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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당)

당문종: 환관들에게 꼼짝없이 잡혀산 황제

by 중은우시 2009. 9. 17.

: 수은하(水銀河)

 

동한, 당나라, 명나라는 중국역사상 환관의 정치관여가 가장 심했던 왕조이다. 재위한 황제가 혹은 멍청하고 유약하거나, 혹은 게을러서, 수중의 권력을 수하의 환관들에게 넘겨주어, 환관들이 득세하였고, 조정이 어지러워졌다. 몇몇 왕조에서 발생한 당고지화, 감로지변, 토목보의변은 바로 환관난정의 걸작이다. 그중, 당나라의 환관은 가장 패도적이고 설쳐대었다. 예를 들어, 당숙종, 당대종 시기의 환관 이보국(李輔國) 관직이 재상에까지 오른다. 숙종의 황후도 그의 칼에 죽임을 당한다. 그는 일찌기 당대종에게 이렇게 훈계한 바도 있다: "대가(황제를 지칭) 안에 앉아만 계시고, 바깥 일은 노신이 처리하는대로 놔두십시오." 이는 분명하게 황제에게 허수아비로 있으라고 경고하는 말이다. 황제는 환관을 집안노비로 생각했지만, 당나라의 환관은 노비가 변신하여 실질적인 주인노릇을 했다.

 

당나라의 황제중에서, 환관에게 가장 심하게 당한 사람은 당문종 이앙(李昻)이다. 그는 당목종의 둘째아들이다. 형인 당경종이 가짜환관 유극명(劉克明)에게 죽임을 당한 , 다른 왕수징(王守澄) 우두머리로 하는 환관들에 의하여 황제에 옹립된다. 다른 사람에게 빌붙어 먹으면 말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돈을 받으면 손속이 물러질 수밖에 없다. 환관들이 그에게 이렇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이앙은 자연히 환관들에게 큰소리를 치지 못했다. 그러나, 이앙은 뼛속으로는 웅심을 품은 인물이다. 일찌기 즉위초에 그는 외척을 길러 외부의 힘을 빌려 환관에게 타격을 가하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의 생모인 소씨는 복건사람이다. 경성에 이후 부모가 일찍 죽고, 집안에는 동생 하나밖에 없었는데, 이미 연락도 끊겼다. 당문종은 나중에 복건의 관리들에게 그를 찾으라고 지시한다. 그러자 한꺼번에 명이나 당문종의 외삼촌이라고 나타났다. 그중에 어떤 사람은 좋은 대우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모두 가짜임이 밝혀졌다. 진짜 외삼촌은 어디에 있는지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계획은 실패한다.

 

이앙은 다시 눈길을 강호로 돌린다(조정신하는 믿을 수가 없었다). 금방 정주(鄭注), 이훈(李訓)이라는 사람을 찾아낸다. 정주는 원래 의사였다. 의술이 정통하여 궁중에 드나들며 당문종의 심복이 된다.이훈 점쟁이이다. 주역에 정통했다. 나중에 이앙이 궁중으로 부른다. 정주, 이훈 사람은 이앙의 중용을 받고, 있는 힘을 다한다. 그들은 먼저 태화9(835), 이앙을 도와 왕수징의 수중에서 병권을 회수해온다. 그리고 왕수징을 독살하는데 성공한다. 그후, 그들은 다시 산남동도감군을 맡고 있던 진홍지를 경성으로 불러들이는 조서를 내린 , 귀경하는 도중에 죽여버린다. 형세가 좋아지자, 이앙은 환관을 모조리 처결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당나라역사상 최대의 참화인 감로지변이 발생한다.

 

정주와 이훈 계획은 아주 간단했다. 바로 왕수징의 장례를 지내면서, 다른 환관들중 거물들을 모두 왕수징의 장례에 참석하도록 하고, 그들이 방비하지 않는 틈을 타서, 사방의 복병으로 덥쳐서 환관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것이었다. 계획은 아주 좋았다. 그러나, 이훈 공을 세우려는 마음이 너무 강했고, 정주와 공을 나누는 것이 싫었다. 그리하여 그는 먼저 손을 쓰기로 결정한다. 태화9(85), 십일월 이십일일, 이훈 궁중에 복병을 배치하고, 아침조회때 대명궁 좌금오대청의 뒤에 있는 석류나무에 감로(甘露) 내렸다고 거짓말을 해서, 환관두목 구사량, 어홍지등을 유인한다. 생각지도 못하게 구사량이 중간에 눈치를 채어버렸다. 그래서 병사를 이끌고 황급히 대전으로 되돌아가서, 이앙을 볼모로 잡는다. 이어서, 그는 궁문을 걸어잠그고, 조정관리들을 미친듯이 도살한다. 이훈 정주도 모두 피살된다. 사변과 관련있거나 없거나를 불문하고 관리 600여명이 함께 죽는다. 감로지변이후, 전체 중앙정부에는 일할 사람이 남지 않게 된다.

 

감로지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환관들이 그래도 겉으로는 이앙에게 공손했다. 절할때는 절하고, 주렴을 걷을 때는 걷었다. 그러나, 감로지변후 환관들은 이러한 최소한의 표면적인 공경도 보여주지 않았다. 완전히 자신들이 주인행세를 했다. 기록에 따르면, 구사량등은 이앙에게 아주 불손하게 대했다고 한다. 말투가 불손할 뿐아니라, 핀잔을 주고 차갑게 대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환관이어서 자식이 없는데, 이앙을 아들 대하듯이 했다고 한다. 이앙으로서는 힘이 없다보니, 참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때부터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환관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