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진시황)48 진시황은 왜 말년에 스스로를 "짐(朕)"이라 칭하지 않았는가? 글: 유병광(劉秉光) 진(秦)나라가 전국을 통일하기 이전에 "짐"은 1인칭대명사로 "나"라는 뜻이었다. 남녀노소, 존비를 불문하고 모두 자신을 '짐'이라 칭할 수 있었다. 기원전221년, 진나라가 육국을 멸하고, 진왕 영정은 천하를 통일한 지고무상의 군주가 된다. 영정은 이렇게 생각한다. 자.. 2015. 12. 29. 진시황의 부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글: 문방장궤(文房掌櫃) 진시황의 일생은 수수께끼로 가득하다. 여러 수수께끼들 중에서 가장 심원한 의안의 하나는 그의 후궁이 도대체 누구냐는 것이다. 중국의 역대왕조의 황제는 후궁에 대하여 모두 기록이 남아있다. 특히 황후에 대하여는 모의천하의 퍼스트레이디로서 제도상으로.. 2015. 2. 10. 진시황의 "사망" 의식 글: 유강(劉剛), 이동군(李冬君) 세상의 그 어느 군주도 죽음을 진시황처럼 대하지는 않았다. 그는 즉위한 다음 해부터 자신의 묘를 준비한다. 그 때 그는 겨우 14살이었다. 모든 일은 태후(太后)와 중부(仲父)가 처리하고 있을 때이다. 왕권은 사망의 그림자 속에 있다. 중부는 바로 여불위(.. 2013. 11. 10. 진시황이 사망하기 전의 3가지 괴사(怪事) 글: 잡기어(卡奇魚) 진시황36년(기원전211년), 연속하여 3개의 사건이 일어나 진시황을 아주 우울하게 만든다. 첫번째 사건은 "형혹수심(熒惑守沈)"이다. <사기.진시황본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삼십육년형혹수심" 진시황은 이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무엇이 "형.. 2013. 4. 13. 진시황의 죽음에 대한 추리 글: 진경원(陳景元) 진시황의 사후 3개월동안 온량거(轀輬車)에 놓아두고, 매장도 하지 않고 장례도 치르지 않으면서, 정상인과 마찬가지로 함양(咸陽)으로 돌아와서 여산(驪山) 북록의 능묘에 묻혔다는 주장은 통상적인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다. 어떤 시신이라도, 엄격한 냉동, 방.. 2012. 9. 20. 병마용을 불태운 것은 진이세(秦二世)일까? 글: 예방육(倪方六) 최근 이틀동안, 이전에 열기를 내뿜었던 진시황 병마용이 다시 뉴스거리로 떠올랐다. 최대의 뉴스는 병마용이 인위적으로 불태워졌다는 것이 추가로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그럼 누가 불태웠을까? 전 병마용관장인 위안중이(袁仲一)는 아마도 항우일 것이라고 했다. .. 2012. 6. 11. 이전 1 2 3 4 5 6 ···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