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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목종10

당선종(唐宣宗)의 세 가지 얼굴 글: 조염(趙炎) 백거이(白居易)가 죽은 후, 당선종 이침(李忱)은 추도시를 쓴다. 그중에는 "문장이만행인이(文章已滿行人耳), 일도사군일창연(一度思君一愴然)!"이라는 구절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감동할만하다. 임금으로서 이처럼 신하를 생각해주다니 이런 유정유의(有情有義)는 .. 2013. 5. 3.
한유(韓愈)의 죽음이 남긴 수수께끼 글: 진재지(陳在智), 중국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고대실 장경(長慶) 2년(822년), 이월 초이틀,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은 병부시랑(兵部侍郞) 한유는 골치아픈 임무를 맡았다. 진주(鎭州, 지금의 하북성 정정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원인은 조정에서 진주에 절도사(節度使)로 파견한 전홍정(.. 2012. 8. 15.
당문종: 환관들에게 꼼짝없이 잡혀산 황제 글: 수은하(水銀河) 동한, 당나라, 명나라는 중국역사상 환관의 정치관여가 가장 심했던 왕조이다. 재위한 황제가 혹은 멍청하고 유약하거나, 혹은 게을러서, 수중의 권력을 수하의 환관들에게 넘겨주어, 환관들이 득세하였고, 조정이 어지러워졌다. 이 몇몇 왕조에서 발생한 당고지화, 감로지변, 토목.. 2009. 9. 17.
명청(明淸)의 신하들은 어떻게 황제를 욕하였는가? 글: 군랑합작(群狼合作) 중국역사상 황제는 신권(神權), 황권(皇權), 족권(族權)을 한 몸에 가지고 있었고, 군주에 대하여 충성을 하는 것(忠君)은 최고의 정치원칙이자 도덕기준이었다. 공공장소에서 황제에 대하여 대불경(大不敬)을 저지르는 것은 사죄(死罪) 즉, 죽음을 당할 큰 죄였다. .. 2008. 7.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