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궁진췌 5

역사상 유비와 제갈량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글: 야독사서(夜讀史書) <삼국연의>를 읽은 사람이라면 유비와 제갈량이라는 군신에 대한 인상이 아주 깊을 것이다. 유비는 일찌감치 사람들에게 '유황숙'으로 불리웠지만, 처지는 비교적 비참해서, 반평생을 여기저기 떠돌며 지냈다. 그리고 시종 자신의 근거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

삼국시대 공고진주(功高震主)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최후

글: 문방장궤(文房掌櫃) 어떤 사람이 어떤 일에 처하면 모두 자신이 처한 지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주(主)인지 객(客)인지. 예를 들어 주군의 앞에서 신하는 영원히 객의 지위이다. 절대로 주군의 앞에서 자신의 재능을 자랑해서는 안된다. 특히 다른 사람이 있을 때에는. 삼국시대 양수(..

제갈량의 <융중대>는 그다지 고명하지 않다.

글: 서염(徐焰) "삼고빈번천하계(三顧頻煩天下計), 양조개제노신심(兩朝開濟老臣心)" 사람들은 제갈량을 언급하면, 왕왕 그가 유비를 도와 군사전략 &lt;융중대&gt;를 작성하여 "뛰아는 재주를 천하가 다 알고 있다(高才天下知)"고 알고 있다. &lt;삼국연의&gt;의 작자인 나관중은 그를 심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