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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진시황)

진시황은 왜 말년에 스스로를 "짐(朕)"이라 칭하지 않았는가?

by 중은우시 2015. 12. 29.

글: 유병광(劉秉)

 

진(秦)나라가 전국을 통일하기 이전에 "짐"은 1인칭대명사로 "나"라는 뜻이었다. 남녀노소, 존비를 불문하고 모두 자신을 '짐'이라 칭할 수 있었다. 기원전221년, 진나라가 육국을 멸하고, 진왕 영정은 천하를 통일한 지고무상의 군주가 된다. 영정은 이렇게 생각한다. 자신의 공적은 삼황오제를 합친 것같으므로 자신의 큰 공덕을 드러내고, 군주로서의 무상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삼황'과 '오제'에서 각각 1자씩을 뽑아서 '황제'라 칭한다. 동시에 '짐'을 황제의 전용용어로 한다. 다른 사람은 쓰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말련에 이르러, 진시황은 더 이상 스스로를 '짐'이라 칭하지 않는다.

 

시작은 진시황이 신선이 되고자 할 때부터이다. 진시황은 유신론자이고, 그는 신선세계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이 언젠가는 장생불로의 선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꿈꾼다. 황제가 신선이 되고자 하니, 선인을 찾고 신을 만드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든다. 노생(盧生), 후생(侯生), 석생(石生), 서불(徐巿), 한종(韓終)등의 사람들이 그 중의 대표인물이다. 이들은 진시황이 신선이 되고자 하는 갈망을 지니고 있다는 심리적 약점을 이용하여, 교묘한 말고, 허황된 이여기를 엮어서 어린애를 속이듯이 진시황을 속인다. 진시황은 그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쉽게도 이들은 많은 금은재화를 가져갔으면서도, 진시황에게 선약 한 알도 가져다 주지 못한 것이다. 물론 이런저런 핑계는 대었다.

 

기원전212년, 노생은 다시 진시황을 속여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영지(靈芝), 기약(奇藥)과 선인(仙人)을 계속 찾았으나, 지금까지 찾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뭔가가 그것들을 다치게 한 것같습니다. 제 생각에 폐하께서 항상 비밀리에 다니셔서 악귀를 쫓아버리십시오. 악귀가 물러나면, 신선과 진인이 올 수 있을 것입니다. 폐하가 거처하는 곳을 신하들이 알게 되면, 신선이 오는 것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신선인 진인은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으며, 구름을 타고 놀러 다닐 수 있고, 수명은 하늘과 땅과 같이 장구합니다. 현재 폐하께서 천하를 다스리기 때문에 청정염담(淸靜恬淡)할 수 없습니다.  폐하가 머무는 궁실을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불사약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후, 진시황은 깨닫는 바가 있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신선, 진인을 흠모해 왔다. 앞으로 나 자신을 '진인'이라 부르겠다. 더 이상 '짐'이라 하지 앟겠다."

 

신선이 되기 위하여, 진시황은 노생이 말한대로, 거처하는 곳을 일정하게 하지 않고, 종적도 일정하지 않게 하였다. 누군가가 그의 행적을 누설하면, 죽음을 당했다. 이것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후, 다시는 누구도 진시황이 어디에 있는지를 몰랐다. 노생이 내놓은 요구사항을 진시황은 그대로 따랐지만, 노생은 선약을 가져오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압력이 거셌다. 얼마 후, 진시황이 사람을 너무 많이 죽이자 각지의 유생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노생, 후생은 진시황을 건드릴 수 없다고 보고 그들의 기량으로는 곧 들통날 것이라고 여긴다. 일단 들통나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진시황을 떠나기로 한다. 그들은 유생들을 따라 진시황을 마음껏 욕해주고, 멀리 도망친다. 진시황은 그 소식을 듣고 대노하여, 소위 '갱유'사건을 일으킨다. 화근은 노생, 후생이었다.

 

노생, 후생이 도망친 후에도 진시황의 신선이 되려는 욕망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는 한편으로 많은 방사들을 보내어 선인을 찾게 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 사방을 순유한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다. 기원전210년, 일대의 웅재위략, 공개천고의 제왕이 순유 길에 죽는다. 향년 오십세이다. 진시황은 선약을 위하여 '짐'이라는 고귀한 칭호까지도 포기한다. 그러나 결국 꿈에도 그리던 진인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잃었다. 생각해보면 불쌍한 일이다.

 

진시황이 죽자 호해가 즉위한다. 그가 진이세(秦二世)이다. 이세원년(기원전209년) 봄, 대신들이 글을 올린다: "시황묘를 황제의 시조묘로 모신다....황제는 여전히 스스로 '짐'이라 칭한다" 여러 신하들의 건의를 듣고 진이세는 스스로 '짐'이라 칭한다. 호해를 속이고, 권력을 독단하기 위하여 조고는 다시 '짐'자를 가지고 호해를 속인다: "천자가 고귀한 것은 여러 신하들이 목소리를 듣게만 하고, 얼굴은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짐'이라 칭합니다. 폐하는 앞으로 조회를 없애고, 금궁 안에 거처하십시오." 호해는 그 말을 믿고 하루종일 내정에서 취생몰사한다. 조금씩 조고의 허수아비가 된다. 마지막에는 명실상부한 고가과인(孤家寡人)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