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11 중국의 한국전참전결정의 경위 글: 역사학인(歷史學人) 1950년 9월 15일, 한국전쟁의 국면이 완전히 바뀐다. 미군 맥아더원수의 지휘하에 미군 7만여명, 500여기의 비행기, 260척의 군함이 협력하여 인찬상륙작전을 벌여 조선인민군의 퇴로를 포위한다. 9월 16일, 낙동강전선의 한미군 10개사단이 대거 반격을 시작한다. 미군.. 2018. 7. 28. 고강(高崗)의 권력은 어떻게 유소기와 주은래보다 커지게 되었는가? 글: 중천비홍(中天飛鴻) [모택동은 당의 과도시기총노선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일을 중시하고 사람을 중시하지 않았다. 최소한 신세제풍파가 발생한 1953년초에는 모택동이 유소기와 주은래의 일부 언행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따라오는 고강은 비교적 좋아한다.. 2015. 5. 30. "사서(史書)"와 "사실(史實)"의 진위 글: 소화(韶華) 1. 진실한 역사를 쓰기는 어렵다. 옛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다.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또한 말한다. "역사는 승리자가 쓰는 것이다" 승리자가 역사를 쓰면 항상 자신의 좋은 점을 드러내고, 자신의 나쁜 점은 회피하고자 한다. 당대왕조의 사.. 2014. 4. 29. 중공의 6.25참전 의사결정경위 글: 사마량(司馬亮) “병력을 움직이는 일은 국가의 대사이다. 삶과 죽음이 갈라지는 곳이며, 살아남고 망하는 것이 갈라지는 길이다. 잘 살펴보지 않으면 안된다.” (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 예상치도 못하게 발생한 한국전쟁은 새로 건국하여 할 일이 많던 신중국에 있어서,.. 2011. 6. 6. 주은래의 총리지위를 위협했던 두 인물 글: 김산(金汕) 주은래는 신중국의 제1대 총리로서, 27년간 그 자리를 지켰다. 이는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27년간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현재 일반적으로 문화대혁명시기에 그의 자리는 가장 큰 위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왕홍문(王洪文.. 2011. 3. 21.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