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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흥8

삼국연의의 5대 궁술고수는...? 글: 초급칠품소지마관(超級七品小芝麻官) 사실상, 삼국연의의 적지 않은 무장들은 모두 활을 사용하는데 아주 능했다. 예를 들어 위연(魏延)은 일찌기 한중전투(漢中之戰)때 화살 하나로 조조(曹操)의 앞이빨을 맞춘 적이 있으며, 강유(姜維)는 위나라군대와 전투를 하는 과정에서 맨손으로 화살을 붙잡은 다음, 자신의 활로 쏘아서 적을 맞추어 죽인 바 있다. 태사자(太史慈)는 성밖에 서서 활을 쏘아 성을 지키는 병사의 손이 나무에 박히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궁술이 아주 뛰어난 인물들이다. 그러나 삼국시대 랭킹5위이내의 화살고수를 따진다면, 아래에서 소개하는 다섯 명을 얘기해야 할 것이다. 삼국시대 무장(武將)의 전투력을 비교하자면 많은 사람들은 자연히 백병전을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2022. 11. 28.
관우의 후손이 있을까? 글: 선한(宣漢) 중국인에게 "의용(義勇)" 두 글자의 화신인 관우는 성공을 다 이루지 못하고 동맹군에게 성을 빼앗기고 도망치다가 죽는다. 그의 최후는 역대의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일이다. 관우의 장남 관평은 부친을 따라 전투에 나섰다가 맥성에서 포위망을 돌파하다가 붙잡혀 부친과 함께 죽는다. 차남 관흥은 제갈량이 중시했으나 불행히도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띨 관씨는 여몽의 손에 붙잡한 후 행방이 묘연하다. 관우의 혈맥은 그리하여 더욱 희박해지게 된다. 한나라가 멸망한 후 수백년 천여년이 지나는 동안 관우는 역대군왕, 무인,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고, 신으로까지 모셔진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일부 관우의 후예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정부의 녹봉과 관직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관우의 후손은 이어져.. 2021. 12. 25.
관우의 후손이 남아 있을까? 글: 고산(高山)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은 심심하면 항상 고대의 명인들의 후손에 대하여 얘기하다가, 일단 관우의 이름이 나오면 사람들은 모두 할 말이 없어진다. 관우의 후손은 그다지 큰 공헌이 없으므로 언급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다만 어떤 사람은 관우에게는 후손이 없다고 얘기한다. 도대체 관우는후손을 두었을까? 관우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동한 삼국시대의 대장이다. 또한 유비와 도원결의한 형제이기도 하다. 관방사서의 기재이건 아니면 역사연의소설의 묘사이건, 관우는 모두 충성과 의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는 온조참화웅과 천리주단기로 삼척동자도 아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영웅도 죽는 법이다. 건안24년(219년), 관우는 형주를 지키다가, 조조와 손권이 .. 2021. 12. 24.
이릉지전(夷陵之戰)의 피해는 어느 정도였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이릉지전은 동한말기 3대전투중 하나이고, 또한 최후의 대형전투이다. 이 전투이전에 촉한과 동오의 합작관계는 육손이 관우를 기습함으로써 끝났다. 쌍방은 전우에서 적이 된 것이다. 조위는 그래서 잠시 숨돌릴 기회를 갖느다. 촉한은 이 전투에서 일패도지했고, 명장과 정예병사들의 손실이 참혹했다. 이릉지전을 시작하기 전에, 동오는 위에서 아래까지 촉한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어쨌든 육손이 한 행위는 군자의 행동은 아니었다. 동맹국이 적국과 싸우는 틈을 타서, 힘을 보태지 않는 것 정도라면 몰라도, 오히려 등뒤에서 칼질을 했다. 그리하여 관우, 관흥 부자는 피살되고, 유비, 유봉부자는 멀어졌으며, 맹달이 촉한에 투항하고, 더더욱 간접적으로 장비의 죽음을 가져온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2021. 2. 27.
관우의 딸은 결국 누구에게 시집갔을까? 글: 지역사(知歷史) 사서에 이름을 남긴 여성은 아주 적다. 관우의 딸도 예외는 아니다.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 건안24년(219년), 관우는 형주를 잃고, 아들 관평(關平)과 함게 오나라장수에 붙잡혀 살해된다. 그를 따라 도망쳤던 나머지 가족(그의 딸을 포함해서)의 행방에 대하여는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진수의 기록에 따르면, 관우에게는 아들 관흥(關興)이 있고, 그가 관우의 작위를 승계했다. 추측하건데 그는 나이가 어려서 성도(成都)에 남아 있었던 것같다. 그래서 부친과 함께 겁난을 당하지 앟은 것이다. 당연히 이렇게 추측할 수도 잇다. 아이는 전란중에 적의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쉽게 도망칠 수 있었다고. 그러나 어떻게 추측하든간에 관흥은 사서에 기록된 유일하게 살아남은 관우의 아들이다. 민.. 2020. 9. 4.
미방(糜芳): 삼국시대 얼굴이 가장 두꺼운 사람... 글: 무릉산인(茂陵散人) '얼굴이 두껍다'는 것을 얘기하자면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세계는 결국 반드시 얼굴두꺼운 사람의 것이다. 비록 이 말은 놀리는 말이기는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기실 삼국시대에 이렇게 .. 2018. 9. 7.
관우의 처는 누구인가? 글: 이치아(李治亞) 삼국시대 유비(劉備)의 부하장수인 관우(關羽), 장비(張飛)는 아주 저명한 인물이다. 특히 관우는 그러하다. 민간에서는 무성인(武聖人)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의 처에 대하여는 기록이 거의 없다. 의심의 여지없이, 관우에게는 처가 있다. 왜냐하면 관우는 세 아들을 .. 2012. 9. 21.
기원223년: 공명향좌(孔明向左), 위연향우(魏延向右) 글: 조염(趙炎) 제갈량과 위연이 불화했다는 증거는 주로 <삼국연의>의 '반골설(反骨說)'과 정사에 나오는 '자오곡기모(子午谷奇謀)'를 제갈량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역사인물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소설가의 말에 의존할 수는 없다. 유한한 사료도 제갈량이 도량좁.. 2012. 7.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