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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붐: 하버드 석사졸업생이 귀국하여 공무원이 되다 글: Letsight​모두 "우주의 끝은 '편제(編制, 공무원편제에 들어가는 것을 말함)'이다"라고 말한다. 심지어 해외유학생도 예외는 아니다.​최근, 항저우시 위항구(餘杭區)의 공무원예비합격자공시명단의 인터넷을 크게 달구었다.​공명단에 들어간 99명의 학생들 중에서 푸단대학, 저장대학, 난카이대학, 시안교통대학등 985명문대학졸업생들이 있을 뿐아니라, 시드니대학, 리츠대학등 QS100대명문대학을 졸업한 학생도 있었다.​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항저우시 위항구 교육국에 채용된 여학생이다. 직위는 교육관리1급주임과원이다. 졸업학교에는 미국 하버드대학이라고 되어 있다.​원서제출요건상 이 직위의 학력은 석사연구생이상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하버드 석사생일 가능성이 높다.​성적으로 보면 그녀는 응시자중에서 필기점수.. 2024. 11. 4.
태평천국말기 천경(天京)위기때 왜 각지의 제후들은 도와주러 오지 않았을까? 글: 암암설사(巖巖說史)​천경함락전 3개월간 홍수전은 마치 뜨거운 가마속의 개미처럼 조급하여 어쩔 줄 몰랐다. 이때 상군(湘軍)은 기본적으로 남경을 완전 포위했고, 국면은 위기일발이었다. 그러나 수성하는 병사는 겨우 3천여명에 불과했다. 포위망을 풀려면, 각지의 병력으로 하여금 남경으로 와서 근왕(勤王)하도록 하기 위해 불러야 했을 것이다. ​증원군을 얻기 위하여,홍수전은 심지어 자신의 동생 홍인간(洪仁玕)으로 하여금 강소,절강으로 가서 구원병을 데려오도록 하려 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 어느 제후왕도 천경으로 오려하지 않았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예를 들어, 시왕(侍王) 이세현(李世賢), 강왕(康王) 왕해양(汪海洋)은 수중에 수십만대군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절강, 강서 변경지역에서 국면을 관망할 뿐 천.. 2024. 11. 3.
북송(北宋)과 남송(南宋) 사이의 두개 왕조는...? 글: 신비역사가(神秘歷史哥)​북송과 남송 사이에 두 개의 왕조가 탄생한 바 있다. 하나는 '대초(大楚)'정권으로 개국황제는 장방창(張邦昌)이며, 겨우 33일간 존속했다; 다른 하나는 '대제(大齊)'정권으로 개국황제는 유예(劉豫)이며 7년간 존속했다.​그럼 먼저 장방창의 대초정권부터 보기로 하자. 1127년, 금군이 변경(汴京)을 함락시킨 후, 송휘종과 송흠중 두 황제를 끌고가면서 북송이 만했다. 다만, 당시 금나라는 잠시 직접 이 광활한 중원지역을 통치할 수 없어, 먼저 괴뢰정권을 만들어 대리통치하게 하고자 했다. ​이때, 금군은 변량성의 한족대신들을 모아서 조씨(趙氏)가 아닌 신황제를 공개적으로 선출하도록 한다. 이때 대신들은 내심 투표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투표한다는 것은 공공연히 조씨황제의 합.. 2024. 11. 3.
안사의 난(安史之亂)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 글: 화로치(禾珯茬)​당대종(唐代宗) 광덕원년(763년) 정월, '안사의 난'이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1​사조의(史朝義)는 막주(莫州, 지금의 하북성 임구 북쪽)에서 당군에게 패배하고, 성안에 들어가서 사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조의는 연(燕)의 마지막 황제이고 반란군장수 사사명(史思明)의 아들이다.​대세가 기운 것을 보자 부장(部將) 전승사(田承嗣)는 기운빠진 얼굴로 달려와 사조의를 만난다: "폐하, 당군의 공세가 너무 맹렬합니다. 신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같습니다."​사조의는 원래 무능한 자였다. 전승사의 말을 듣자 더욱 당황해 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경, 어떻게 하면 좋겠소?"​전승사는 탄식하며 말했다: "아,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저 위험한 전략을 써야할 것같습니다."​.. 2024. 11. 3.
북위(北魏): 종실반란(宗室叛亂)이 가장 빈번했던 왕조... 글: 자귤(紫橘)​종실반란은 고대에 근절할 수 없었던 폐단이며, 역대왕조에서는 항상 종실반란이 있었다. 그러나 반란이 왕조내내 시종해서 발생한 것은 북위를 꼽을 수 있다. 북위종실은 도무제(道武帝)의 건국부터 효명제(孝明帝) 가 영태후(靈太后)에게 독살당할 때까지 129년간 존속하며 8명의 황제를 거쳤는데, 모두 합쳐서 20차례의 종실반란이 일어났다. 반란의 빈도는 역대왕조에서 볼 수없을 정도였다.​건국때부터 반란이 일어나다.​종실반란은 북위의 병폐라 할 수 있다. 도무제 탁발규(拓跋珪)는 386년 4월에 북위를 건립한다. 건립때부터 종실반란의 고통을 겪게 된다. 386년 8월 탁발규의 숙부 탁발굴돌(拓跋窟咄)이 반란을 일으켜 탁발규와 국가통치권을 쟁탈한다. 탁발규의 근신 우항(于恒)도 굴돌과 결탁한다... 2024. 11. 2.
진백달(陳伯達) vs 섭영진(聶榮臻): 누가 부평(阜平)에서 모택동(毛澤東)을 구했을까? 글: 옥미수(玉米穗)​진백달이 만년에 회고록을 썼다. 그의 아들 진효농(陳曉農)이 기술편찬하여 이라는 책으로 냈다. 이 책의 한 장면은 진백달이 모택동을 구해준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진백달은 이렇게 회고한다: 1948년 모택동이 하북성 부평현에 있을 때, 하루는 국민당 비행기가 부평의 상공으로 날아왔다. 진백달은 비행기엔진소리를 들은 후,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급히 모택동의 거처로 달려가 모택동에게 말했다: "비행기가 머리 위에 있습니다. 빨리 떠나야 합니다!" 모택동은 원래 어떡할지 망설이고 있었는데, 진백달이 그렇게 말하자, 바로 경위원과 건물을 나갔다. 모택동이 건물을 나간 후, 진백달은 비행기의 주의를 끌기 위하여, 고의로 마당에 서서 떠나지 않았다. 모택동은 그것을 보고 고개를 돌려 소.. 2024. 1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