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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민국 후기)97

진독수(陳獨秀): 중공 제1대 총서기의 최후 글: 왕우군(王友群) 금년은 중국건당100주년이다. 100년동안, 중공은 전후로 12명의 총서기(당수)가 있었다. 제1대 총서기는 진독수이다. 재직기간은 1921년 7월부터 1927년 8월까지이다. 그후 진독수는 면직당하고, 당적을 박탈당했으며, '일본스파이'로 몰렸고, 여러 '막수유(莫須有)'의 죄명을 뒤집어 쓴다. 진독수는 자가 중보(仲甫), 호는 실암(實庵)이며, 안휘 회녕 사람이다. 청나라때 과거에 급제한 수재(秀才)이다. 5번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거나 피난을 했다. 북경대학 교수, 북경대학 문과대학장을 지냈고, 5.4운동의 지도자중 한 명이다. 1920년 4월 소련공산당(볼세비키) 극동국 블라디보스톡분국 외국처는 그레고리 보이틴스키(중국명 吳廷康)를 중국으로 파견하여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선전.. 2021. 4. 20.
"우항시인(雨巷詩人)" 대망서(戴望舒)의 3차례에 걸친 애정사 글: 장계합(張繼合) 저명한 시인 대망서 선생은 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친다. 그래서 '우항시인'이라는 명칭을 얻는다. 그러나, 그의 성격은 우울했고, 일처리도 편집적이었다. 그의 일생에서 전후로 3명의 예쁜 여자들에게 끌려다닌다. 여자들은 감정의 짐을 이용하여 그를 꼭꼭 묶어놓았고, 대망서가 결국 최대의 피해자로 전락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 3명의 아름다운 아가씨들은 비록 전후로 대망서와 얽혔지만, 한명도 그와 백년해로하지 않는다. 이를 보면 여인(女人)과 화수(禍水)는 등호(=)를 그을 수 있다. 첫사랑을 얘기해보자. 대망서 선생은 친구의 집에 피난을 간다. 거기에서 그는 첫사랑을 만난다. 시강년(施絳年). 당시 두 사람은 처음 보자마자 남녀의 정을 느끼고 서로 사랑에 빠진다. 재미있는 것은 시강년의.. 2021. 4. 13.
중공 제5대 총서기 장문천(張聞天)의 최후 글: 왕우군(王友群) 1976년 7월 1일은 중공성립55주년기념일이다. 이날, 일찌기 제5대 중공총서기를 지낸 장문천은 그의 유배지인 강소(江蘇) 무석(無錫)에서 심장병이 돌연 발작한다. 당시 그의 안색은 창백하고, 식은 땀이 흘렀으며, 손에 쥐고 있던 외국어자료를 바닥에 떨어뜨린다. 앞뒤로 10분도 안되는 동안에 그는 세상을 떠난다. 장문천이 사망한 후, 중공은 부고를 발하지 못하게 막고, 추도회도 열지 못하게 막았다. 유골함에도 장문천의 이름을 쓸 수 없었으며, 유골함을 장의관의 정청(正廳)에 놓지 못하게 하였으며, 단독으로 아주 작은 창고 안에 놓아두게 했다. 유일하게 일본, 미국, 소련을 유학한 중공당서기 장문천, 가명은 낙보(洛甫)이다. 1900년에 태어났으며, 상해 남회(南匯) 사람이다. 19.. 2021. 4. 8.
"4.8공난(空難)": 제4대 중공 총서기 진방헌(秦邦憲)의 최후 글: 왕우군(王友群) 1946년 4월 8일, 제4대 중국공산당수를 지낸 당시 중공주중경대표 진방헌, 중공 주중경대표 왕약비(王若飛), 전 신사군 군장 섭정(葉挺), 섭정의 처 이수문(李秀文), 딸 섭양미(葉揚眉), 아들 섭아구(葉阿九)등은 미군관찰조의 C-46수송기를 타고 연안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비행기는 안개가 너무 짙어 길을 잃고, 산서성 흥현 흑다산(黑茶山)에 부딛쳐 불이 붙고 폭발했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17명은 모두 사망한다. 역사에서 "4.8공난(空難)"이라고 부르는 사건이다. 가장 젊은 중공당수 진방헌은 강소 무석 사람이다. 일찌기 소주공업전문학교에서 공부했다. 1925년 상해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면서 5.30운동에 참가한 바 있다. 같은 해 연말에 중공에 가입한다. 1926년 10월,.. 2021. 4. 3.
민국사대전신(民國四大戰神) 글: 천지사화(天地史話) 중화민국 40년간 전란이 끊이지 않았고, 4명의 군사기재가 나타났으며, 모두 휘황한 전적을 거두었다. 백숭희(白崇禧) 근대역사상 광서(廣西)는 전투에서 용맹하기로 이름을 떨쳤다. 계계군벌(桂係軍閥, 계는 광서의 약칭)에 적지 않은 우수한 장군들이 배출된다. 백숭희는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이다. 1. 1924년 이종인(李宗仁)과 연합군을 성립하여, 겨우 만여명에 불과한 부대를 이끌고 전후로 육영정(陸榮廷), 심홍영(沈鴻英)의 두 군벌을 격패시키고, 이어서 운남(雲南)이 당계요(唐繼堯)도 물리친다. 겨우 1년여의 기간만에 광서를 통일한다. 이때 그의 나이 겨우 31살이었다(1893년생). 2. 1926년, 북벌총사령부 대리참모장을 맡아 작전을 지휘한다. 1927년 8월, 직계군벌.. 2021. 3. 12.
유한평(劉漢平): 중국혁명에 투신한 한국인 글: 고효양(顧曉陽) 1 유한평은 한국인이다. 일찌기 필자는 나의 부친의 역사문제를 고발하는 대자보에서 이 이름을 보았다. 대자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유한평은 중공 6대중앙위원이고, 북평(北平, 지금의 북경)시위서기를 지냈다, 1930년대, 필자의 부친은 북평에서 소학교 교원을 지냈으며, 두 사람은 밀접하게 교류했다. 유한평은 직업혁명가이고, 시종 위험하고 어렵게 살았다. 나의 부친은 자주 그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었다.(민국시기 소학교 교원의 수입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그때부터, 유한평이라는 역사에 잊혀진 이름은 나의 마음 속에 기억되게 된다. 유한평은 1937년 봄에 연안(延安)으로 왔다. 당시 미국기자 에드가 스노의 부인인 님 웨일즈가 거기에서 취재를 하고 있었다. 연안에는 도서관이 있고.. 2021.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