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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장개석)

장개석이 대만으로 도망칠 때 데려간 3명

by 중은우시 2019. 4. 15.

글: 소담야사(笑談夜史)


장개석은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국민정부의 최고총사령관일 뿐아니라, 항일투쟁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지도자이다. 우리는 모두 회해전역(淮海戰役)이 끝난 후 장개석은 대만으로 도망쳤고, 그가 대만으로 옮겨갈 때 그가 좋아했던 골동품, 서화등 문화재를 모조리 가져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시 해방군이 장강을 막 건너 상해를 공격하려 할 때, 그는 많은 황금등은 시간이 없어서 옮기지 못했다. 그러나, 이때 그는 자신의 재산을 가져갈 수 없는 것에는 조급해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말한다. 황금은 없어도 되지만, 3명은 반드시 데려가야 한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그리고 그 세 사람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첫번째 인물은 짱갸후투크투(章嘉呼圖克圖, 후투크투는 '活佛'이라는 뜻임)이다. 그는 내몽골지역 티벳불교의 최고활불이다. 외몽골지역의 젯순담파후투크투(哲布尊丹巴呼圖克圖)와 함께 몽골의 양대활불이고, 티벳의 달라이라마, 판첸라마, 젯순담파후투크투와 함께 4대활불로 불리는 인물이다. 이 활불의 전체 가족은 청나라때 높은 명망을 지녔고, 계속하여 존경을 받아왔다고 한다. 장개석을 그를 데려가려고 했다. 티벳불교지역의 최고활불로 이미 제6대인 그는 장개석의 존경을 받아왔다. 그래서 그는 대만으로 도망칠 때 쨩갸후투크투를 데려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두번째 인물은 공덕성(孔德成)이다. 그는 유가의 시조인 공자의 후손이다. 우리는 공자가 유가학파의 가장 유명한 대표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의 전체 공씨집안도 수천년동안 흥성했으며, 왕조가 교체되더라도 유가사상은 계속되어, 각 민족인민의 존경을 받아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중국고대는 계속하여 봉건국가였고, 공자집안은 각 황조의 은덕을 입었다. 근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장개석은 그의 수하에게 이렇게 당부했다고 한다. 반드시 공덕성을 좋은 말로 설득하고, 절대로 괴롭히지 말라고. 그저 공덕성이 함께 대만지구로 가주기를 희망한다는 말만 하라고.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는 같이 대만으로 갔고, 나중에 타이페이에서 대학교수도 지낸다. 그는 계속 일을 하다가 2008년에 은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번째 인물은 장은부(張恩溥)이다. 그는 장천사(張天師) 장도릉(張道陵)의 후손이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강서성 용호산(龍虎山) 정일파(正一派)의 아주 유명한 도교 천사이다. 그리고 이 장은부는 바로 장천사의 63대손이기도 하다. 당시 장개석은 그를 아주 존경했다고 알려져 있다. 심지어 그에게 군대계급까지 주었다. 비록 실질적으로 군대를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은 없었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세 사람중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타이페이로 가지 않은 인물이다. 마지막에 그는 타이페이에서 병사한다.


장개석이 데려간 이 세 명의 인물은 바로 불교, 유교, 도교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기실 장개석은 황금을 버리더라도, 데려가려고 했던 세 명의 인물은 바로 민심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