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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포신(鮑信): 조조(曹操)는 왜 그의 죽음을 가장 가슴아프게 생각했을까.

by 중은우시 2020. 1. 13.

글: 하황삼월(河湟三月)


조조는 일생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의 죽은에 비통해 마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곽가(郭嘉)의 죽음은 조조에게 큰 타격을 준다. 그러나, 진실한 감정으로 말하자면, 곽가의 죽음은 조조가 그저 그의 재주를 아낀 것일 뿐이다. 자신을 도와줄 유력한 조력자를 잃은데 대하여 가슴아파한 것이다. 다만 정말 조조로 하여금 가슴으로부터의 아픔을 느끼게 하고, 평생 잊지 못하게 한 인물을 꼽으라면 포신이 있다.


포신은 전투가 치열한 과정에서 죽음을 당하고, 시신조차 발견하지 못한다. 조조는 매우 가슴아파 하면서 사람을 시켜 나무로 포신의 모습을 조각하게 하여 제사지내고 매장한다. 장례식에서 조조는 통곡하며 눈물을 흘려, 보는 사람들이 모두 감동한다. 여러 해 후에 조조는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고 친히 포신의 두 아들에게 관직을 준다.


그렇다면, 조조는 왜 그렇게 포신을 중시했을까? 왜냐하면 포신은 조조에 있어서, 백락(伯樂)이고, 지음(知音)이고, 좋은 조력자이다. 조조의 일생도안 포신처럼 그를 대한 사람은 없었다.


사람이 살면서 금상첨화(錦上添花)해주는 사람은 많지만, 설중송탄(雪中送炭)해주는 사람은 적다. 만일 조조가 어렸을 때, 교현(喬玄), 허소(許邵)의 눈에 든다. 그러나 이는 어느 정도 조조의 가문을 좋게 보았기 때문이고, 어느 정도 만들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진정 조조를 좋게 보아주고, 아무런 유보없이 지지해준 사람을 찾는다면 포신이 제일이다.


동탁의 난 이후, 관동의 제후들이 회맹을 하는데, 당시 포신은 이미 제남상(濟南相)으로 일방의 제후였다. 많은 사람들은 모두 실력이 웅후한 원소를 좋게 보고 있었는데, 유독 포신만이 혜안을 지니고 보물을 알아보았다. 원소같은 자는 대사를 이루는데 부족하다고 보았다. 만일 천하를 구하려면 조조에 의지해야한다고 보았다. 알아야 할 점이라면, 이때의 조조는 아직 무명이었다는 것이다. 포신의 격려는 조조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포신은 조조에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백락이다.


포신이 조조를 격려한 것은 말에서만 머무르지 않았다. 실제행동으로 조조를 지지한다. 동탁이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한 후, 제후들이 모두 관망하고 있을 때, 조조는 자신의 얼마 되지 않은 군대를 이끌고 추격한다. 이때도 오직 포신만이 들고 일어나 조조를 따라 적을 추격한다.


변수전투에서 조조는 동탁의 수하에게 저격당해 병력을 크게 잃고 자신의 목숨마저 위험했다. 그리고 이 전투에서 포신은 중상을 입으며, 포신의 동싱 포훈(鮑勛)은 불행히도 전사한다.


관동제후연맹이 얼마 지나지않아 흩어지게 된다.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천자의 생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금방 모두 자신의 점령지를 확대하는데 골몰한다. 맹주인 원소도 정의를 내세우지 않고, 기주(冀州)를 한복(韓馥)의 손에서 빼앗아 버린다. 일시에 원소의 세력은 중천에 뜬 해와 같았다.


세상사람들이 모두 원소의 세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생각할 때, 오직 포신만이 날카로운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동탁이 막 죽었으므로, 원소는 금방 제2의 동탁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러니 그들과 같이 어울리지 말자고 한다. 다만 당장 그들과 겨룰 수 없으니 가장 좋은 선택은 도광양회(韜光養晦)하면서 정관기변(靜觀其變)하는 것이다. 그의 생각은 조조의 생각과 들어맞았다.


바로 이 기간에 조조는 순조롭게 발전하여, 흑산군(黑山軍)을 궤멸시키고 동군태수(東郡太守)를 맡는다. 얼마 후, 청주(靑州)의 황건군(黃巾軍) 수십만명이 연주(兗州)로 흘러들어온다. 포신은 청주황건군이 멀리서 왔으니, 양초(糧草)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잠시 날카로운 공격을 피해서 수비를 위주로 하며 약간의 시간을 기다리면 싸우지 않아도 상대가 스스로 궤멸할 것으로 본다. 아쉽게도 연주자사 유대(劉岱)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주동적으로 출격하다가, 결국 황건군에게 죽임을 당한다.


연주의 주인이 없어지고, 군룡무수(群龍無首)의 상태가 되자, 포신은 조조를 떠올린다. 사람들과 공동으로 상의한 후, 조조를 연주자사로 모셔오기로 결정한다. 조조는 연주자사로 부임한 후, 적절한 책략을 써서 금방 황건적을 평정한다. 그리고 수십만의 투항해온 황건군을 편제하여 청주군이라 칭한다. 이때부터 조조는 제후의 반열에 들어가고 천하를 쟁탈할 이기(利器)와 밑천을 갖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한걸음 한걸음 성공을 향해 간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포신이라는 인생의 조력자로 인하여 조조는 무명지배에서 왕후장상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포신이 알아주지 않고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조조의 인생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삼국의 역사가 어느 방향으로 발전했을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삼국시대에 천하는 대란에 빠지고, 영웅호걸들에게는 자신을 드러낼 무대가 주어졌다. 그러나 우수한 인재들이 연이어 나오고, 인재를 알아보는 백락같은 인물들도 많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허소, 사마휘같은 인물은 많은 인재를 발굴한다. 그러나 포신은 자신의 몸을 굽혀서 인재를 도와준다. 그리고 그가 한 모든 행동은 국가사직을 위한 것이지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사람은 삼국역사를 통틀어서 오로지 포신 한 사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