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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장개석)37

장개석이 대만으로 도망칠 때 데려간 3명 글: 소담야사(笑談夜史) 장개석은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국민정부의 최고총사령관일 뿐아니라, 항일투쟁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지도자이다. 우리는 모두 회해전역(淮海戰役)이 끝난 후 장개석은 대만으로 도망쳤고, 그가 대만으로 옮겨갈 때 그가 좋아했던 골동품, 서화등 문화재를 .. 2019. 4. 15.
장개석의 사무실에는 왜 책이 한권도 놓여 있지 않았을가? 글: 진관임(陳冠任) 지도자로서 장개석의 사무실은 세계각국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안에서 책 한권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사무실에 책을 한권도 놓아둔 적이 없다. 3,4십년대 중경(重慶)에 있을 때, 장개석은 두 개의 사무실이 있었다. 하나는 군사위원회(軍事委員會), 다른 하.. 2019. 3. 21.
장개석은 어떻게 성도(成都)에서 대만(臺灣)으로 도망갔는가? ㅠ상,글: 왕풍(王豊) 장개석이 처음 사천에 온 것은 1935년 3월 2일이다. 그가 사천에 간 목적은 첫째가 독군(督軍)이다. "공비토벌" 전선을 시찰하기 위함이다. 장개석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전력을 다하여 사천성정부가 사천을 건설하는 것을 돕고, 사천동포의 고통을 해소시켜 주겠다고, .. 2015. 11. 2.
양영태(楊永泰): 장개석의 제일모사 글: 유계흥(劉繼興) 역사상 일종의 지식엘리트들은 "문객(門客)", "군사(軍師)", "막료(幕僚)"등의 신분으로 자신의 '주인', '주공'을 위하여 계책을 내고, 근심거리와 어려움을 해결해주는데, 이들을 "모사(謀士)"라고 불렀다. 고대의 저명한 모사로는 범증, 진평, 곽가, 가후(賈詡)등이 있.. 2015. 2. 20.
장개석의 '학력' 글: 유계흥(劉繼興) 요즘은 가짜가 횡행한다. 학력은 더욱 그러하다. 특히 일부 해외에서의 학력은 정보불균형으로 더더욱 진위를 구분하기 어려워 중국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클라이든대학"과같이 세상을 속이는 사기꾼이 적지 않다. 외국유학으로 얻은 학력은 근대에 들.. 2015. 1. 14.
장개석의 "마지막 하루" 글: 구양박문(歐陽博文) 대만 의 보도에 따르면, 대만 '중앙연구원' 근대사연구소는 31명의 장개석의 신변에서 일했던 시종인원들을 인터뷰하여, 근 60만자에 이르는 구술역사를 완성했다. 대만당국의 '유엔퇴출'시 장개석이 분노하여 압설모를 집어던지고 화가나서 눈물을 흘린 일도 기록했고, 장개석의 마지막 하루도 기록했다. 장개석의 시위관, 내무조 부주임등의 직위를 지낸 응순인(應舜仁)의 회고에 따르면, 1971년 10월 26일 장개석을 모시고 대계빈관(大溪賓館)으로 갔다. 그날 무관이 장개석에게 '유엔퇴출' 소식을 보고한다. 장개석은 '압설모를 집어 바닥에 던졌다' 응순인은 장개석을 오랫동안 모셨지만 처음으로 그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목도했다고 말한다. 대만당국이 전 외교부장 전복(錢復)은 당시 장개석의 영.. 2014. 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