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림림(琳琳)
삼국연의를 본 사람이라면 모두 원씨형제 원소와 원술을 알 것이다. 기실 원소와 원술 두 형제는 서로를 멸시했다. 원술이 원소를 무시한 주요원인은 원소가 서출(庶出) 즉 첩의 소생이라는 것이다. 원술의 생각으로는 그들 원씨집안은 사세삼공(四世三公)을 지내 마땅히 황제가 나온다면 원씨집안에서 나와야 하고, 첩 소생인 원소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황제에 오른다면 당연히 적출(嫡出), 즉 정실부인 소생인 자신이 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원소는 어렸을 때 백부(伯父)인 원성(袁成)의 양자로 간다. 그리하여, 원성의 후사를 잇는다. 이렇게 되니 그는 원씨집안의 적장자(嫡長子)가 된다. 그리하여 그의 지위가 원술보다 높아지게 된 것이다.
조조는 어려서부터 원소와 같이 놀았다. 조조는 어릴때부터의 친구인 원소의 성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잘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조조가 원소를 평가한 것은 두 가지가 있는데, 실로 입목삼푼(入木三分)의 날카로운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첫째, "원소색려담박(袁紹色厲膽薄), 호모무단(好謀無斷), 간대사이석신(幹大事而惜身), 견소리이망명(見小利而忘命); 비영웅야(非英雄也)" 이 말은 조조가 유비와 자주논영웅(煮酒論英雄)할 때 한 말이다. 조조가 한 말의 뜻은 이러하다: 원소는 겉으로 보면 위엄있지만 실제로는 겁이 많다. 일을 꾸미기는 좋아하지만 과감하지 못하다. 큰 일을 하고 싶기는 하나 목숨을 아낀다. 그리고 작은 이익을 보면 자신의 사명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그는 진정한 영웅이라 할 수 없다.
둘째, "오지소지위인(吾知紹之爲人), 지대이지소(志大而智小), 색려이담박(色厲而膽薄), 기극이소위(忌克而少威), 병다이분획불명(兵多而分劃不明), 장교이중령불일(將驕而衆令不一), 토지수광(土地雖廣), 양식수풍(糧食雖豊), 적족이위아봉야(適足以爲我奉也)" 이 말은 원소가 하북대군을 이끌고 조조를 토벌하러 올 때 한 말이다. 그 뜻은 다음과 같다: 나는 원소의 사람됨을 잘 안다. 뜻은 크지만 지모가 부족하고, 표면적으로 위엄있지만 겁이 많다. 다른 사람의 재지를 꺼리고, 자신은 명망이 없다. 군대는 비록 많으나 조직이 엄밀하지 못하고, 장수들은 교만하나 통일적인 지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토지도 넓고, 식량도 풍부하지만, 그것은 모두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원소는 용모가 영준(英俊)하고 위무(威武)하여, 원봉(袁逢), 원외(袁隗)의 총애를 받는다. 집안 배경을 가지고 어렸을 때 관직에 나섰으며 스무살이 되기도 전에 복양현장(濮陽縣長)이 되었으며, 청렴하고 일잘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원술은 원소와 달랐다. 그는 "협기(俠氣)"가 있었다. 듣기 좋은 말로 하자면 행협장의(行俠仗義)하는 의리있는 인물이고, 듣기 싫은 말로 하면 깡패스타일었다. 이런 '협기'로 인하여, 그가 나중에 한 지방을 차지하자 자연스럽게 많은 황건적(黃巾賊), 흑산적(黑山賊), 백파적(白波賊)이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원소는 출신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을 자신의 친구나 부하로 삼지 않았다. 이는 당시의 주류 가치관과 일치한다. 그리하여 사대부들은 그를 좋아했다. 그래서 일류의 인재들은 원소에 투항한다. 곽가(郭嘉)를 포함해서 일류인재들은 그의 휘하에 모인다.
원술은 천하동탕(天下動蕩)의 국면이 형성되는 것을 보자, 자신의 수하를 데리고 장안을 떠나, 당시 동한에서 인구가 가장 많았던 남양군(南陽郡)으로 가서, 시국이 바뀌는 것을 지켜본다. 원술이 가장 강대했을 때는 치하의 인구가 800만에 이르렀다. 후기의 유비, 제갈량이 사천, 한중을 점거했을 때의 인구는 전성기 원술의 인구에 몇 분의 1에도 못미쳤다.
원술은 건안2년(197년) 수춘(壽春)에서 황제에 오른다. 그가 황제에 오른 후 생할은 호화사치했고, 음탕했다. 그리고 재물을 마구잡이로 낭비했다. 후궁처첩이 수백에 이른다. 모두 비단 옷을 입었고, 맛있는 음식은 온갖 것이 다 있었다. 그러나, 그의 군대사벼들은 굶주리고 있었다. 그의 부패통치하에 강회의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고, 많은 지방은 사람이 살지 않게 된다. 기근이 들어 사람이 사람을 먹는 현상까지 나타난다. 원술이 죽기 전에는 주방장에게 물고기요리를 해달라고 해도 만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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