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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증국번)17

증국번은 무슨 병으로 죽었는가? 글: 장계합(張繼合) 청나라의 명신 증국번(曾國藩)은 일찌기 정국을 장악한 바 있고, 제자를 무수히 거느렸다. 아쉽게도 그의 생명은 그다지 긴 편이 아니었다. 확실히 이 호남인은 일찌감치 골치아픈 질병을 앓고 있었다. 최소한 그는 일찌기 평생을 괴롭힌 피부병을 앓았다. 말년에 그는.. 2018. 12. 13.
증국번은 사위 5명을 왜 하나같이 못난이들로 골랐을까? 글: 한정우기(閑情偶記) 청나라말기의 명신 증국번은 독보적인 안목으로 사람을 잘 알아보는 것으로 유명한다. 그러나, 누구든 실수할 때가 있는데, 증국번의 실수도 유명하다. 증국번에게는 다섯 명의 딸이 있는데, 사위를 고를 때마다 항상 실수했다. 증국번의 장녀는 증기정(曾紀靜)(18.. 2018. 6. 7.
증국번은 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글: 문회독서주보 청나라때 정국번은 관료로서의 처신에 정통했을 뿐아니라, 청나라의 군사가, 이학가, 정치가, 서예가, 문학가이다. 나라를 다스리고, 군을 다스리고, 집안을 다스리고, 교육하는 방면에서 모두 큰 업적을 남긴다. 그의 사상과 모략은 사람으로서의 처세의 도리로 후세게.. 2014. 12. 12.
증국번의 부친은 어떻게 아들을 가르쳤는가? 글: 나일영(羅日榮) 증국번에 대하여는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는 청말의 "중흥4대명신(中興四大名臣)"중 하나이고, "입덕입공입언삼불후(立德立功立言三不朽), 위사위장위상일완인(爲師爲將爲相一完人)"(덕을 세우고, 공을 세우고, 말을 세워 세 가지 불후의 공덕을 이루었고, 스승으로.. 2014. 8. 26.
증국번: 영불연합군의 북경공격때 왜 북상하여 근왕(勤王)하지 않았는가? 글: 문재봉(文裁縫) 옥루편봉연야우(屋漏偏逢連夜雨) 선지우우타두풍(船遲又遇打頭風) 지붕이 샐 때 하필이면 장마가 내리고 배가 늦을 때 하필이면 역풍이 분다. 매번 이 두 마디 말을 생각할 때마다, 머리가 빠개질 것같고,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당시의 국면을 생각해보자. 자신은 .. 2014. 4. 29.
증국번(曾國藩): 개명후 관운이 형통하다 글: 이자지(李子遲) 증국번(1811년 11월 26일 - 1872년 3월 12일). 한족, 호남성 누저시(婁底市) 쌍봉현(雙峰縣) 하엽진(荷葉鎭) 천평촌(天坪村)(청나라때 옛 소속은 호광행성 장사부 상향현) 사람이다. 만청의 중신으로 상군의 창립자이며 총사령관이다. 청나라때의 군사가, 이학가, 정치가, 서.. 2013. 11. 30.
증국번은 어떻게 '범인"이 "초인"으로 바뀌었는가? 글: 장굉걸(張宏杰) 서른 살은 증국번 일생의 가장 중요한 분수령이다. 증국번이 후세인들에게 지니는 가장 큰 의미는 그는 자신의 실천으로 증명했다는 것이다. 한 범인(凡人)이 '도야변화(陶冶變化)'를 통하여, 초인(超人)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바꾸어말해서, 만일 한 사람이 진정으로 .. 2013. 11. 24.
신비한 태평천국의 성고(聖庫): 증국번이 3일간 수색해서 찾지 못하다 글: 문사열독(文史悅讀) 신비하게 소실된 성고의 자금 - 천경성이 함락될 때, 태평천국은 얼마나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는가? - "성고"에 산처럼 쌓여 있던 금은보화는 그냥 사라졌단 말인가? - 민간의 소문에 따르면, 이들 금은보화는 남경성내에 묻혀 있다. 이것은 근거없는 소문인가 .. 2013. 11. 10.
비전형적인 청백리 증국번: 청백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큰 일을 하기 위해서 글: 요망동방주간 증국번이 사망한 후, 증씨집안은 가장 중요한 수입원을 잃었고, 생활은 넉넉하지 못했다. 증국번이 죽은 후 5년째 되는 해, 아들 증기택은 가족의 병이 위중했으나, 치료할 돈이 부족하여, 부득이하게 좌종당에게 부탁하여 멀리 신강에 있던 유금당(劉錦棠)에게 돈을 빌.. 2013. 9. 25.
암살과 고두: 증국번은 서태후가 심어놓은 인물을 제거했다 글: 유강(劉剛) 이동군(李冬君) 1870년(동치9년), 새로 부임한지 2년도 되지 않은 양강총독(兩江總督) 마신이(馬新貽)가 암살당해 죽었다. 자객이 손을 쓴 곳은 양강총독의 열병장이었다. 그런데 마치 무인지경처럼 양강총독에게 걸어갔고, 아무도 말리지 않았고, 아무도 묻지 않았으며, 자.. 2013. 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