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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청 후기)85

광서제 검시보고서에 대한 검토 글: 풍학영(馮學榮) 1908년 11월 14일, 나이 겨우 38세된 광서제가 돌연 붕어한다. 다음 날 11월 15일, 서태후도 곧이어 병사한다. 그때부터 시작하여, "서태후가 광서제를 독살했다"는 주장이 유행했다. 지금까지 백여년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 주장은 중국인들이 무조건적으로 믿어왔다... 2013. 9. 14.
도광제(道光帝)의 능묘는 왜 3번이나 옮겼는가? 글: 문재봉(文裁縫) 황제가 한 명 사망하면 일생동안 단지 1개의 능침을 건설한다. 이것은 의문의 여지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전혀 예상외에, 도광제는 일생동안 자신을 위하여 3번이나 능침을 건설한다. 즉, 그는 3번이나 능묘를 옮긴 것이다. 제1차 능묘건설. 도광제가 황자(皇子)로 있을.. 2013. 9. 13.
영년(英年): 청나라말기의 황실풍수대가 글: 포강객(浦江客) 광서24년(1898년) 팔월 초엿새, 서태후는 돌연 정변을 일으켜, 변법을 추진하던 광서제를 영대에 연금시키고, 일체의 행정을 모조리 폐하고, 훈정(訓政)이라는 명목으로 다시 최고권력을 장악한다. 그러나, 기실 이전의 광서23년에 대권을 손에서 놓치고 싶어하지 않던 .. 2013. 8. 15.
경친왕(慶親王) 혁광(奕劻): 만청제일탐관 글: 유계흥(劉繼興) 마지막 황제 부의는 혁광이 신해년에 한 행위에 대하여 가장 날카롭게 평가한 바 있다: "(혁광)은 원세개의 돈을 받고, 태후에게 나라를 넘기라고 권했다. 대청 이백년의 천하는 혁광의 손에 끝장났다." 혁광은 만주 상남기 사람으로, 애신각라씨이며, 건륭의 열일곱째 .. 2013. 8. 15.
부준(溥儁): 청말 대아거(大阿哥)로 황위계승자가 되었던 인물 글: 상한(桑寒) 청나라말기, 서태후는 온갖 방법을 다 써서 구차하게 정권의 목숨을 연장하고자 하였다. 가경제이후, 청왕조는 황태자를 둔 적이 없다. 황태자를 두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직접적으로 국가의 장래 주인을 결정하는 일이다. 서태후는 '무술변법'이후 광서제를 멸시한다. 자.. 2013. 8. 15.
의화단(義和團)은 왜 화북(華北)에서 성행했는가? 글: 오구(吳鉤) 1900년 8월, 경자(庚子)년, 서태후(자희태후)는 두번째로 황망하게 북경성을 도망쳐 나가서, "서수(西狩)"를 하러 갔다. 제1차 "서수"는 40년전에 일어났다. 1860년, 영불연합군이 경사로 쳐들어왔을 때이다. 이번에 다시 "사냥"의 명의로 도망친 것은 바로 팔국연합군이 북경을 .. 2013. 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