역(坊)과 상업지역(市)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고, 물리적으로 높은 담장, 제도적으로 법률로 엄격히 통제했다. 이런 기이한 도시의 구성방식은 중국역사상 아주 유명한 "방시제도(坊市制度)"이다. 그렇다. 비록 지금이 대다수 영화드라마작품에서는 성당시기의 장안이 얼마나 번화했는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러나, 사실상 역사적으로 진실한 성당의 장안성은 아마도 그 이름의 뜻 그대로, 정제(整齊), 숙목(肅穆), 냉청(冷淸)했었다고 할 것이다. 전체 도시의 25개 관도(官道)는 동서로 14도(道), 남북으로 15도(道)이다. 전체 장안성은 이들 도로로 모두 108.. 2023. 7. 18.
후당(後唐) 실패의 교훈: "방향이 노력보다 중요하다" 글: 엽서도(獵書徒) 당왕조가 멸망한 이후, 제국판도내의 수십개 할거세력중 어느 하나도 다시 한번 전국을 통일할 실력이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서로간의 전쟁을 벌인 후, 상대적으로 우세한 지위를 지닌 할거정권이 속속 자신의 소조정(小朝廷)을 세운다. 그중 중원지구에 도읍을 정한 5개의 정권이 있다. 바로 후량(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晋), 후한(後漢), 후주(後周). 우리는 이들 5개 정권을 통칭하여 오대(五代)라 부른다. 그리고 중원외에 존재했던 할거정권은 전촉(前蜀), 후촉(後蜀), 남오(南吳), 남당(南唐), 오월(吳越), 민(閩), 초(楚), 남한(南漢), 남평(南平, 荊南), 북한(北漢)은 통칭하여 십국(十國)이라 부른다. 그리하여 후세의 사학자들은 이 분열시기에 대하여 '오대십국"이라고.. 2020. 7. 25.
감로지변(甘露之變): 황권(皇權)과 환관세력의 대결인가? 글: 동현자(洞玄子) 역사상 소위 감로지변은 당문종 태화9년(835년) 환관세력이 일으킨 정변으로 최종결과는 조정의 수백명 관리가 도륙을 당하게 된다. 이번 정변이 발생한 후, 환관집단은 당나라의 군정대권을 더욱 확실히 장악하여, 군주의 폐립(廢立), 생살(生殺)까지도 환관의 손에 장.. 2019. 4. 24.
당왕조의 처참한 최후 글: 황석신문망(黃石新聞網) 모두 알고 있다시피, 역사의 발전은 나선형으로 상승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승하는 과정에서, 문명의 진보가 있을 뿐아니라, 왕조의 교체도 일어난다. 사실상 매번 왕조교체때마다, 대다수의 경우에는 아주 잔혹한 전쟁과 궁중투쟁이 일어난다. 그리고 패배.. 2019. 3. 21.
주온(朱溫): 역사상 최악의 깡패황제 글: 문사열독(文史悅讀) 역사상 깡패황제는 아주 많다. 다만 그중 제1류의 깡패황제를 꼽으라면 후량(後梁) 태조(太祖) 주온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주온은 중국역사상 전설적인 인물이다. 모택동은 그를 이렇게 평가한 바 있다: "주온은 사방과 싸워야 하는 처지여서, 조조와 약간 .. 2013. 12. 21.
이무정(李茂貞)의 부인이씨: 황제와 결혼하지 않고 황후가 된 여인 글: 수은하(水銀河) 황제의 정실부인이 된 여자를 황후(皇后)라고 칭한다. 이것은 기본상식이다. 그러나, 중국의 5천년 역사에는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났다. 수많은 황후들 중에서 유일하게 한 여자는 남편이 황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황후의 봉관(鳳冠)을 썼다. 이 여인은 바로 당나라말.. 2010. 1. 20.
당소종(唐昭宗) : 역사상 가장 형편없었던 마지막 황제 당소종 이엽(李曄)은 당나라의 제19대 황제이다. 황소의 난 이후 15년간 재위했던 27살의 당희종(唐僖宗)이 죽자, 엉망안 나라는 수왕(壽王)이던 이엽의 손에 들어왔다. 그가 바로 당소종이다. 당소종은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고, 역사서적과 유가경전에 밝았다. 즉위초기에는 대당을 진흥시키겠다는.. 2007.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