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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선진)

주무왕(周武王)은 왜 한창 나이에 돌연 사망했을까?

by 중은우시 2024. 12. 11.

글: 비정상역사연구실(非正常歷史硏究室)

상(商)을 멸망시킨지 세번째 되는 해(기원전1043년)에 주왕조의 개국군주 주무왕이 다시 병으로 쓰러진다. 이건 그가 처음 병으로 쓰러진 것도 아니다. 상을 멸망시킨 다음 해에 주무왕은 병에 들었고, 한때 조금 좋아지기는 했지만, 병세는 심각했고, 결국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망하고 만다.

사서에는 주무왕의 생졸년이 기재되어 있지 않아서, 우리는 주무왕의 진실한 나이를 알 수가 없다. 비록 전설에 따르면 주무왕이 93세까지 살았다고 하지만, 그건 터무니없다.

주무왕이 93세까지 살았을 것같지는 않고, 태자 희송(姬誦)의 나이가 어렸던 것을 감안하면, 주무왕이 사망했을때, 분명 한창 나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사인은 우울증이었을 것이다.

한창 나이의 개국군주가 우울증으로 죽다니, 도대체 주무왕은 왜 그렇게 근심스러웠을까? 그리고 무엇이 그를 근심하게 만들었을까?

서주(西周) 초기의 환경은 주무왕이 확실히 근심할 만했다. 왜 그런가? 그는 정말 어떻게 천하공주(天下共主)로서 일해야할지를 몰랐고, 주변에는 많은 세력들이 그를 노리고 있으며, 수시로 그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먼저 주(周)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살펴보자.

상나라때, 고공단보(古公檀父)는 주인(周人)을 이끌고 기산(岐山)으로 이주한다. 주원(周原) 부근의 영토를 근거지로 하여 계속 발전하고 점차 성장한다. 이렇게 주는 상왕조때 서부지역의 중요한 방국(方國)이 된다.

처음에는 상과 주의 관계가 비교적 원만했다. 상왕은 주인에게 정벌대권을 부여했고, 주인은 때에 맞추어 상왕에게 공물을 바쳐야 했다.

주인의 노력으로 상왕조의 세력은 서쪽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면서 주의 세력도 부단히 확장되어, 상왕이 경계할 정도가 되었다.

상왕조의 강역

어쨌든 주는 정벌대권을 가진 후에, 상왕조의 영토를 잠식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주는 강융(姜戎)과 결맹을 맺어 적국(翟國)과 숭국(崇國)이라는 두 개의 상족(商族) 방국을 정벌한다. 그렇게 하여 관중(關中)의 땅을 확보하여, 상왕의 경계심을 크게 키운다.

상왕 문정(文丁)의 시기에, 계력(季歷)이 계속하여 정벌하면서, 주변의 작은 융족(戎族)부락들을 모조리 제거했다. 겉으로는 상왕조의 강역을 확장한 것이지만, 실제로 토지와 인구는 모두 주에 속했다. 문정은 알고 있었다. 주를 혼내줘야한다는 것을.

계력이 포로를 바치면서 승전보를 전할 때, 문정은 표면적으로 계력을 서백(西伯)으로 봉하면서, 그후 그를 구금해버린다. 계력은 죽을 때까지 갇혀 지내고, 이로 인해 상과 주의 갈등은 빈발하게 된다.

계력시기, 주와 상. 분홍색은 인방(人方)

계력이 죽은 후, 그의 아들 희창(姬昌)이 승계한다. 그가 주문왕(周文王)이다. 상쪽에도 문정이 죽고 제을(帝乙)이 즉위한다.

제을시기, 야심을 품은 주 이외에 동이(東夷)쪽의 인방(人方)세력도 상에 반기를 든다. 그러자, 상왕조 동부의 우방(盂方)과 임방(林放)도 함께 반란을 일으킨다. 동쪽과 서쪽에서 협공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제을은 희창을 다독이는 것을 선택한다.

그리하여, 문정의 딸을 희창에게 시집보낸다. 쌍방의 정략결혼으로, 잠시 둘 간의 갈등은 미봉된다. 그후 제을은 인방을 토벌하기 시작한다.

희창은 비록 정략결혼했지만, 상이 언젠가 주에게 손을 쓸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리하여 덕을 제창하면서 서부의 방국들을 규합하여, 상에 반대하는 동맹을 결성한다.

희발(姬發)은 부친의 회유책략을 지속하여 반상동맹을 단결시킨다. 처음에 희창은 상을 멸망시키고 대체할 생각까지는 없었다. 어쨌든 주의 눈에 상은 대읍상(大邑商)이고, 주는 그저 소방주(小邦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주문왕시기 대읍상과 소방주

그래서 초기의 생각은 단지 대읍상의 재물을 약탈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상왕조가 한번 싸움에 버티지 못하고 바로 무너져버린다.

상의 전투력이 약해서는 아니고, 순전히 상왕 제신(帝辛, 紂王)이 대군을 이끌고 동이를 정벌하러 나섰기 때문에, 조가(朝歌)부근은 병력이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바로 무너진 것이다.

상을 멸한 후, 희발은 주왕조를 건립한다. 그가 주무왕이다. 그리고 부친 희창을 주문왕으로 추존한다.

비록 주무왕이 상의 토지를 차지하였지만, 그는 어떻게 천하공주로서의 역할을 해야하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서쪽에는 자신의 반상동맹이 있고, 모두 상을 멸망시킨 후의 이익분배를 기다리고 있다. 이익분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마도 주무왕이 상을 멸망시킨 것처럼 그들도 주무왕을 멸하려 할지 모른다.

동쪽에는 중토(中土)에 불복하는 동이세력이 있다. 원래 그들은 상왕조에도 불복했고, 지금은 더더구나 주왕조에 불복한다.

더욱 치명적인 점이라면, 중원에는 대량의 상왕조유민이 있는데, 주무왕은 그들을 어떻게 다스려햐할지를 몰랐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주무왕은 잠을 편하게 잘 수가 없었다.

비록 상왕조를 멸망시켰지만, 상왕조의 세력은 남아 있었다. 명목상으로 천하공주이지만, 서쪽에는 이익분배를 원하는 방국들이 있고, 동쪽에는 말을 듣지 않는 동이가 있다. 만일 중원의 상족이 다시 복국하고자 하면, 도처에 전쟁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의 공동의 적이 되어버린 주로서는 상왕조의 전철을 밟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부갈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갈등도 심각했다. 내부문제도 전혀 작지 않았다.

부친의 노신들 강상(姜尙), 산의생(散宜生), 남궁적(南宮適)등이 모두 주천자의 상사(賞賜)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종실세력들 예를 들어, 주공단(周公旦), 소공석(召公奭), 필공고(畢公高), 관숙선(管叔鮮), 채숙도(蔡叔度)등이 있다. 모두 같은 집안사람들이지만 주무왕은 어쨌든 이들에게도 이익을 나누어주어야 했다.

사실상, 주공등을 제외하고도 관숙(管叔), 채숙(蔡叔), 곽숙(霍叔)은 주무왕이 죽은 후 상왕조의 유민들과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켜 하마터면 주왕조가 붕괴될 뻔했다. 이를 보면 이런 걱정거리들이 주무왕의 머리를 아프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주왕조는 신생왕조이지만, 상왕조의 말기와 별 차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상왕조가 왜 붕괴했는가? 소위 주왕의 폭정은 기실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이 주와 싸워서 이기지 못할 정도도 아니었다. 순전히 내부문제로 주인들이 빈틈을 파고들게 허용했기 때문이다.

이전에 상왕조는 형종제급(兄終弟及)의 왕위계승방식을 취해왔었다. 그러나 후기에 이르러, 부사자계(父死子繼)로 바뀌게 된다. 경정(庚丁)부터 시작하여 그 이후는 모두 '부사자계'이다. 직계혈맥의 전승방식은 필연적으로 방계혈족의 불만을 살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상왕조의 붕괴는 기실 내부에서 시작되었다. 종실들이 주왕이 계속하여 부사자계의 직계혈통에 권력을 집중하는데 불만을 품고 속속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당연히 주왕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왕숙(王叔) 비간(比干)을 죽인 것은 순전히 왕위를 아들에게 전승하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비간은 억울하게 죽었다.

다만, 미계(微啓)는 달랐다. 상왕조가 아직 존속할 때, 벌써 주무왕과 결탁을 한다. 그리고 주무왕도 그에게 약속한다. 상을 멸한 후, 미계로 하여금 상왕조의 옛땅을 다스리게 해주겠다고. 미계는 두 말도 하지 않고, 스스로 성문을 열고 투항한다. 그리하여 주무왕은 순조롭게 조가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현재의 주무왕도 이런 국면에 직면한 것이다. 내부종실이 불안정하고, 외부방국은 시시때때로 노리고 있다. 주왕조도 상왕조의 전철을 밟을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래서 주무왕은 걱정이 아주 많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주왕조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경험도 없었다. 그리하여 하, 상 양대의 군왕은 도대체 주변의 방국들을 어떻게 신복(臣服)시켰는지가 궁금했다.

그러나 걱정은 걱정이고, 당장 급한 일은 주왕조를 보전하는 것이다. 최소한 서쪽이 동란에 빠져서는 안된다. 그리하여 주무왕은 관중을 천험의 요새로 만들기 시작한다. 먼저 요충지에 관애(關隘)를 지어,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보장해놓는 것이다.

관애를 지으면서, 주무왕은 주왕조의 제도건설도 고민해야 했다.

주무왕은 천하를 오백년간 통치해온 상왕조의 귀족들은 분명 경험이 있을 것이라 여기고, 즉시 상왕조의 귀족들에게 자문을 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상나라사람들이 비법을 전수해 주겠는가? 너희가 우리 상왕조를 멸망시켜놓고, 우리에게 치국경험을 알려닭라고? 그들은 하나같이 피하고 도망쳤다. 예를 들어 상용(商容)은 삼공(三公)의 직위를 직접 거절해버린다.

상용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하자, 주무왕은 기자(箕子)를 찾아간다. 기자에게 상왕조는 왜 천하를 잃게 되었는지를 물어본다.

그러나 기자가 어찌 자기 집안의 문제를 얘기해주겠는가? 그저 애매하게 답변한 후, 주무왕에게 이런 말만 해준다. 천하를 안정적으로 통치하려면, 각지에 제후들에게 잘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하고, 나머지는 하늘의 도리에 맡기면 된다. 이런 말은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는 말이다.

상용이나 기자가 모두 협력하지 않자, 주무왕은 옛친구 미계를 떠올린다.

그러나, 주무왕은 천하를 얻은 후에 미계에게 상왕조의 옛땅을 다스리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 지역을 주왕의 아들 무경(武庚)에게 넘겨준 것이다.

주무왕이 왜 실언했는지 대해 살펴보면 그도 방법이 없었다. 어쨌든 상왕조의 주력이 남아 있었고, 만일 아무렇게나 봉하게 되면, 이들의 불만을 사서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선 미계로서는 억울하겠지만, 그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미계도 화가 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찌되었건 주가 상을 멸망시키는데 앞잡이로 나섰고, 그에게는 주나라편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미계는 자신이 가서 관직을 맡지 않고, 아들 자조(刺祖)를 보낸다. 자조가 주왕조의 사관(史官)이 된다.

당시의 사관은 단순히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만이 아니었다. 전왕조의 역사경험을 전수해주고, 주무왕에게 어떻게 천자로서 행동해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직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조는 젊었고 경험이 일천했다. 그래서 그런 자문에 제대로 응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주무왕은 이리저리 알아보았지만, 아무도 진정한 천자가 되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고민이 깊어진 것이다. 매일 고민하면서 잠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외부인들은 의지할 수 없으니, 자기사람에게서 찾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동생 주공단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다.

주공단은 이렇게 말한다. 외부인들이 가르쳐주지 않으니, 우리 스스로 새로운 틀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 그것이 바로 주제(周制)이다.

주공단은 정말 하늘이 내린 천재였다. 그가 제안한 주제는 주무왕이 천하를 통치하려는 목적에 너무나 부합했다.

첫째, 상의 땅을 나누는 것이다. 상은 단순히 상의 사람들의 것만은 아니다. 이전에는 하왕조가 있었다. 주공은 하왕조의 후예를 찾아내어, 그들에게 땅을 나눠주어 상의 땅을 나눔으로써 상인의 역량을 약화시키자는 것이었다.

동시에 낙읍(洛邑)을 건설하여, 동도(東都)로 삼고, 천자가 수시로 이곳에서 백성을 교화시킨다.

서쪽에서 말을 듣지 않는 동맹방국들과 동쪽에서 불복하는 동이에 대하여는 주공이 이런 방안을 생각해 낸다. 서쪽의 동맹들을 동이로 옮기게 하여, 그들을 지원해주고, 정벌대권을 부여한다. 그리하여 이들 둘이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

당연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들은 어차피 외부인들이니까. 주공은 최종무기를 꺼내든다. 봉방건국(封邦建國). 공신과 종실에 각지방에 나누어 분봉(分封)해주고, 그중 가까운 지방은 종친과 외척에게 주고, 먼 곳은 공신과 외인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봉건친척이병번주(封建親戚以屛番周)"이다.

이렇게 되니 종실과 공신들의 이익분배요구도 만족시켜주게 된다.

그러나, 이건 첫걸음이다. 봉건의 기초 위에, 주공은 후세 3천년간 영향을 미치는 제도를 내놓는다. 주례(周禮).

주례는 예악제도이다. 사람의 등급을 정하고, 각 제후국은 권한을 넘어 행동할 수 없고, 위로는 천자, 아래로는 대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지켜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천자는 육가(六駕)에 구정(九鼎)을 쓰고, 제후는 오가(五駕)에 칠정(七鼎)을 쓴다는 등이다. 하나하나 모두 규정해 두는 것이다. 만일 제후가 참월하면 그것은 예제에 위반하는 것이고, 각 제후가 토벌해야 한다.

동시에 주례에서 종법제도를 확립한다. 천자와 제후는 모두 직계혈연의 계승방식을 취한다. 상왕조 후기의 '부사자계' 이념의 제도화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제후와 대부들도 모두 그렇게 하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의 지지를 받게 된다.

그외에, 조공제도와 책봉제도를 확립한다. 모든 제후국의 국군은 주천자의 책봉을 받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법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주공단은 주무왕에게 완전히 새로운 천하를 다스리는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그리하여 주무왕의 마음을 얻는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주공단은 후세 3천년문명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방안을 듣고나서 주무왕은 더 이상 근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왕조에는 아름다운 미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제도를 확정하고 집행하기 위하여, 주무왕과 주공단은 밤을 새워 일해야 했고, 결국은 자신의 몸을 망치고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주나라의 앞날의 운명을 걱정하느라, 뒤에는 주제를 확립하느라 밤에 잠도 자지 못하면서 일을 해야 했고, 쇠로 만들어진 몸이라고 해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한창 나이에 죽고 만 것이다.

임종전에 주공단에게 보정을 명하고, 계속하여 주제를 실행하게 한다. 그리하여 주왕조는 팔백년간 지속될 수 있었다.