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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가11

적벽대전: 조조가 패배한 원인은 화공이 아니다? 글: 역사학당군(歷史學堂君) 역사상 적벽대전은 한말 삼분천하의 정치국면을 결정한 중대사건이다. 의 가공을 거쳐, 특히 설전군유(舌戰群儒), 초선차전(草船借箭), 차동풍(借東風), 장간도서(蔣幹盜書), 주유타황개(周遊打黃蓋), 화소적벽(火燒赤壁)등의 이야기로손류연합군이 적벽에서 조조의 군대를 대파한 민간기억을 채워놓았다. 그렇다면, 위, 촉, 오 삼국정립 국면을 확립시킨 적벽대전에서 결정적인 승패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중 결정적인 작용을 한 요소는 무엇이었을까? 바꾸어 말하자면, 정말 손류연합군이 동풍을 빌어, 조조의 전선을 태워버렸기 때문에 조조의 군대가 패배하게 된 것일까?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배한 원인에 대하여, 최근 들어, 여러 연구자들이 삼국연의의 사고범위를 넘어, 역사로 되돌아가 더.. 2023. 8. 14.
조조(曹操)의 종묘에 배향(配享)된 26명의 위나라 개국공신은...? 글: 심멱역사적인적(尋覓歷史的印迹) 위나라의 기반을 닦은 인물인 조조는 삼국시대 가장 걸출한 영웅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조의 휘하에는 정상급의 문신무장들이 운집해 있었다. 조조는 죽은 후, 위나라의 종묘에 모셔진다. 위나라의 개국공신들을 표창하기 위하여, 위명제 조예(曹叡)때부터 시작하여, 일부분 사망한 공신을 조조의 종묘에 배향하기 시작한다. 사서기록에 따르면, 모두 26명의 위나라공신들이 조조의 종묘에 배향되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할 것은 이 26명의 조조종묘의 개국공신들은 5차례로 나누어 들어갔다. 그러므로, 그들이 배향된 시기는 서로 다르다. 모사 곽가(郭嘉)는 제일 늦었다. 그렇다면, 이 26명의 조조의 종묘에 배향된 개국공신들은 각각 누구였을까? 제1차: 3명(하후돈, 조인, .. 2023. 2. 27.
원소(袁紹)의 두 아들은 왜 협력하지 않고 서로 싸웠을까?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원소가 비록 관도전투에서 조조에게 패배했지만, 그래도 하북(河北)의 땅은 여전히 그가 장악하고 있었고, 실력은 여전히 강대했다. 만일 하북의 땅을 원소의 한 아들에게 물려주었다면, 조조가 하북의 땅을 차지하는데 아마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소가 죽자, 그의 두 아들 원담(袁譚)과 원상(袁尙)은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 두 형제는 왜 서로 협력하여 공동으로 적을 막아내지 않았을까? 원소의 아들들 중에서, 원소의 자리를 승계할 후보자는 두 명이었다. 즉 원담과 원상이다. 원담이 형이고 원상이 동생이지만, 원상은 인물이 잘 생겼다. 원소의 처인 유씨(劉氏)는 원상을 아꼈고 자주 원소의 앞에서 작은 아들 원상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칭찬한다. 원소도 이 작은 아들이.. 2021. 4. 15.
원소(袁紹) vs 원술(袁術) 글: 림림(琳琳) 삼국연의를 본 사람이라면 모두 원씨형제 원소와 원술을 알 것이다. 기실 원소와 원술 두 형제는 서로를 멸시했다. 원술이 원소를 무시한 주요원인은 원소가 서출(庶出) 즉 첩의 소생이라는 것이다. 원술의 생각으로는 그들 원씨집안은 사세삼공(四世三公)을 지내 마땅히 황제가 나온다면 원씨집안에서 나와야 하고, 첩 소생인 원소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황제에 오른다면 당연히 적출(嫡出), 즉 정실부인 소생인 자신이 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원소는 어렸을 때 백부(伯父)인 원성(袁成)의 양자로 간다. 그리하여, 원성의 후사를 잇는다. 이렇게 되니 그는 원씨집안의 적장자(嫡長子)가 된다. 그리하여 그의 지위가 원술보다 높아지게 된 것이다. 조조는 어려서부터 원소와 같이 놀았다.. 2020. 8. 23.
포신(鮑信): 조조(曹操)는 왜 그의 죽음을 가장 가슴아프게 생각했을까. 글: 하황삼월(河湟三月) 조조는 일생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의 죽은에 비통해 마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곽가(郭嘉)의 죽음은 조조에게 큰 타격을 준다. 그러나, 진실한 감정으로 말하자면, 곽가의 죽음은 조조가 그저 그의 재주를 아낀 것일 뿐이다. 자신을 도와줄 유력.. 2020. 1. 13.
삼국시대 5명의출중한 예언가 글: 가목비원(佳木非元) 삼국시대에 지능이 뛰어나서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나왔다. 이런 신산(神算)은 몇명이나 있었을까? 개략 헤아려보니 가장 뛰어난 사람들은 개략 아래의 5명 정도인 것같다. 첫째, 제갈량(諸葛亮)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제갈량.. 2018. 6. 8.
조조와 손권, 누가 더 속이 깊은가? 글: 이치아(李治亞) 손권은 대단한 인물이다. 특히 주유를 중용하여, 일거에 조조의 팔십삼만대군을 불싸지르고, 여몽을 중용하여, 기세가 대단했던 관우를 격패시키고, 또한 목 위의 머리까지 베어버렸으며, 육손을 중용하여, 불가일세의 유비를 격패시켰다. 그러나, 조조, 손권 두 사람.. 2017. 4. 25.
순욱 vs 곽가: 누가 조조의 제일모사인가? 글: 섭지추(葉知秋) 곽가(郭嘉)가 사망한 후, 조조(曹操)는 매우 비통해한다. 친히 곽가의 집으로 가서 조문을 한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말한다: "천하를 평정하는데 (곽가)의 모공(謀功)이 높았다." 곽가의 죽음에 대하여, 성격이 교활하고 편협한 조조마저도 비탄에 빠져서, "슬프구나 봉.. 2016. 5. 17.
중국역사상 주공을 망친 5명의 모사(謀士) 글: 문풍탁탁(文風卓卓) 천하를 쟁패하려면 좋은 무장이 필요할 뿐아니라, 좋은 모사도 필요하다. 그러나, 만일 운이 좋지 않으면, 아이큐가 20도 되지 않는 자를 만나게 된다. 중국역사상 가장 엉터리였던 5명의 모사를 살펴보기로 한다. 1. 곽개(郭開): 조(趙)나라를 망치다. 조나라 말년의.. 2015. 4. 25.
양영태(楊永泰): 장개석의 제일모사 글: 유계흥(劉繼興) 역사상 일종의 지식엘리트들은 "문객(門客)", "군사(軍師)", "막료(幕僚)"등의 신분으로 자신의 '주인', '주공'을 위하여 계책을 내고, 근심거리와 어려움을 해결해주는데, 이들을 "모사(謀士)"라고 불렀다. 고대의 저명한 모사로는 범증, 진평, 곽가, 가후(賈詡)등이 있.. 2015.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